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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징용피해자 ‘강제저금’ 일본 은행서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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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선인 통장 수만개…공탁금 6조원도

일본은 내역확인 미적…정부는 뒷짐만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의 미지급 임금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기업들이 징용 노동자 임금을 강제로 떼어 은행에 맡긴 개인 저금을 되찾을 길이 열렸는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정부는 미쓰비시 등이 일본 패전 뒤 일본 정부에 공탁한 조선인 군인·노동자 등의 미지급 임금 6조원가량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로 이미 마무리된 일’이라는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다.

최봉태 변호사가 지난해 6월 입수한 ‘일본 금융청 감독국 총무과 우편저금 보험감독 참사관실’ 문건을 보면, 일본 기업들은 이들 노동자의 임금 일부를 강제로 떼어 매달 일본 우정은행 우편저금 등으로 저금했다. 이 문건엔 ‘일본 우정은행은 전쟁중 외국인(조선인 등) 저금에 대해서 하나로 정리해 관리하고 있다’고 적어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저금실태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냈다.

당시 일제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려고 기업들에 강제저금 비율을 할당했으나, 강제동원 피해자 대다수는 자신의 저금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정혜경 조사2과장은 28일 “2005년부터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저금한 돈의 내역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확인마저도 미적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쓰비시 등이 한국인 군인·노무자 등 강제징용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다가 1946년 점령군 총사령부 지시로 일본 국책은행에 공탁해놓은 약 6조원도 피해자들은 제대로 되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1975~77년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용 사망자 8552명에게만 30만원씩 25억6500여만원을 줬다. 이어 2007년 군인·군속 공탁금 10만8900여건(총액수 9100만엔), 2010년 노무자 공탁금 6만4200여건(총액수 3500만엔)의 명단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 우리 정부 재정으로 피해자들에게 1엔당 2000원으로 환산한 위로금 수십만~수백만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2009년 일본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는, 일본에 공탁 형태로 보관된 미지급 임금은 각종 수당까지 더해 총 2억1500만엔(현재 가치로 6조원가량)이다. 일제강점기에 연평균 750만명이 한반도 안팎에 동원됐고 중복 인원을 빼더라도 약 300만명이 강제동원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면, 일본 정부가 제공한 명단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액수도 매우 적은 실정이다.

최봉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못 받은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일본의 미불임금 공탁금을 찾아오든지, 아니면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상을 통해 정부가 받은 경제협력자금 중 무상 3억달러 등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무자의 미불임금과 개인 저축이 이미 포함됐다”며 “따라서 지금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재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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