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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교육감직 박탈할 잘못은 아니다’ 판단…‘조희연표 혁신’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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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2심 ‘선고유예’ 배경과 파장

항소심 재판부 “허위사실 공표는 인정…악의적 흑색선전 아냐”

주춤했던 일반고 지원 급물살…하나고 비리 감사도 강력 추진

4일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은 ‘조 교육감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교육감직을 박탈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선고유예를 받음에 따라 조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유지하고 서울시교육청의 각종 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검찰이 즉각 상고 방침을 밝힌 만큼 결국 조 교육감의 운명은 대법원에서 결정되게 됐다.

■기사회생한 조 교육감

항소심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는 인정했다. 그러나 공직 적격을 검증하기 위한 의도였으며 악의적인 흑색선전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양형 판단을 위해 문제가 된 조 교육감의 발언을 1·2차로 나눠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분석했다. 1차는 피고인이 최초 뉴스타파 최모 기자의 트위터를 본 뒤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제기한 것이다. 2차는 고 후보가 해명을 한 뒤에도 “고 후보는 공천 탈락 이후 기자들과 지인에게 ‘영주권이 있으니 미국 가면 된다’고 말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

재판부는 1차 공표에 대해서는 “가정적 유보적 표현으로 반대 사실이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해명도 요구했으므로 유권자들도 그 명제가 확정된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이런 경우까지 조 교육감에게 당시 고 후보의 영주권 존재를 증명하는 자료를 요구한다면 선거과정에서 정당한 문제제기조차 주저하게 함으로써 공직선거법의 목적은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2차 공표였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은 선거 당시 고 후보가 해명했음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영주권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추가로 공표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서울고법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뒤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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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1·2차 표명에서의 판단을 종합해 조 교육감에게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의 행위는 공직선거법 250조로 처벌하는 무분별한 의혹제기, 흑색선전의 행위로 보기는 어려우며 그 비난 가능성이 낮은 수준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을 진행한 서울고법 김상환 부장판사(49)는 ‘국정원 댓글 사건’ 항소심을 맡아 지난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5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하기도 했다.

■‘조희연표 교육개혁’ 탄력

1심 패소 후 급격하게 동력을 상실했던 조 교육감의 리더십이 회복되고, 교육혁신 정책들은 다시 추진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조 교육감은 취임 후 ‘일반고 전성시대’를 내걸고 지난해부터 자사고·국제중의 지정취소 및 일반고 전환을 추진해 왔으나 정원 미달 등으로 자사고 지위를 포기한 4곳 외에는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한 학교가 없다.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이 입시비리 전력이 있는 영훈국제중의 국제중 지정취소를 2년 유예한 것도 조 교육감의 교육청 장악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 7월 말 공립고 성추행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감사관실 내홍도 조 교육감의 불안정한 지위와 무관하지 않았다. 교육청 내부에서는 1심 패소 후 지역별 향우회 모임 등이 결성돼 ‘조희연 교육감 이후’를 대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이날 선고유예로 교육감직 상실 위험이 줄어들면서 조 교육감은 그동안 흐트러졌던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고 조직 장악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당장 9월 둘째주로 예정된 하나고 입학비리 및 회계부정 특별감사도 강도 높게 추진되고, 올해 중점정책인 서울형 교육혁신지구와 자유학년제, 학생자치 확대 등도 힘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는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조희연 교육감이 추진해온 혁신교육이 차질없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기독교 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의 김진우 대표도 “상식을 존중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선고유예

범죄 정도가 경미한 경우 판사가 형의 선고를 미뤄 선처해주는 제도.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유죄 판결의 선고가 없었던 것과 같은 효력이 있다. 검사가 피의자를 용서해 기소하지 않는 것은 기소유예라고 한다.


<박용하·정원식 기자 yong1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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