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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평등하면서 평등하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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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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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무슨 차이건 다 달구지로 만드는 평등한 길이다. 말끔하게 포장된 길을 어쩌다 만나면 웬 호강인가 싶다. 게다가 1㎞도 똑바른 길이 없이 준령 옆구리를 따라 구불거린다. 팀푸에서 동쪽으로 트롱사까지 가는 1차선 도로의 이름은 ‘내셔널 하이웨이’다. 인도산 타타 소형 트럭으로 196㎞ 달리는 데 10시간 걸렸다. 그 길 위에서 동승자 독일인 베른트는 두 번 토했다. 트롱사에 도착했을 때는 핏기 없는 인간 단무지가 돼 있었다.

킹콩에 난 손톱자국같이 난 길이다. 차로 옆으론 까마득한 벼랑이다. 반대쪽은 거대한 산 몸통을 할퀴어 난 벌건 상처가 그대로다. 우기가 오면 그 상처에서 딱지처럼 흙더미가 쏟아져 내려 길을 막아버리곤 한다. 스페어타이어와 삽이 기름만큼 필수다. 벼랑 쪽으로 안전울타리가 세워진 곳은 500m 정도 한 구간 봤다. 그 가장 안 위험해 보이는 구간에 팻말 하나 버티고 섰다. ‘위험구간’. 운전자는 말했다. “여기만 위험하다는 거야? 이거 무슨 유머야?”

그리고 딱, 인도에서부터 달려온 대형 트럭이 코앞까지 들이닥친다. 헤드라이트 위에 번쩍 뜬 사람 눈을 그려 넣은 차다. 차 옆면엔 ‘굿 럭’이라 적고 온갖 색깔로 장식했다. 각도 깊은 에스(S)자로 길이 꼬부라지니 반대편에서 달리는 차가 숨었다 기습 키스 하겠다고 달려든다.

그리고 딱, 길 한가운데 난데없는 소떼다.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대체 이 소들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소들은 길바닥에 배를 깔고 앉은 자세를 좋아했다. 경적 울리면 큰 눈을 껌벅이며 일어나는데 엄청난 슬로모션이다. 바쁜 거야 니들 사정인 거다. 성질 급한 운전자는 차 문을 열고 소꼬리를 잡아당기기도 하는데, 그래 봤자 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개도 길에 누워 배 찜질한다. 그나마 개는 인간의 성미를 아는지 재빠르다. 문제는 소보다 작다는 거다. 정신 바짝 안 차리면 개 비명 메아리를 듣게 된다. 원숭이도 출몰한다. 다행히 겁이 많아 후다닥 도망친다. 하지만 길 사랑엔 뭐니뭐니해도 염소를 따를 자가 없다. 특히 인도 쪽 평지로 내려가면 염소들이 잰걸음 친다. 어미가 새끼까지 달고 길 한복판으로 마실 나오는 거다. 인도 트럭들이 맹수처럼 돌진하는 자리 한가운데 다소곳이 앉아 명상에 들어간다.

그리고 딱, 안개가 가로막는다. 여름 해발 3000m 넘어가면 차체를 휘어감는다. 트라시강에서 붐탕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특히 악명 높다. 부탄인들은 그 구간에 진입하기 전 기도드린다. 안개의 입속이다. 바로 1m 앞 차 꽁지만 보인다. 이 길에서 깜박 졸다 그대로 벼랑 아래로 떨어진 사고가 여럿이었다.

그리고 딱, 이 길에서 운 좋게 우리를 가로막은 것은 ‘부탄-9’ 표지판을 단 검은색 도요타 프라도였다. 로열패밀리 차다. 추월금지다. 이런 좁은 길에선 반대 방향 차도 일단 길가로 붙어 서야 한다. 프라도 앞뒤로 두세 대 더 수행중이다. 그 끄트머리를 잡고 안개의 미로를 빠져나왔다. 운이 없으면 길 한복판에서 한 시간 반씩 죽치고 있어야 한다. 여기저기 차로 넓히는 작업 중인데 1시간30분 막아 놨다 30분 열어주는 식이다. 첫번째 장애물은 한 시골 마을 입구에서 나왔다. 위성텔레비전 안테나를 단 판잣집 대여섯개, 식당과 구멍가게가 전부인 마을이다. 길 한복판에서 대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오줌을 눴다. 두번째, 산중턱에서 길이 막혔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아낙들이 꾸러미를 풀었다.

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다 보니 말을 트게 된다. 귀를 다 덮는 흰색 헤드폰을 쓴 데신(20)은 버스 타고 동쪽 산골마을 고향에 가는 중이었다. 수도 팀푸에서 간호학교를 다니는 데신은 산파 실습을 마지막으로 3년 정규과정을 마쳤다. 부모님은 산자락에 옥수수를 키운다. 내다 팔기에는 도시까지 거리가 멀다. 자급자족용이다. 현금은 어머니와 누이가 옷감을 짜 조금 만져보는 정도다. “학교가 공짜라 여기까지 왔죠. 간호학교 다닐 때는 나라에서 숙식 해결해주고 용돈도 좀 줬어요. 그래도 누나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삼남매 중에 누나만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살림에 보탤 옷감을 짜야 했거든요.” 데신이 고향 트라시양체에 도착하는 데는 이틀이 걸린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달리는 자동차를 파리인 양 삼켰다 뱉었다. 몸통 길이가 10층 높이는 돼 보이는 나무들은 머리 위에만 잎을 얹었다. 가지마다 부탄 사람들이 ‘할아버지 수염’이라 부르는 이끼가 치렁치렁 자랐다. 그 육중한 나무들도 더 높은 곳에선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본다. 도로 공사 현장마다 주말 없이 일하고 일당 300눌트룸(약 5천원) 받는 인도 노동자들이다. 슬리퍼 신고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인도는 부탄 도로 건설의 주요 돈줄이기도 하다. 십대 소녀 둘이 삽 하나에 밧줄을 두 방향으로 묶고 흙을 퍼내고 있다. 정으로 깬 돌을 자루에 담고 옮겼다. 그들 집은 공사장 바로 옆에 있다. 녹슨 슬레이트 판을 얼기설기 엮었다. 창문도 없다. 말 그대로 깡통집이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공사 현장 흙탕물 웅덩이에 자갈을 던지며 놀았다. 부탄 정부 한 관료는 말했다. “1960년에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됐죠. 첫 고속도로는 인도 국경마을인 푼촐링에서 수도 팀푸를 이었어요. 거의 인도 노동자들이었는데, 얼마나 죽었는지 몰라. 하여간 하나는 확실하죠. 많이 죽었어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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