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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국정원 대선 개입` 948일의 공방…결론 나지 않은 `원세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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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法 '원세훈사건' 파기환송 ◆

매일경제

대법원은 1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4)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유무죄 판단은 내리지 않고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 사이버 활동에 대한 사실관계 등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선거 개입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이 이날 선거법 위반 혐의의 핵심 증거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인했기 때문에 검찰이 다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원 검찰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최종 판단의 부담은 피하면서 사실상 무죄 취지로 파기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 핵심 유죄 증거 부인

대법원이 문제 삼은 증거는 '425지논'과 '시큐리티'라는 문서 파일이다. 2013년 검찰 특별수사팀 수사 때 국정원 직원들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는데 그 가운데 직원 김 모씨가 한 포털 사이트 자신의 이메일 계정 중 '내게 쓴 편지함'에 첨부파일로 보관하던 파일이었다.

425지논 파일에는 직원들이 매일의 업무 방향에 대한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슈와 논지' 등이 담겨 있었다. 시큐리티 파일에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으로 추정되는 계정 269개와 각각의 비밀번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로 보이는 명단 등이 담겨 있었다.

우선 두 파일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전문(傳聞) 증거'에 해당해 증거 자체로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 증거를 작성한 사람이 법정에 나와서 "내가 직접 쓴 증거"라고 밝혀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 김씨는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법정에 나와서는 "검찰 진술은 착각에 의한 것이었고 두 파일을 내가 작성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서울고법 항소심은 이 파일을 심리전단 사이버 활동과 관련한 업무 관련 문서로 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그에 따라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형사소송법 315조 2호를 적용해서 김씨가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해도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315조 2호는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에 대해 '당연히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문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파일 내용이 업무상 필요한 통상 문서라는 판단이었다.

◆ 대법원, 증거능력 엄격한 판단

매일경제

대법원은 그러나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문제가 된 두 파일에 형소법 315조를 규정할 때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우선 "항소심이 유죄 증거로 삼았던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은 출처를 명확히 알기 어렵고 단편적이고 조악하다"고 밝혔다. 또 "파일 내용이 실제 업무 수행 때 어떻게 활용된 것인지 알기도 어렵고, 다른 직원들에게선 발견되지 않아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을 위해 통상적으로 작성된 업무 문서로 볼 수도 없다"고도 했다.

특히 대법원은 "김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도 포함돼 있고 그런 정보의 양도 상당해서 업무를 위해 쓴 것이라 보기 어렵고, 내용도 알기 어려워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같은 분석을 근거로 "항소심 핵심 유죄 증거들의 증거능력이 부인됐기 때문에 국정원 사이버 활동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게 됐고, 그에 따라 항소심의 유죄 판단은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 대선 정당성 논란 해소됐나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유보적인 판단 탓에 2012년 대선 결과의 정당성 논란이 완전하게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검찰은 "파기환송심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 대부분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항소심까지 수사를 통해 확보한 모든 증거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공안 수사 경력이 많은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직접 뒷받침하는 증거를 새롭게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결국 파기환송심이 마무리돼야 대선 정당성 논란이 해소될 수 있겠지만 대법원 판단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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