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레이더P] 결론못낸 원세훈 운명과 대선 정당성 논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법원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4)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선고된 징역 3년의 실형 판단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들이 "제대로 된 증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는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최종적인 유무죄 여부는 조만간 벌어질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결정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6일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에게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글 등 사이버 여론 조작을 지시해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항소심이 증거능력에 대한 법리를 잘못 이해한 탓에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한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항소심은 검찰이 핵심 유죄 증거로 제출한 국정원 직원 김 모씨의 이메일 첨부파일 두 건('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기 때문에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항소심 유죄 증거가 된 두 파일은 정기적·규칙적·기계적으로 작성돼 업무 관련 문서라는 강한 신뢰를 줘야 하는데 파일 내용에 신변잡기, 여행, 취미 등 업무 문서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증거가 된 파일의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업무 관련 문서에 대해 당연하게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315조를 적용해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법원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유죄 판단은 파기했지만 보석신청은 기각해 원 전 원장이 풀려나진 않았다.

매일경제

대법원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4)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선고된 징역 3년의 실형 판단을 파기했다. [사진 = 매일경제DB]


◆ 파일 2건의 증거능력 문제

대법원이 문제삼은 증거는 '425지논'과 '씨큐리티'라는 이름이 붙은 문서 파일이다. 2013년 검찰 특별수사팀 수사 때 국정원 직원들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는데 그 가운데 직원 김모씨가 한 포털사이트에 있는 자신의 이메일 계정 중 '내게 쓴 편지함'에 첨부파일로 보관하던 파일이었다.

425지논 파일에는 직원들이 매일의 업무 방향에 대한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슈와 논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씨큐리티 파일에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으로 추정되는 계정 269개와 각각의 비밀번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로 보이는 명단 등이 담겨 있었다. 서울고법 항소심은 이 파일들을 심리전단 사이버활동과 관련한 업무 관련 문서로 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그에 따라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우선 두 파일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전문(傳聞)증거'에 해당해 증거 자체로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 증거를 작성한 사람이 법정에 나와서 "내가 직접 쓴 증거"라고 밝혀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 김씨는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법정에 나와서는 "검찰 진술은 착각에 의한 것이었고 두 파일을 내가 작성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항소심은 그러나 형사소송법 315조 2호를 적용해서 김씨가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해도 두 파일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315조 2호는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를, 315조 3호는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문서'를 ‘당연히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문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 대법원 엄격한 판단

대법원은 그러나 이러한 판단을 뒤집었다. 문제가 된 두 파일에 형소법 315조를 규정해서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에 대해 "작성자에게 맡겨진 사무처리 내역을 계속적, 기계적, 규칙적, 반복적으로 써서 거짓으로 볼 여지가 없는 신뢰도 높은 문서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항소심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두 개의 파일은 그런 신뢰를 인정하기 어려워서 통상적인 업무 관련 파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대법원은 문제의 파일들에 직원들의 신변잡기와 여행, 취미, 격언, 직원들 경조사 일정 등이 포함돼 있어 통상적인 업무 관련 문서라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조만간 진행될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새로운 유죄 증거에 대해 다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선 정당성 논란 해소됐나

대법원이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무죄라고 판단하진 않았기 때문에 2012년 대선의 정당성 논란이 완전하게 해소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항소심까지 수사를 통해 확보한 모든 증거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만 달랐다는 뜻이다. 공안 수사 경력이 많은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직접 뒷받침하는 증거를 새롭게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결국 파기환송심까지 종료돼야 대선 정당성 논란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 김세웅 기자]
[정치뉴스의 모든 것 레이더P 바로가기]
기사의 저작권은 '레이더P'에 있습니다.
지면 혹은 방송을 통한 인용 보도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