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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메르스, ‘일류’ 삼성서울병원이 사고치고 ‘서자 취급’ 공공병원이 뒷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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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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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메르스의 경고 ④ 수익만 좇는 한국의료

“국내 최고 병원이라 자부하는 우리 병원에서 환자를 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니 참담한 심정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15명이 지난 3일 국립중앙의료원 등으로 이송됐을 때 이 병원의 한 임상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의사들 사이에서 ‘치료중인 환자들 볼 낯이 없다’는 자조적인 한탄이 쏟아졌다. 메르스로 초토화된 병원이 언제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 부분폐쇄’라는 초유의 사태만으로도 수치스러운데, 결국 메르스 환자 치료에서 손을 떼고 다른 병원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 처지를 염두에 둔 말이다.

삼성서울병원은 고가의 로봇수술 장비와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 최첨단 의료기기로 중무장한 ‘의료계 군비경쟁’의 선두주자다. 이를 무기로 전국의 환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하루 평균 외래 진료 환자만 8000여명에 이를 정도다. 하루 매출액은 30억~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는 15일 현재 90명이다. 국내 메르스 환자(186명)의 절반 가까이가 이 병원에서 나온 셈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 감염자가 17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돌보던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줄 미처 모르고 진료를 하다 옮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알고도 당한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의료계 안팎에선 삼성서울병원이 감염 관리 등 환자 안전을 위한 기본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익만 좇은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상징적인 사례가 메르스 사태 이전엔 이 병원에 각종 감염병 환자를 격리 치료할 음압병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음압병실은 병실 안의 공기 압력을 외부보다 낮게 해 환자한테서 나온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밖으로 퍼지지 못하도록 한 곳이다. 환자 안전과 병원 내 감염을 막을 필수 시설이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든다. 병실 한곳당 설치비만 4억원을 훌쩍 넘는데다, 한 해 전기요금도 병실당 5000만원 넘게 나온다. 반면 메르스 등 감염병 환자는 대부분의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엠아르아이 등 값비싼 검사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삼성서울병원이 음압병실을 갖추지 않았다는 건 환자 안전과 감염 차단보다 ‘돈’을 중시했다는 방증이다.

삼성서울 감염 차단 소홀
‘메르스 환자 전원 이송’ 굴욕당해
홀대받던 공공병원들이 치료 도맡아
공공의료 비중 10%…OECD는 75%
“공공의료 확충 사회적 노력 필요”


음압병실만이 아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의료진 감염을 막을 방호복마저 제대로 구비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이 모든 의료진한테 방호복을 지급한 때는, 메르스 첫 확진환자 발생 뒤 한달 가까이 흐른 6월17일이다. 방호복 미비는 이 병원 의료진의 추가 감염이 잇따랐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방호복이 부족해 상당수의 의료진은 평소 입던 진료복과 마스크만 쓴 채 진료에 나섰다. 이들 가운데 메르스 확진자가 나오자 다른 병원에서 방호복을 긴급 조달해야 했다”고 전했다. 일회용인 방호복(레벨D)의 한벌 값은 1만5000원가량이다. 이 병원 의료진 1000명 모두한테 지급하면 하루에 1500만원이 드는 셈이다. 삼성서울병원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액’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병원은 필요한 조처를 즉각 취하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런 사정은 삼성서울병원만이 아니라 다른 대형 민간병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빛을 발한 곳은 평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공공병원이다. 국립중앙의료원·서울의료원·서울시보라매병원 등 대형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서 포기하거나 기피한 메르스 환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메르스 환자 치료를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 공공병원은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에이즈 환자들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오랜 홀대로 공공의료 비중이 형편없이 낮아서 빚어진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병상 수 기준으로 10%가량에 그친다. 전체 병상이 100개라면 공공병원 몫이 10개뿐이라는 뜻이다. 의료복지가 잘 갖춰진 영국이나 캐나다는 공공의료 비중이 99%나 되고, 오이시디 평균도 75%에 이른다. 심지어 민간의료의 천국이라는 미국(25%)에 견줘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메르스 확산이 이 정도 선에서 그쳤으니 망정이지 더 확산됐다면 공공병원도 심각한 병상 부족 사태를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국내 공공병원은 정부한테서 ‘돈’을 벌라는 압박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진주의료원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 민간병원이 꺼리던 환자를 돌보며 지역거점 공공병원 구실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13년에 부채와 적자가 많다는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업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는 공공병원마저도 제구실을 하기 힘든 처지임을 보여준다.

문정주 서울대의대 겸임교수는 “공공의료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응급의료나 감염병 진료 등을 담당하다 보니 경영상 손해가 불가피할 수 있다. 이른바 ‘착한 적자’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확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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