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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메르스 위기를 기회로…감염병 전담기관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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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칠순의 노(老)학자는 백팩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 바이러스 연구만 49년째, 국립보건원에서 31년, 대한바이러스학회 회장까지 지낸 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신영오 박사(71·전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다. 신 박사는 아침 8시면 KISTI 연구실에 출근한다. 외국 논문과 리포트를 꼼꼼히 읽고, 보고서를 쓰다 보면 밤 8시를 넘기기 일쑤다. 요즘은 대한바이러스학회 40주년 사업으로 연말에 출간할 일반인을 위한 '바이러스 도서(가칭 바이러스 이야기)' 발간 책임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다.

"이변이 없는 한, 메르스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장마도 오고 있으니 습기에 취약한 메르스 바이러스 약화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지금이 아주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고칠 부분은 고치고, 준비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적기지요. 누군가에게는 주제넘거나 쓴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은 이런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신 박사는 메르스 대응 과정의 시행착오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처음에 발표된 '메르스 대응 요령 9가지'를 언급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감염자와 접촉자를 타깃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며 "일반 대중에게 너무 자세하게 전문지식을 알리는 것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으며 꼭 지켜야 할 최소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스는 어이없게 당한 사건이고 국가적 불행이었어요. 하지만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발생한 만큼 앞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과제도 많습니다. 메르스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고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데 있어 외국에 비해 여러 가지 유리한 여건이 조성됐습니다. 에이즈 환자가 많았던 미국에서 에이즈 치료제, 진단제 연구와 관련 제품 시장을 선도했던 것처럼요."

메르스 바이러스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인지 신 박사는 두렵지 않은 듯했다. 그는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물론 그런 대응이 확산을 막은 점도 있을 것"이라면서 "딸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도 되느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했더니, 아빠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우리는 바이러스 연구 강국입니다. 우리 정부에도 감염병 전담기관의 복구가 필요합니다. 즉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와 CDC 감염병관리원(Office of Infectious Disease)을 통합한 기관의 복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의료기관은 병원체 관리 전문가인 바이러스 학자의 지식을 활용해야겠지요. 공수병 백신을 개발해 수백만 명을 살린 파스퇴르나 에이즈 바이러스를 규명한 시누시 박사처럼 '실험실 과학자'들을 대우하고 지원해주는 게 중요해요. 메르스 같은 신종 바이러스는 분명 또 옵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지요."

KISTI는 퇴직한 고경력 과학자들이 최신 과학 정보를 지원하는 reseat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전문연구위원 192명이 선발됐다. 신 박사도 그중 한 명이다.

"저는 192명 중에서 중간 나이밖에 안 돼요. 80대 후반 연구원이 얼마나 짱짱하게 공부하시는지 모릅니다. 평생 영어를 했는데, 요즘 실력이 가장 낫습니다. 그만큼 치열하게 하니까요. 열심히 연구한 결과물을 많이들 보시고 참고했으면 합니다. KISTI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보실 수 있습니다."

[신찬옥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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