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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광복70년> 고난 속에서 핀 '꽃'…격랑의 70년 정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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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 6·25전쟁…'대한민국호' 시련 속 출발

산업화·민주화 넘어 선진화 과제…갈 길 멀어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광복을 기점으로 시작된 지난 70년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질곡의 역사였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지만 그 이면에는 '분열의 씨앗'이 태동하고 있었다.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 민족은 남북 분단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혔고, 결국 새로운 통일국가 수립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도 제대로 내딛지 못한 채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 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을 고착화했다.

이후 남북한 대치 구도 속에서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선진국 초입단계에 진입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또 척박한 토양에서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냈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이념 논쟁이 한꺼번에 분출돼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고, 지역주의가 고착화됐으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면서 국민 불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 해방 직후 정국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진주하면서 좌·우익이 충돌했고, 해방의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남한에서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북한에서는 그해 9월9일 김일성이 자체 정부 수립을 선언, 한반도에서는 '1민족 2체제'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민주주의 국가로 갓 태어난 대한민국에 엄청난 시련을 가져왔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4사5입 개헌을 통해 영구집권을 시도했고,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결국 경남 마산을 시작으로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져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 5·16 쿠데타와 군사정부 등장 = 4월 혁명 이후인 1960년 8월 내각제 개헌을 토대로 장면 총리가 이끄는 제2공화국이 출범했지만, 혼란속에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민정은 9개월만에 붕괴되고 군사정권체제로 바뀌었다.

2년여 군정을 거쳐 1963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권위주의 정부 시대를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와 경제 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정책을 펴나갔고, 그 결과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한강변의 기적'을 이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상당부분 훼손당했다. 박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은 1969년 9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1972년 10월에는 대통령에게 초헌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유신독재체제로 이어졌으나 그 체제는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숨지면서 막을 내렸다.

◇ 신군부 등장…또다시 암흑기 =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정권 변동기에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한 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전두환 정부는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강력 탄압하며 정권을 유지했으나 1987년 1월 서울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6·10 항쟁으로 확대됐고, 결국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내용의 6·29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87년 12월 대선은 민주화 세력에게 또 다른 좌절을 안겨줬다. 민간인 정부수립을 향한 꿈이 부풀어 올랐지만, 야권 분열로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 3당 합당과 문민정부 출범 = 1990년 1월 당시 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 대통령과 민주당 김영삼,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 거대여당이 탄생했다.

이후 1992년 12월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꺾고 승리하면서 '군정종식'을 선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숙청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도입 등 각종 개혁조치를 취했고,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1979년 12·12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는 6·25 이후 최대 시련, 최대 위기에 직면했고,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는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 헌정 사상 첫 번째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정착 = 김대중 정부 출범은 헌정 사상 첫 번째 정권 교체였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이후 외환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 경제 재건에 최우선 임무를 둬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각종 개혁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확산하고, 이로 인해 소득 재분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는 특히 '대북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실시하고, 2000년 6월15일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었다. 하지만 뒷날 '대북 퍼주기 논란'이 제기돼 남북정상회담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2003년 2월 진보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바통을 이어 받으면서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분권 및 지방자치의 확대로 이어졌으나 정치권 갈등 심화로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이유로 국회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 다시 보수로…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출범 = 2007년 12월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0년만에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국가권력이 교체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싼 광우병 촛불시위를 겪으며 사회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심화됐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3년 내내 국정원 댓글사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 등으로 야당과 대립했고, 2014년 4월16일엔 세월호 참사까지 발생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을 둘러싸고 여야간 정쟁이 이어지는 등 정치권 대립은 우리 정치의 불치병이 되고 있다.

◇ '대화와 타협의 정치' 언제쯤?…갈길 먼 한국 정치 = 해방 이후 우리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데 이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지만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 구현하는 질적인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복원,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몽니문화' 청산과 함께 뿌리 깊은 지역주의, 사회적 양극화 해소 등이 우선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힘(Power), 이념적 양극단(Polarization), 포퓰리즘(Populism)에 의존하는 '3P 정치'에서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를 기초로 하는 '3C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 거대 정당이 정치 현실을 지배하는 폐쇄적인 정당구조를 깨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정당이 2개밖에 없으니 국민 요구가 반영되지 못하고, 정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며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면 지역 독점 구도도 깨질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과거보다 상당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상당히 취약한 상태"라면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대통령제에서 합 의제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정치인들이 룰을 지키겠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고, 유권자는 룰을 지키는 않는 정치인에 대해 투표를 통해 확실하게 심판하겠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esus786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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