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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레이더P] 무늬만 삼권분립이 현실… 곳곳에 산재한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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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에 제동을 걸 수 있게 한 개정국회법을 계기로 입법부와 행정부 간 권력분립이 쟁점됐다. 청와대·정부는 "삼권분립 위배"라고 하지만 국회는 "과한 해석"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표면적 갈등에서 한걸을 떨어져 보이면 다른 게 보인다. 단순히 법률과 시행령 문제가 아니라 내각제 요소가 덧칠된 우리네 대통령제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즉 '느슨한' 삼권분립,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의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삼권분립'만을 외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입법권, 국회와 정부가 분점...‘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무색

우리나라는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줌으로써 의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력을 사실상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점하고 있다.

더구나 행정부는 입법부의 '법률 생산능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고위 공무원 중에는 본인들이 법을 만들고 실제 집행까지 한다고 믿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의원들은 '표'를 의식하기 때문에 국가재정을 위협하고 각종 규제를 양산하는 입법이 대부분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도 의원입법에 대해 "그냥 막 나오는 법들"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고, 또 "국회차원에서 의원입법에 관한 규제 심의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대부분 불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특히 과거와 달리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입법능력이 향상됐음을 내세운다. 실제 14대 국회에서 35.6%에 불과했던 의원발의 법안 비율은 19대에서 94%까지 늘어났다.

반면 하위법인 시행령은 정부가 독점한다. 국회의원들은 종종 "관료들이 시행령으로 장난을 친다", "법률은 국회의원 뜻대로 만들어준 뒤 실제 국정운영은 시행령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관료들이 많다"는 등 공무원집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곤 한다.

19대 국회에서 관련법률안만 다섯개가 제출돼 있었고, 이번 개정안에 반영됐다.

이번에 개정국회법 '제98조의 2 제3항' 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관료들이 가진 시행령 제정권이 법률의 본래 취지를 뭉개버릴 정도로 막강하다는 정치권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31일 "입법권은 법률과 시행령이 합치될 때 완성된다"며 "국회의 시정요구가 위헌·위법할 경우 불복, 권한쟁의 등 행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다"며 삼권분립 위배 논란을 일축했다. 즉 의회의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행정부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 법률제출권 폐지 주장도, 현실은 국회 역량부족

일부에서는 행정부가 본연의 기능인 정책 집행에만 집중하도록 '법률제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 예산 역시 미국 처럼 국회가 직접 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현재 국회가 행정부를 배제할 정도의 독자적인 능력을 갖췄느냐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적으로 성장을 했지만 아직 질적으로는 관료 집단과 비교했을때 부족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7명의 보좌진 중 지역구, 수행, 행정업무 담당자를 빼면 정책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2명, 많아야 3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현 인력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좌진 숫자를 대폭 늘리던지, 각 의원실별로 책정된 총액 범위 내에서 의원이 자유롭게 인원을 활용하게 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국회 진출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걸림돌이 있다.

◆내각·청와대 아래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인사 문제 있어서도 권력분립의 모순은 작용한다. 최근 청와대 정무특보 논란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현역 여당 의원 세명(주호영·윤상현·김재원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했다.

하지만 독립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비서진의 한 형태인 특보직을 맡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윤상현 의원은 공무원연금에 대해, 김재원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한 점을 두고 당내에서 특보직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또 비록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현역 의원들이 내각을 겸직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행정부를 견제할 당사자가 행정부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대통령제에서는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청와대 보좌진으로 입성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과의 차별성도 존재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제도 도입 이후 100% 통과를 자랑하는 정치인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점도 새로운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정부는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과도한 발목잡기라는 시각이 강하다.

◆정치를 판단하는 사법부…개헌 이외 뾰족한 대책 없어

최근에는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치의 영역'을 사법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사법부는 주요 정치적 이슈들이 법원으로 밀려들면서 정치적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 행정수도 특별법 위헌소원, 통합진보당 해산 등이 대표적이다. 선출직인 의원들이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타협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부 판단에 맡김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권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개헌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개헌을 통해 정부의 법률제출권을 삭제하고, 의원의 내각겸직 금지 규정을 마련하면 되는 문제다. 다만 엄격한 삼권분립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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