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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미워도 찍어주겠지”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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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또 졌다. 서울, 인천, 성남에서 그리고 텃밭인 광주에서마저 졌다.

호남 사람들은 계속 찍어줘도 야당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앞으로 호남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총력을 투입했다. 광주 서구을을 동별로 잘게 나눴다. 동마다 국회의원들을 전담시켰다. 보좌관, 지역구의원, 시의원을 총동원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그러나 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으면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엇비슷하게 나와서 막판에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좀 있었다. 그러나 광주를 다녀온 당직자나 보좌관들은 다 그러더라. 100% 진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한 호남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끝났다. 새정치연합이 싫어도 새누리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지역의 심리는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는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됐다. 이변이었다. 그러나 이번 4·29 재·보궐선거 결과는 새정치연합에 대한 광주 민심의 외면이 더는 이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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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 /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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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에 기대할 만한 인물 없다”

호남의 정치권 관계자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호남에서 야당에 대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정서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호남 사람들은 계속 찍어줘도 야당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신당 만들었다가 새정치연합이 깨져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이제 안 한다. 새정치연합 말고 조금 더 혁신적인 당이 만들어져서 서로 보완해주면서 가면 좋겠다, 이런 정도의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한때 뜨거웠던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후,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에 대한 기대는 별로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호남이 안철수 현상의 발원지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안철수 자체를 희망으로 본 것이 아니라, 안철수를 통해 야권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희망도 식어버리니 새정치연합 내에서 기대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다는 게 이 지역 민심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를 여러 번 찾아 윤장현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던 안철수 의원은 이번 재·보궐선거 기간에는 광주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는 오래전부터 호남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른바 친노의 ‘영남패권주의’ ‘호남홀대론’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 대표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호남에서의 지지율은 낮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호남에서는 90% 안팎의 득표율을 올렸다. 그러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호남에서 20~30%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영남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70~80%다. 그러나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은 20~30%에 머물러 있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 대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호남 지지율만 올라가면 30% 중반을 찍을 텐데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당 안팎에서는 ‘영남패권주의’ ‘호남홀대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문 대표가 동교동계를 비롯한 호남 인사들과 스킨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빗발쳤다. 박지원 의원 및 동교동계와의 화해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에게 숙제처럼 주어졌다. 그러나 광주 정치권 관계자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동교동계나 박지원 의원과 ‘잘 지내는 게’ 호남 민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남에서 정치생활 해먹을 만큼 해먹은 사람들한테 잘하라는 게 호남 민심이 아니다. 공천을 비롯해 새정치연합 1당 체제인 호남 정치가 바뀐 게 뭐가 있나. 호남 민심을 전혀 못 읽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남 민심이 문재인 대표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변화에서 눈여겨볼 지표 중 하나로 부산의 문재인 대표 지지율 상승과 호남 및 진보층의 지지율 하락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든다. 빠져나가는 지지층과 유입되는 지지층을 살펴보면 문 대표의 노선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은 호남과 진보층이다. 영남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곳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문 대표가 부산의 중도층에게 표심을 얻고 있다고 분석하며 “야당과 문재인 대표의 지지도를 보면 최근 완만하게 소폭 상승하고 있는데, 주목해 볼 부분은 부산에서 25%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당 후보가 부산에서 20% 이상의 지지율을 올린 경우는 지난 10년 이래로 없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영남의 중도층이 유입되고 이와 맞물려 개혁을 요구하는 호남 및 진보층이 이탈하는데, 문제는 호남 및 진보 유권자 분열은 뚜렷하지만, 중도층 유입이 이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으로 치러진 선거이다 보니 진보적 유권자층이 모여 있는 지역구가 많았다. 이들 지역구는 개혁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은 유권자들이 많은 곳이다. 관악을은 실험적인 진보정당들의 도전이 성공했던 사례가 많은 지역구이며, 성남은 노동자·서민계층이 많이 밀집된 곳이다. 국민모임이라는 진보 대안그룹을 배경으로 등장한 정동영 후보는 20.15%의 득표율을 보였다. 관악을의 투표율은 36.9%로 평균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호남 출신과 야권 지지층이 많은 지역구인데, 이들이 대거 새정치연합 지지에서 정동영 후보 지지로 돌아선 셈이다. 반면 성남 중원구는 통합진보당 외에 다른 진보진영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율은 31.9%로 평균보다 5% 정도 낮았고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55.9%로 새정치연합의 정환석 후보를 10%포인트 가까이 따돌리고 당선됐다. 성남의 낮은 투표율과 표 차이는 진보적 유권자층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성남에서도 새정치연합을 지지했던 진보적 유권자층이 투표를 포기하면서 지지층에서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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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소감 말하는 정동영 후보. / 연합뉴스


허약한 당 조직력 고스란히 드러나

지지층 이탈은 당대표의 미온적인 개혁 드라이브나 리더십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새정치연합의 허약한 조직력 또한 주요 패인이다. 이번 관악을 선거는 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번 재·보궐선거 조건이 너무 안 좋았다.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전 장관이 출마한 건 악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적인 선거 변수보다는 선거 변수에 휘둘리는 새정치연합의 조직력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아닌 재·보궐선거는 조직표가 무엇보다 중요한 선거다. 각 당이 해당 선거구에서 어떻게 조직을 관리해 왔는지, 조직을 동원하는 네트워크를 얼마만큼 튼튼하게 가지고 있었느냐는 ‘밑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선거인 셈이다. 그러나 관악을 선거에서 김희철 전 의원이나 이행자 구의원이 자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정동영 후보를 측면 지원한 것은 새정치연합 조직의 허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정치연합 측 관계자는 “관악을은 몇몇의 지역 맹주들이 자기 조직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지역위원장이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당원들끼리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시민과 세계> 26호에 기고한 글에서 “새정치연합은 일상정치의 문제가 의제화·쟁점화되는 시스템이 가동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당원 대중이 없는, 10%에 불과한 노조 조직률이지만 그 노동조합과의 연계가 끊어진 부유정당 또는 명사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원과 대중이 당의 어젠다나 가치를 중심으로 전혀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무소속 변수’ ‘제3당 변수’는 어느 선거에나 있었던 것이라며 정당 입장에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새정치연합은 선거 악재를 패인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상당 기간에 걸쳐 누적된 불만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악을의 패배에서 새정치연합이 제대로 배우려면 보다 안정적인 조직화 기반을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당대표 책임이라고 하고 여기에서 학습하지 못하면 새정치연합은 살아남지 못한다. 광주 서구을 선거도 단기적으로 ‘누구를 공천했느냐’ ‘선거에서 열심히 뛰었나 안 뛰었나’의 문제로 볼 게 아니다. 광주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 지배정당이 계보를 잇는 선거 시스템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경쟁적 환경에서 선택을 해보자’는 것은 호남 유권자들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이해할 만한 표출이다. 새정치연합도 호남이 당연히 ‘우리 것’이 아니라 경쟁적 환경 하에서 호남 유권자들의 고민을 이해해야 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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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광주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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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견제” 목소리도 설득력 잃어

향후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 견제세력으로 무조건 지지를 받는 것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과거처럼 새누리당 견제를 위해 후보단일화의 당위성만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후보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비판을 받았다. 재·보궐선거 이후 정동영 전 장관에게도 ‘배신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과거처럼 지배적이지는 않다. 국민모임, 정의당을 비롯해 4자 통합을 추진했던 진보진영 내에서는 관악을 출마로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당장 진보 결집의 끈을 놓기보다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일단 이번 선거에서 정 전 장관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당조직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꼈다. 정 전 장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당장 일희일비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위한 움직임에 매진해야겠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향후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합종연횡이 높게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연이은 패배를 기록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이번 재·보궐선거의 결과에서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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