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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정민이 만난 사람]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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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에게 앙금 있지만 … 정권교체 위해 분당 만류

친노서 당직·공천 독점해 불만 많아

재·보선 보고 당 깨자는 사람 여럿

대북 송금 특검, 현대 비자금 문제 …

문 대표가 확실한 입장 내놓아야

지지도 1위 문 대표, 절호의 기회

박원순·안희정·안철수도 눈여겨봐

4·29 재·보궐선거를 돕지 않겠다는 동교동계의 ‘정치 파업’은 수습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내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추미애 최고위원이 동교동계의 행태를 ‘지분을 챙기려는 정치’라고 공개 비판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한솥밥을 먹던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으로 시작된 균열이 친노무현계와 비노무현계, 동교동계와 비동교동계 간 신경전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추 최고위원이 한때 정·천 전 의원 등과 함께 이른바 ‘정풍(整風)운동’을 주도했던 ‘옛 동지’란 점이 극적 효과를 더한다.

파란의 한가운데 있는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86) 고문. 그를 지난 9일 만났다. 오전 9시50분 용산역에서 새로 개통된 호남선 KTX로 광주광역시를 방문, 오후 9시25분 서울로 돌아오는 12시간에 걸친 동행 취재다. 권 고문은 차기 여야 대선 후보 중 문재인 대표가 1위를 달리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우리를 지지하는 국민의 명령은 정권교체인데, 이런 호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뭉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당내 일부에서 친노계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앙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지금은 단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문 대표가 (불신을 가져온) 여러 문제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고문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분당하자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그러나 당을 깨고 새로 만들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영원히 없어진다고 타이르고 있다”고 말해 당내 갈등이 완전히 잠재워진 게 아니라는 걸 내비쳤다.

중앙일보

권노갑 고문은 “친노계가 지난 총선 때 한광옥 전 대표 등에게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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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묘역에서의 결의(3월 31일)는 권 고문의 뜻이었나.

“관악을 후보 경선에서 김희철 후보가 0. 6%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당심이나 당원 조사에서 앞섰는데 이번에도 일반 여론조사에서 (친노계인) 정태호 후보에게 떨어지자 여론 조작 논란이 일었다. 친노들의 경선 방식이 늘 그랬기 때문에 관악구 당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당원들을 커버하고 있는 이훈평 전 의원이 묘역에 와서 ‘권노갑 고문이 문 대표를 지원하는 움직임에 대해 여기서 찬반을 하자’고 하니까 일제히 거수투표를 해 ‘도우면 안 된다’고 했다. 많은 당원의 반대에 따라 나도 모든 것이 결정될 때까지 지켜보자며 보류했다.”

-광주를 시작으로 후보 지원을 시작한 건 여론조작 논란이 해소됐기 때문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후보가 결정된 이상 의심이 많다 할지라도 반발하고 뛰쳐나가면 안 되고 일단은 수습하고 선거를 치르고 나서 앞으론 그런 방법을 안 쓰도록 고쳐 나가야 한다.”

- 그런 뜻을 동교동계가 따르기로 했나.

“8일 거구장에서 동교동계 전직 의원 등 60여 명이 모여 모든 결정을 나한테 맡기자는 의견을 도출했다. 일부 불만 세력은 문 대표 측, 소위 ‘노빠’(노무현 지지 세력)를 왜 도와주느냐는 불만이 여전히 있지만 문 대표를 도와 보궐선거는 물론 내년 총선, 내명년 대선에서 정권교체해야 하다는 의견은 같았다.”

-문 대표와 박지원 의원 간 합의 내용은 뭔가.

“그동안 있었던 오해를 풀었다. 문 대표가 대북 송금 특검 문제라든가,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구속 사건 등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6대 4 공천 지분도 합의했나.

“그런 얘긴 일절 없었다.”

-추 최고위원이 ‘묘역에서 분열을 결의한 건 DJ의 유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위원의 충정은 이해하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다. 친노가 60%, 동교동계가 40% 달라고 한 것처럼 비쳤는데 우리는 이미 정계 은퇴한 사람이다. 동교동계가 40% 주라고 할 이유가 없잖나.”

-지난해 11월 5일 문 대표와 만났을 때 6대 4 논의가 있었다는데.

“당 대표에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많은 표를 받고도 안 됐는데 앞으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뭘 할 것인가를 고민해 줘라, 김대중 대통령처럼 준비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자문단·교수단 만들어서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만약 당 대표가 되더라도 찍지 않았던 사람들을 포용하라고 했다. 과거 유진산·유진오·윤보선씨 같은 당수들도 주류가 60% 차지하고 나머지는 40% 비주류에게 할애했다. 지난 19대 때 공천을 보면 완전히 친노 독점이었는데 배분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걸 얘기했다.”

-문 대표의 출마를 반대한 건 박지원 의원 때문인가.

“대표가 되면 그만큼 상처를 입고 대선 후보로서의 준비가 소홀해진다.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안보·경제·사회·통일에 이르기까지 만전을 기해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뜻이었다.”

-문 대표의 문제인가, 친노의 문제인가.

“친노다. 당직이나 공천을 전부 독점했다.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 22명을 독점했고 지역구도 일방적으로 해버린 폐단 때문에 앙금이 생긴 거다.”

-불신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됐다고 보나.

“과거에 대북 송금 특검, 현대 비자금 문제, 도청 안 했는데도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도청했다고 해서 구속됐다. 나도 현대에서 200억원 받았다고 해서 구속돼 3년간 죄 없이 옥살이를 했다. 또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분당하지 않았나.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들이 김대중 대통령하고 차별성을 두려고 한 거다. 또 노 대통령이 ‘광주 시민이 나를 이뻐서 찍어줬느냐, 찍을 사람이 없으니까 찍어줬지’라고 말한 것, 문재인 대표가 민정수석 할 때 탕평인사를 하라는 정찬용 인사수석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이 많은 호남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걸 빨리 불식하기 위해선 문 대표가 입장을 밝혀야 된다.”

-동교동계의 집단 움직임을 호남 민심을 앞세워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계산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86세다. 동교동계가 나이가 다 먹었다. 우린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고 김대중 대통령 만들어 정권교체 했으니까 다시금 정권교체 하는 데 봉사한다, 당이 잘되게 하기 위해 채찍질하기 위한 차원이지 당에 편승해 지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 DJ는 동교동계 해체를 선언했다. 지금 동교동계가 있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동교동계다. 현실정치에선 박지원 의원 하나뿐이다. (※동교동계로는 설훈 의원이 있지만 권 고문은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과거엔 아니었다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고 마지막 비서실장 했으니까 동교동계다. 일부에선 거부감이 있지만 대표 경선 때 박 의원을 전적으로 밀어 거의 이길 수 있는 정도까지 가지 않았나.”

-이희호 여사가 박 의원을 지원한 걸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는 이 여사께서 앞장을 안 서는 게 좋다는 분도 있었지만 동교동 식구들을 뭉치게 하려면 이 여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가 모신 것이다.”

-권 고문이 광주서·관악을 지원에 나서는 건 과거 권 고문의 2선 후퇴를 주장했던 천정배·정동영 후보에 대한 구원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거기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없어졌다.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사과했고, 그걸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용서했다. 또 그 사람들은 내가 픽업해서 정치 입문을 시켰고, 어쨌든 그만큼 커서 하나의 자산이 됐는데 오히려 그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5년 전 구원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다. 구원은 없지만 이번에 탈당한 것만큼은 잘못된 선택이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권 고문과 동교동계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과거 김대중 총재 때도 우리가 전적으로 밀었지만 안 된 경우가 있었다. 전남지사 경선에서 허경만 지사를 밀지 않았는데도 허 지사가 당선된 적이 있고, 원내총무 경선 때도 우리가 밀었던 김덕규 전 의원이 안 되고 신기하 전 의원이 된 적도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 결정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이날 오후 권 고문은 광주 서구 조영택 후보 선거사무실에 들러 당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오는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뤘던 과업을 우리 새 대통령, 문재인 후보가 당선돼 과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똘똘 뭉쳐 단결해 좋은 기회를 갖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문 대표에 대한 지지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대선 후보로 문 대표를 지지하나.

“문 대표의 자질이나 자격·능력 문제는 현재 내가 말할 수 없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딴 후보들하고 정견 발표할 때 얼마나 앞설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여론상 앞서고 있는 게 하나의 기준은 된다. 문 대표가 25. 3%, 당 지지도가 27%다. 야당 후보가 여야 합쳐서 1위를 가고 있는 이런 일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없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보다도 앞서고 있다. 국민의 지지도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권교체를 위해 문 대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 집권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거다.”

-차기 후보로 박원순 서울시장·안희정 충북지사를 눈여겨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2년 후 경선에서 안희정 지사, 박원순 시장, 안철수 의원 세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S BOX] 순하고 어리숙해 ‘쑥구형님’ … DJ가 붙여준 별명은 ‘권 비단’

50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한 권노갑 고문에게 따라다닌 별명은 ‘쑥구형님’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쑥구는 너무나도 온순하고 어리숙하고 많이 둘려먹힌다는 뜻이여. 어릴 땐 유명한 운동(권투)선수여서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고 오야붕(두목) 기질이 있었지. 그런데 이 양반(DJ) 모시면서부터 쑥구가 됐지. 그 양반이 다 알아줬어요. 나에게 ‘권 비단’이라고도 했고 아무런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용각산’이란 말도 들었지.”

50년 넘게 이어온 정치 인생에 비해 그의 이력은 화려하지 않다. 3선 국회의원, 두 차례의 총재 비서실장(평민당·국민회의)이 전부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시킨 일,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했다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의 눈에 요즘 정치인은 “위아래 위계질서가 없고, 자기 매명을 위해 정치를 할 뿐 신의가 없는 사람들”로 비치고 있다.

그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역사의식을 갖고 현실을 직시하며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갖출 것을 당부했다.

이정민.강정현 기자 jmlee@joongang.co.kr

▶이정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mlee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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