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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안심대출, 뒤끝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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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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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계부채 구조 개선 위해 내놓은 40조원 규모 ‘안심전환대출’

대출 총량 관리는 손대지 않아 오히려 ‘독과’가 될수도 있어


변동금리·원금미상환 대출을 고정금리·원금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마무리됐다. 정부와 금융권의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 반응 속에 연간 한도로 설정했던 20조원이 단 4일 만에 동이 나버렸고, 부랴부랴 5일간의 추가 신청 기간을 두고 20조원이 더 투입됐다. 2월24일부터 3월3일까지 불과 9거래일 만에 40조원 가까운 대출 갈아타기가 이뤄진, 우리 금융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흥행작’이라고 할 만하다.

40조원은 가계부채 중 3%

안심전환대출이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느냐를 놓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정부 스스로는 안심전환대출을 가계부채 리스크 해소에 한 획을 그은 정책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정부는 그동안 빚의 총량보다는 변동금리와 거치식 또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에 집중된 불안정한 구조가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더 큰 문제라고 인식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부채 구조 개선을 강조해왔고, 고정금리와 원금분할상환 비중 확대를 독려해왔다. 그럼에도 수년 동안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던 가계부채 구조가 안심전환대출 출시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이니, 정부로서는 나름 내세울 만한 정책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할 법하다. 정부는 안심전환대출로 40조원 규모의 빚 갈아타기가 이뤄지면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이 최대 10%포인트 상승하고, 해마다 1조1천억원의 가계부채가 상환될 것으로 추산했다.

단숨에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한 차원 높였다는 측면에서 안심전환대출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안심전환대출이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포장되는 데 대한 불편함이다. 안심전환대출은 2014년 말 현재 1100조원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중 3% 수준에 불과한 40조원가량을 더 안정적인 구조로 바꿔놓는 정책에 불과하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가계부채 총량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로 급증했던 가계부채는 올해 들어서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3조4천억원 늘어 2월 기준으로 13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안심전환대출의 성공이 되레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은 구조 개선에 매몰돼 총량 관리라는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가계부채 총량 증가를 억제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안심전환대출 대상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는 안심전환대출을 통해 가계부채 구조의 위험수위를 낮추는 데 정책 목표를 뒀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타깃으로 삼았고, 대상자와 관련한 형평성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심전환대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제2금융권 대출자들과 고정금리 대출자들로부터 엄청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면서 형평성 논란은 정치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특히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을 안심전환대출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도 ‘선후’와 ‘경중’이 뒤바뀐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고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큰 제2금융권 부채에 대해 먼저 손을 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제외 “두고두고 논란될 것”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면 곧바로 원금을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원금 상환 여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을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형평성 논란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심전환대출은 늘어나는 원금 상환 부담으로 인해 소득 하위 계층보다 소득 중상위 계층이 이용할 가능성이 커, 저소득 계층의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최근 성명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자본금을 부담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은행에 팔아 대출을 전환하는 상품인 만큼 사실상 나랏돈과 민간은행의 미래 소득으로 이자를 감면해주는 것인데, 정작 빚에 허덕이는 저소득 계층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심전환대출이 가계부채 구조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을 내놓은 목적은 두 가지다.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미리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 금리 변동 위험을 제거하는 것과 빚을 나눠 갚아나가는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안심전환대출 신청자 1만 명을 표본으로 한 분석 결과를 보면,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시상환 대출을 분할상환으로 유도하는 정책 목표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만 명 가운데 기존 일시상환 대출자는 14.3%에 불과한 반면, 변동금리이면서 이미 원금을 갚고 있는 대출자와 분할상환 방식이지만 아직 거치 기간이어서 이자만 갚고 있는 대출자는 각각 23.7%와 62%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거치 기간이 끝나면 원금을 분할상환할 대출자와 이미 갚고 있는 대출자가 전체의 85.7%로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정부 주도의 시장 교란?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20조원을 긴급히 추가 투입하면서 벌어진 혼란과 지나치게 금리를 낮춰준 데 따른 대출시장 교란, 관치금융 논란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부는 애초 안심전환대출 한 달 한도를 5조원으로 하고 연간 20조원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 상황에서 보자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수요 예측이었던 셈이다. 결국 정부는 긴급하게 20조원을 추가 투입했고, 이에 따라 공급 계획 자체가 전면 수정되면서 연쇄적인 파급효과가 불가피해졌다. 당장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은행들로부터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인수해 이를 기초로 발행하는 MBS 규모가 대폭 늘어나면서 향후 MBS 유통 시장에서 큰 혼란이 예상된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 안심전환대출 물량이 대거 풀린 탓에 은행들의 상품 출시와 대출 영업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2.5~2.6%대의 금리에 고객들의 눈높이가 맞춰지다보니, 은행 입장에선 기존 대출 상품을 판매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입만 열면 금융개혁과 금융경쟁력 강화를 외치는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구조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 시장 기능을 무력화하고 관치금융의 그림자를 또 한 번 짙게 드리웠다는 점도 안심전환대출이 남긴 오점으로 꼽힌다.

김수헌 <한겨레> 경제부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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