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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대통령 ‘모든게 내 책임’ 태도 절실…문고리 3인방은 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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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⑥ 제언

전문가 좌담


단도직입,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성향과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 2년을 평가하는 참석자들의 언어는 신랄하고 직설적이었다. 그 2년은 무능과 무책임의 2년이었고, 국민에겐 실망과 낙담만 가득했던 2년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남은 임기 3년에 거는 기대치 역시 크지 않았다. 가시적 개혁 성과를 내기 위한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의 주문은 명료했다. “책임 의식을 갖고 초당파적 국가수반의 모습을 보여라.”

좌담은 지난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열렸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와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참석했다.

세월호·원전 부품조작·연말정산
최근 겪은 정부중에서 가장 무능

공약 통해 방향전환 한다더니
집권후 아예 시도 자체를 안해

몰락한 대처 모방하지 말고
메르켈 같은 포용적 리더십을


대통령의 무능인가, 시스템의 한계인가

한귀영(이하 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이철희(이하 이) 지난 2년의 키워드는 ‘무능’이다.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원전에 엉터리 부품이 들어가고, 통영함 납품 비리로 해군총장이 옷 벗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연말정산 논란은 또 어떤가. 최근 겪은 정부에서 가장 무능하지 않았나 싶다.

박성민(이하 박) 무능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 난 모르겠다. 준비 부족인지, 대통령의 능력 부족인지, 아니면 국가 시스템의 한계인지. ‘시대정신’이랄까, 과거엔 명확히 보이는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원인도 해결책도 불분명하고, 해결책을 안다 해도 국민 모두가 기득권화돼 실행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 어떻게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묻겠는가.

답안지는 대충 나와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프로세스로 풀어나가느냐다. 그게 리더십의 영역 아닌가. 대통령이 그 부분에서 독선·독주 행태를 보이니 문제가 안 풀리는 거다. 행정조직이 다른 데 신경 안쓰고 현안에 집중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관료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참사 전 누적된 비리와 무책임, 사건 당일 청와대와 군과 해경이 보여준 허술한 대응, 이후 정부의 해명 과정까지 총체적 부실의 연속이었다. 이게 과연 박근혜 정부 들어와 생긴 문제일까?

지금 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같이 살자는 거다. 중요한 건 ‘터닝’(방향 전환)이다. 박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터닝하겠다고 말만 하고 집권 후에는 터닝을 안 했다. 시도를 했는데 저항에 부닥친 게 아니라, 시도 자체를 안 한 거다.

한국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들은 터닝 자체가 쉽지 않다. 과거처럼 낙수 효과가 작동하던 시스템은 멈춘 지 오래다.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전 정권에 주어졌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중산층 붕괴와 일자리 유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 아닌가.

문제는 해법 자체가 매우 낡았다는 거다. 부동산 움직여 경제 살리겠다는 것인데, 전세계를 다 둘러봐도 이렇게 후진 해법을 쓰는 보수는 우리밖에 없다. 부동산으로 경제 살린다는 건 2008년 금융위기로 실효성이 없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으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난 비관적이다. 문제는 지금 대통령과 청와대가 남 탓만 하고 있다는 거다. 걸핏하면 국회 탓, 언론 탓이다.

여론조사 보면 ‘소통’ ‘인사’ 평가
100점 만점에 30점도 안돼

복지 늘린건 잘한 일
재정탓 축소하려해 우려

원칙과 신뢰 이미지 완전 깨져
공적 이미지 회복하는 게 시급


“무능했던 분야? 너무 많아서…”

‘무능’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사례나 장면이 있나?

세월호 참사다. 가깝게는 연말정산, 담뱃값 인상도 있다. 담뱃값 올려놓고 노인·저소득층 어렵다고 하니 저가담배 대책 꺼내는 식이다. 한마디로 준비가 없었던 거다. 연말정산도 마찬가지다. 반발과 부작용에 대한 예측과 해법이 있어야 했다.

거시적 평가는 나온 것 같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잘한 것과 못한 것 한가지씩을 꼽아보자.

복지 늘린 건 잘한 거다. 이명박 정부에 견줘 총량이 늘었고, 새로운 복지도 생겼다. 다만 재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복지 축소로 가려는 듯해 우려스럽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전문가 3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잘한 것으로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 확대를 꼽더라.

구체적 분야를 두고 평가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 대부분의 정책과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가장 평가가 박한 게 ‘소통’과 ‘인사’다. 대부분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서 30점이 안 된다. 긍정 평가가 많은 게 ‘민생’과 ‘외교안보’인데, 50점 수준을 유지하다 최근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잘못한 것은 무엇을 꼽을까?

무능했던 분야가 워낙 많아서(웃음). 다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유능했다. 세월호로 비틀거렸지만, 6·4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고, 7·30 재보궐선거를 압승하지 않았나. 무엇보다 과거 정부들과 달리 지배블록 내 불협화음이 크지 않았다. 외교는 평가가 엇갈리는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으면서 그런대로 잘했다. 남북관계는 무능했고, 경제는 최악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뛰어난 게 통치연합 관리다. 2012년 대선 때도 현직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고도 차별화에 성공했고, 초반 2년간 내부 분열 없이 지방선거, 재보선 잘 치렀다. 당대표·원내대표 모두 ‘비박’이지만, 큰 무리 없이 끌고 가지 않나.

지지율 떨어진 건 지난해 말 비선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면서부터다.

더 중요한 건 50대의 이반이다. 이들은 원래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세대가 아니다. 6·10 항쟁과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탄생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아이엠에프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부동산 침체와 전월세 폭등으로 노무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

그랬던 50대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건가?

사는 게 좀 나아질 줄 알고 이명박·박근혜를 찍어줬는데 더 어려워졌다. 그러니 패닉이 찾아온 거다. 지난해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봐도 수도권 50대에서 야당 지지율이 40%를 넘는다. 다음 대선에서 이 세대의 45%만 야당 후보를 찍어도 정권은 넘어간다.

대통령 걸핏하면 국회·언론탓
실망한 50대의 ‘이반’ 두드러져

국민·야당과 부지런히 소통하면
지지율 40%대 회복 할 것

가뜩이나 갈등·상처 많은 나라
‘다름’ 속 에너지 최대치 끌어내야


국정원 댓글·종북과의 싸움으로 허송한 2년

지난 2년을 전임 정부의 초반 2년과 비교하면 어떤가?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취임 1·2년차에 총선이 있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선거도 없고, 의석도 안정된 과반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도입한 것처럼, 속전속결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국정원 댓글, 종북과의 싸움으로 허송해 버렸다. 골든타임을 놓친 거다.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고도 일이 꼬인 데는 내부 주도권 다툼도 있었다. 2012년 대선 막판 남재준 (국정원장)으로 상징되는 ‘안보 보수’가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주도한 ‘민생 보수’를 제치고 의제선정을 주도했고, 대통령도 거기 말려들어갔다. 이제 와 새로운 뭔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 게다가 내년 총선 출마할 정치인들을 내각에 불러들였다. 상식에 어긋난다. 10개월짜리 장관이 뭘 할 수 있겠나?

‘지지율의 덫’에 걸렸다. 인사 문제 때문에 취임 당시 지지율은 좋지 않았지만, 1년차 지나면서 60% 후반까지 지지율이 치솟자 자신은 전임들과 달리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나아가 7·30 재보선에서 압승하면서 오만에 빠졌다.

박 대통령의 특기가 진영대결을 잘 만들어내는 거다. 지지를 철회하려던 중간층들을 꼼짝없이 붙든다. 겸손하게 방향 전환을 해야 할 시기에 ‘양극으로 갈라치면 버틸 수 있다’는 유혹에 휘말렸다.

‘민생 프레임’도 양날의 검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위기를 넘긴 것도 ‘민생 살리자’는 호소였잖나. 민생을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실감나는 변화가 없으니 국민은 더 분노하는 거다.

그게 한국 보수의 특징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고, 정권 잡고 나면 눈치 안 보고 기득권으로 회귀한다. 한국 보수에 대선은 전 재산을 거는 도박이다. 두번이나 져보니 잃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니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혁신이든 뭐든 다 하는 거다. 반면 진보는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지도 않고, 집권하고 나서도 지지층 눈치 보느라 뭔가를 결행하는 데 소극적이다.

권력관이 달라서 그렇다.

대선은 ‘권력 투쟁’이지 ‘담론 투쟁’이 아니다. 1 대 0으로 지나 10 대 0으로 지나 마찬가지다.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보수는 이게 회로화돼 있다.

남은 임기가 3년인데, 반전 기회가 있을까?

대선 때 상징 인물은 김종인이었다. 그런데 집권 뒤 간판이 남재준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대체됐는데 실력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남은 3년은 누구를 내세울지 궁금하다. 잘하려면 김종인 같은 인물로 돌아가야 한다.

지지율은 40%대까진 회복할 것으로 본다. 고정지지층이 워낙 탄탄하니까. 국민들 역시 어떤 특효약을 써도 경기가 살아나거나 중산층 소득이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도 이해하지 않을까.

공적 이미지를 회복하는 게 절실한 거 같다. 지난 2년간 원칙과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양김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공적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욕망조차 공적으로 비쳤다. 결혼조차 국가와 한 분 아닌가.(웃음) 이건 엄청난 상징자본이다. 대통령이 야당과 부지런히 소통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서라도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이란 모습를 보이면 지지율은 올라간다.

대통령이 당파성을 안 가질 순 없는 자리지만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탈정파’를 통해 보수·새누리당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어려운 게 아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국회 안에 여야 개혁파들이 합의해 만들어놓은 좋은 법안들이 상당하잖나.

복지·조세·교육 문제 등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기득권 다 버리고 동참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 청와대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문고리 3인방’ 자르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국민이 요구한다면, 오해가 있든 없든 따라주는 게 맞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데 왜 그러세요?’ 하잖나.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대처 모델 버리고, 메르켈 모델로 갈아타라”

박 대통령에게 추천할 만한 롤모델이 있을까?

대통령은 지금 몰락한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모방하고 있다. 대처만큼 내용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메르켈 (독일 총리)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메르켈 리더십은 기다려주고 포용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리스 문제 대처할 때 보면 단호하다. 메르켈 모델로 빨리 갈아타야 한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보수진영은 지금 과거·현재·미래 평가에서 진보에 다 밀리고 있다. 대통령 평가를 보면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명박·박근혜 합산 지지율이 김대중·노무현에게 역전당했다. 국정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2배에 이르고. 미래 평가인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야권 주자 4명의 합이 50%를 넘는다.

엊그제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경제가 불쌍하면 국민은 비참한 거다.

국민을 편들어주겠다고 해야지, 국민에게 편들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가뜩이나 갈등과 상처가 많은 나라 아닌가. 진정한 리더십은 다름 속에서 에너지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거다. ‘모든 게 내 책임’이란 태도가 절실하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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