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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원세훈 판결 분석] "내용 짧고 조잡… 특정후보 당선·낙선시킬 목적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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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 국정원 작성 2125개 게시·댓글 중 '선거법 위반' 대표 사례로 12건 제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 274쪽 가운데 30여쪽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거나 트위터로 실어 나른 글들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쓴 것은 주로 게시판 글과 포털사이트 기사 밑에 단 댓글이고, 트위터 글들은 남이 쓴 글을 리트윗(퍼 나르기)한 경우가 많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인정되는 게시글과 댓글 2125개 중 12개를 대표적인 선거법 위반 사례로 보고 판결문에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인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한 글'인지 애매해 보이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안철수 후보 반대 글로는 '정당을 만든다는 거냐? 안 만드는 거냐?'라는 제목으로 "두리뭉실_답이 없네"라는 짧은 글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반대 글 중 첫 번째로 제시한 글은 "(좌파들이) 선거 때만 되면 보편적 복지로 국민의 표심을 자극한다"는 요지의 비교적 긴 글이다. 그러나 막상 이 글에는 문재인이나 민주당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문 후보 비난 글로 예시한 4개 중 가장 자극적인 것은 '문재인, 일자리 뉴딜 선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댓글로 쓴 "그 세금은 누가 다 내라고요…누굴 바보들로 아나. 문재인 공약은 현실 가능성 제로…"였다.

재판부는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 반대 유형에 '남쪽 정부'라는 제목으로 "틈만 나면 국보법 폐지하자는 사람들 정말 이상하다.(중략)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니"라는 내용의 글을 제시했다.

재판부가 박근혜 후보 지지 유형으로 유일하게 제시한 글은 '북괴가 박근혜 엄청 무서워하는 듯'이라는 제목 아래 "매일 선동질하고 지령 내리고…이렇게 선동질이 심한 대선은 여태까지 없었음…하긴 당연하겠지. 누구 딸이냐. 북한이 오죽 박정희 싫어했으면 청와대로 특공대 파견했겠냐 ㅋㅋ? 이번에 문죄인이 돼야 링겔이라도 꽂아 줄 텐데 ㅋㅋ 근혜찡이면 ㅋㅋㅋ 북괴는 괴멸할 거다"라고 쓴 글이다. 2000개가 넘는 게시글·댓글 중 재판부가 박근혜 후보 지지 글로 유일하게 꼽은 사례치고는 내용도 부실하고 박 후보에게 별로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제시한 글은 정치 관련 글인 것은 분명하지만,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쓴 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짧고 조잡하다"고 지적했다.

[안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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