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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유죄 선고 났는데도 웃지 못하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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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무죄가 난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가 9일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데 대해 검찰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검찰로서는 무죄가 유죄로 뒤집히면 반가워할 일이지만 2년 동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분위기다. 검찰은 국정원 댓글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2년 12월부터 2013년 6월 원 전 원장을 기소하고, 이듬해 9월 1심 선고가 날 때까지 내부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직원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 위반에도 해당하는지를 두고 적지않은 내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당시에도 검찰 내부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 무리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은 법무부와 수사팀 일부의 반대에도 자신의 ‘1호 사건’으로 삼아 기소를 밀어붙였다. 검찰은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이례적으로 인터넷 댓글뿐만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서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며 수사를 진행했다. 수천건이던 대선개입 인터넷 댓글은 트위터로 옮겨가면서 수십만건으로 커졌다.이 와중에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직속상관인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식의 외압을 폭로하면서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사퇴했고,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도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좌천성 인사발령이 나면서 수사팀장도 교체됐다. 이때부터 수사와 재판은 동력 자체를 상실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1심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선거법이 무죄가 나자 항소 여부조차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주요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가 나면 곧바로 항소 의사를 밝히며 반발했던 여느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검찰은 항소 시한 하루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공소심의위원회까지 열어 항소를 최종 결정 했다. 공심위에서조차도 항소 여부를 두고 이견(異見)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했던 1심 때와 달리 항소심은 싱겁게 끝났다. 1심은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12·12, 5·18사건 보다 긴 37회 공판이 진행됐다. 증인도 32명에 달했다. 공소장이 3차례나 변경됐고, 판결문 별지만 5000쪽이 넘었다. 반면 항소심에서 검찰은 1심 무죄를 뒤집기 위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 1심에서 제출된 증거와 관련 증인 진술 등을 토대로 1심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이었다. 1심처럼 매주 집중심리 방식으로 열렸지만, 준비기일을 포함해 9차례 공판이 열렸고, 3개월 만에 선고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행위를 인정하고 법정구속한 데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 수사를 책임졌던 검찰 수뇌부가 모두 떠난 상태에서 지금의 검찰로서는 유죄가 났다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 기소를 밀어붙였던 채동욱 당시 총장은 2013년 9월 ‘혼외자’ 문제로 사퇴했고, 수사를 지휘했던 송찬엽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옮긴 뒤 이달초 검찰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검찰을 떠났다.

[전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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