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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무대’ 김무성, 구정치인 얼룩 지우고 ‘빅맨’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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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도전 나선 김무성 ‘미래 주자’로 이미지 변신 꾀해… 그동안의 공격수·막말 행보가 최대 걸림돌



30년 가까이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62)은 정치적 고비의 순간을 넘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12년 대선 때는 법적 책임을 무릅쓰고 유세장에서 NLL 회의록을 그대로 읽었다. 그 몇 달 전에는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 때 탈박 인사로 몰려 낙천했다. 김 의원은 탈당 카드를 매만졌지만 결국 공천에 승복,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8대 국회 때는 친박계 좌장 역할을 하다 친박에서 탈락, 친이계의 지원으로 원내대표까지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자 김 의원은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야당과 여당, 친박과 탈박을 오가는 우여곡절 정치인생의 시작이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7월 14일은 김 의원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까지는 늘 누군가를 위해, 당을 위해, 나라를 위해 결단하고, 투쟁하고, 백의종군했다면 이날만큼은 자신을 위해 싸우는 날이다. 그는 새누리당 당대표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권 잡으면 여권 2인자 급부상

김 의원은 현재 친박계의 대표주자 서청원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대표 후보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서청원 의원에 비해 한 발 앞서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당대표는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열려라 참깨’ 주문과도 같다. 2016년 4월 치러질 20대 총선의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여권의 2인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며 차기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지만 그가 넘어야 할 벽도 많다.

그동안 김 의원은 ‘선당후사’(先黨後私)를 내세우며 정치적인 야심은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악역을 담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대중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공격수, 막말, 구태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 의원이 자신의 스타일을 일부 바꾼 것도 이런 이미지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서 그는 미래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선거 슬로건도 ‘과거냐 미래냐’다. 카리스마형, 두목 스타일의 정치인과는 어울리지 않다. 김 의원 캠프 측은 세월호 참사를 역사적인 전환기로 삼고 싶다는 의미의 슬로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상대 후보인 서청원 의원을 ‘과거’로 규정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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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 공정경선 서약식에서 후보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김태호, 김상민, 김무성, 김영우, 박창달, 김을동, 홍문종, 이인제, 서청원 후보. / 정지윤 기자


서 의원이 과거라면 김 의원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대표한다. 미래란 말에는 그의 정치행보와 관련해 상당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젊은 층과의 소통 폭을 넓히고 있는 것도 ‘미래’와 무관치 않다. 6월 30일 오후에는 국회 의원동산에서 청년당원 등과 함께 ‘돗자리 공감 마당’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과거 새누리당을 ‘천수답 정당’(청년층 투표율 하락을 기대하며 투표일 날씨가 맑기를 바란다는 의미)으로 규정하며 당을 젊은 층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젊은 정당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과 ‘주종’ 아닌 ‘동지’ 강조

이어 7월 3일 오전에는 노량진 고시촌을 찾아 청년 고시생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컵밥을 먹기도 했다.

김 의원은 과거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시절부터 당이 젊은 층과 소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해오긴 했다. 하지만 구정치 이미지가 강한 그와 젊은 세대간의 거리는 아직 멀어 보였다.

노량진역 인근에 위치한 한 공무원 학원에 들어선 김 의원은 학생들과 악수를 하며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임을 직접 들었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한다는 한 학생이 “경쟁률이 1대 1000이다”라고 말하자 김 의원은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떤 여학생은 김 의원에게 사인을 부탁하며 스마트폰을 내밀기도 했다.

김 의원이 학원에서 만난 학생들과 길거리 컵밥을 먹으러 내려가자 20여명의 수행원과 기자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학원 안에 있던 한 학생은 “누가 왔는데 이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김무성”이라는 이름을 들려주자 그제야 “들어본 적은 있다”며 다시 이어폰을 꽂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김무성 의원의 팬이라며 고향이 부산이라는 한 50대 여성이 학원 안까지 들어와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정치전문가들은 김 의원 리더십의 장점으로 추진력과 돌파력을 들고 있다.

2012년 대선 때처럼 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김 의원은 적극적으로 나서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2004년 탄핵 열풍 직후 박근혜 대표 밑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정국을 한나라당 쪽으로 끌고오는 데 기여했다.

지금 그가 새누리당 내에서 신망받는 데에는 오랫동안 재력과 기질로 쌓아온 신뢰가 밑바탕에 있었다는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김 의원의 성장 배경이나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스타일 역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강점으로 꼽았다. 2인자가 아닌 1인자를 지향하면서 자연스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의 강점을 말하자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는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아버지로부터 재력과 정치적 DNA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김영삼이라는 대표적인 보스 정치인을 확실히 모신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다른 정치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역시 김 의원은 주종관계라기보다는 동지적 관계 속에서 풀어 왔다.”

김 의원은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의해 사무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정계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사무총장 시절에도 “나는 박근혜 대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해 왔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인 2005년 1월에 열린 한 오찬 기자간담회에서도 박 대표에 대해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안 되며 시대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여론은 이 발언이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박 대표가 사사건건 강경보수적 원칙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한마디 한 것 아니냐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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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당권 도전에 나선 김무성 의원이 3일 서울 노량진의 한 ‘컵밥’ 포장마차에서 고시 준비생들과 함께 점심으로 컵밥을 먹고 있다./정지윤기자


주자 없는 상황 ‘일시적 부각’ 평가도

이따금 보여주는 비(非)새누리당적 언행이나 야당 의원과도 말이 통한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18대 국회에서는 박지원 의원, 17대 국회에서는 유인태 의원 등 당시 상대 당의 핵심 중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보훈처가 공식 5·18 기념곡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계속되는 인사참극에 대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소장파로 보긴 어렵지만 이따금 ‘당내에서 소신발언’을 해온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 특유의 스타일은 새누리당 외부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야권 지지층의 ‘역린’을 건드리는 사건의 현장에는 그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대선 때는 NLL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미리 알고 선거운동에 이용했다가 야권의 비판을 받았다. 대선 이후에는 자신이 주도한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에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집필한 극우성향의 역사학자를 초청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사회 전복세력”으로 부르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노무현이”라 부르며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발언 역시 대표적인 구설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그동안 김 의원의 행보가 국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며, 대권주자로서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봤다.

“김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새누리당에 눈에 띄는 차기 주자가 딱히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다음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 때 성과를 보인 단체장이라든지 여권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수도 있다. 당내 선거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김 의원이 새누리당 전당대회 이후 ‘빅맨’으로 확고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불통과 독선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진 소장은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김무성의 대권 도전의 ‘데뷔 무대’라며 직언을 넘어서서 대안까지 제시해줄 수 있느냐가 향후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가 되면 청와대와 차별되는 자기 목소리를 좀 더 낼 것으로 본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직언이나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국가를 위한 대안 제시까지 해낼 수 있을지가 과제다.”

1951년 9월생인 김 의원은 현재 만 62세다. 그는 2002년에 쓴 기고문에서 “나는 뭐가 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다”며 “60대 초반에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고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마지막 임무로 여기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쓴 바 있다.

당대표 선거 결과에 따라 그가 과거의 약속처럼 정치를 그만두고 가족들 품에 돌아갈지, ‘빅맨’으로 클 기회를 잡게 될지 결정될 것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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