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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北노동신문 안 실린 경의·동해선 폭파…개성공단 때와 달랐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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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북한이 15일 동해선과 경의선의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대응 차원에서 군사분계선(MDL) 이남 지역에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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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북 연결 도로인 경의·동해선 폭파 소식을 즉각적으로 주민들에 알리지는 않았다. 2020년 6월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때 조선중앙TV를 통해 당일 주민들에게 이를 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16일 북한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은 전날 폭파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1면에 ‘전국적으로 140여만명의 청년 학생들 인민군대 입대 탄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평양 무인기 사건을 계기로 “공화국의 주권과 안전을 침범한 한국 쓰레기들을 징벌하려는 청년 동맹 일꾼들과 학생들이 인민군대 입대와 복대(재입대)를 열렬히 탄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14일과 15일 이틀 간 전국적으로 백두산 영웅 청년 돌격대와 김일성종합대 등에서 140만여명이 입대·재입대를 탄원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젊은 청년 수백 명이 모여 서류를 작성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이들 “새 세대 복수자들”이 “분별없이 날뛰는 미치광이들에게 불벼락 맛을 보여줄 결의”를 했다면서다.

북한은 연일 무인기 사건을 대남 적개심 고취용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날 ‘청년 학생들’의 소식을 전면에 내세운 건 남측 대중 문화 유입 등으로 사상이 느슨해진 북한 ‘MZ 세대(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문은 같은 날(15일) 이뤄진 경의·동해선 폭파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포전(경작지) 정치사업', '알곡증산투쟁' 등 내부 소식만 전했다. 조선중앙TV도 16일 오후 3시 뉴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4일 무인기 사태 대응을 위한 ‘국방 및 안전에 관한 협의체’를 소집했다는 소식만 전달했다. 연결 도로 폭파 소식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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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하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하며 긴장감을 높이는 가운데 북한 전역에서 14일과 15일 이틀동안 140만여명에 달하는 청년들과 학생들이 인민군대 입대,복대를 탄원하며 그 수가 매일 증가하고 있다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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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절 조치’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의·동해선 폭파 소식을 24시간 넘게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이례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6월 16일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땐 수 시간 만에 조선중앙TV로 관련 속보를 내보냈다. 이튿날 노동신문 2면에도 폭파 사진과 함께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이 대내 매체 뿐 아니라 조선중앙통신 등 대외 매체에도 폭파 소식을 전하지 않은 점 역시 눈에 띈다. 북한은 통상 '행동'을 한 뒤에는 남측을 비롯한 주변국을 상대로 이를 정당화하는 설명을 내놓곤 했기 때문이다.

15일 폭파 직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긴 했지만, 도로 폭파와는 관계 없는 무인기 관련 담화였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한국 군부깡패들이 공화국 수도 상공을 침범하는 도발 행위의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 도발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김여정의 무인기 담화는 물론 '명백한 증거'와 관련한 내용도 노동신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남측 군 당국이 직접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게 사실이라면 북한 주민에게 알릴 법 한데, 이런 내용도 함구한 셈이다. 다만 이는 증거 공개 이후 남측의 반응과 파장, 김여정이 공언한 ‘혹독한 대가’에 대한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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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0년 6월 17일 2면에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을 공개했다. 신문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6월 16일 14시 50분에 요란한 폭음 속에 참혹하게 완전 파괴되었다″라며 ″우리 인민의 격노한 정벌 열기를 담아 이미 천명한 대로 단호한 조치를 실행하였다″라고 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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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적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발표 시점을 북한이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15일 군의 탐지 자산엔 군사분계선(MDL) 북방 폭파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북한 인원들이 포착됐다. 뒤늦게라도 폭파 영상이나 사진을 공개할 수 있다고 정부가 보는 배경이다.

16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해 한·미·일 외교 차관 협의를 진행하는데, 이런 외교 이벤트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다. 협의에선 북핵과 무인기 사태 등이 주된 의제로 다뤄진다.

대내적으론 급격한 남북 단절 조치에 대한 주민의 반발심을 고려해 공개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로 폭파와 같은 북측의 강경 조치보다는 한국의 위협적인 행동을 최대한 부각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군은 전날 안전상 이유로 일시 중단했던 도라전망대, 고성통일전망대 등 접경지 안보 관광을 16일 오전부터 정상 진행한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남북 연결 도로 폭파 등 북한의 접경 지역 활동에 대한 안전 보호 차원에서 관광을 중단했으나, 위험성 평가 후 재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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