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7 (목)

6·4 지방선거 끝났는데…재정 걱정 태산 | 공약 지키려면 100조원 넘게 필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폐허로 변한 디트로이트 시


미 디트로이트 시 파산 후 인구 3분의 1로 줄어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본사가 모두 모여 있어 한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혔던 디트로이트 시.

2007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들 회사는 수십 년간 누렸던 부귀가 낳은 썩은 적폐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공적자금을 받아야 할 정도로 휘청거리면서 그 여파는 디트로이트 시에 고스란히 이어졌다. 자동차 판매로 누렸던 호화생활이 폐허로 변했고, 도시 외곽에 살던 중산층과 부자들은 짐을 꾸려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빈민가는 더욱 슬럼화됐고, 흑인들의 실업률은 갈수록 높아졌다. 한때 185만명에 달했던 인구수는 70만명으로 줄었다. 살인 등 강력범죄 발생 비율은 미국 평균의 5배가 넘고,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리는 등 4년 연속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세금이 걷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시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곧 채무불이행 단계에 이르렀다. 급기야 지난해 7월, 디트로이트 시는 파산했다. 디트로이트 시가 미시간 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를 접수하면서 공개한 빚은 180억달러(약 20조8000억원).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법원에 의해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채무 지불은 미뤄졌다. 그러나 세금은 올라가고, 공무원은 해고되기 시작했다. 시와 관련한 기업들은 팔려나갔고, 시가 추진하던 각종 사업은 올스톱 됐다.

매일경제

일본 유바리 시는 파산 뒤 6분의 1로 위축돼

도시가 파산하는 경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바리 시 파산. 유바리 시는 원래 24곳의 탄광에 12만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다. 하지만 1970년대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가 대체되면서 탄광은 문을 닫았고 도시는 활기를 잃었다.

1990년 유바리 시장에 당선된 나카다 데쓰지 씨는 ‘탄광에서 관광으로’란 키워드를 내걸고 각종 리조트단지와 역사박물관 등을 만들었다.

국제영화제도 개최했다. 그러나 콘텐츠가 별로 없었던 유바리 시는 반짝 호경기를 맞다가 곧 관광객들이 끊기고 말았다.

유바리 시는 아랑곳없이 갖가지 투자 사업을 벌여나갔다. 민간이 경영하던 호텔과 스키장을 빚을 내 인수했다. 나카다 시장은 “지방자치단체는 도산이 없는 존재”라며 “차입금을 아무리 많이 써도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에 세상을 떠났고 결국 2006년 6월 639억엔(약 6,400억원)의 부채를 갚을 수 없어 도시는 파산을 선언했다.

이후 12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2만명으로 줄었다. 파산 후 4년 동안 공무원 수는 61%나 감소했고 공무원 급여는 50% 이상 삭감됐다.

세금은 치솟았지만, 공공서비스의 질은 급격히 나빠졌다. 시민들의 불편이 하늘을 찌른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일본 언론들은 유바리 시의 파산을 ‘도시자살’이라고 불렀다.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난 한국. 우리나라 도시들도 미국과 일본의 ‘정신 나간 도시’를 그대로 답습중이다. 지자체 도입의 가장 큰 후유증은 단연 심각한 재정적자다.

매일경제

정부는 월드컵을 위해 지어 놓은 문학경기장을 아시아경기 주경기장으로 쓰도록 권고했지만 안 전 시장은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추진했다.


매일경제

용인시 산하 용인도시공사는 전문가들이 반대한 경전철 건설에 1조원을 쏟아 부었다가 지방 공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부도위기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 빚 27조원, 공기업까지 합치면 100조원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244개 지자체 빚은 27조원, 지방 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100조원에 달한다. 재정자립도 50% 미만인 지자체는 216곳에 이른다. 중앙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상당수가 부도날 판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아랑곳없이 지금 이 시간에도 ‘돈 안 되는’ 이벤트를 흥청망청 벌이고 있다.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지방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한다. ‘독이 든 독배’인줄 알면서 중앙정부는 지불을 보장해 주고 있다. 그러니 시장, 군수들은 더더욱 감당 못할 공약이 남발한다.

지난 선거도,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이 ‘독배’ 공약을 쏟아낸다. 자기는 임기 끝나고 물러나면 그만이고, 우선 당선부터 되자는 심보다. 지난 6월 4일 실시된 지방선거도 어김없었다. 전기료·난방비 반값 인하, 공짜버스, 노인무상 진료 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공짜시리즈’가 유권자를 현혹했다.

새누리당은 65세 이상에 대한 독감 예방접종비를 전액 무료화하고 20~30대 가정주부의 건강검진도 지원키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공립 어린이집 대폭 확충과 공공부문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생활임금제 확대, 대학 입학금 폐지 등을 내놨다. 당선된 경기도지사 남경필 후보는 3050억원이 투입되는 마을 공동체 공간 ‘따복 마을’을 조성하겠다고 했고,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는 1200억원이 투입되는 비수급 빈곤층에 월 1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야 광역단체장 후보 25명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공약 가계부’ 자료를 살펴보면 정당별로 공약 시행에 필요한 비용은 새누리당이 191조2001억원, 새정치연합, 정의당, 무소속 등 야권이 118조1546억원에 달했다. 실행하기 어려운 이런 공약이 다 진행되고 나면 나라가 거덜 날 판이다.

매일경제

파산위험 가장 높은 도시는 인천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파산 위험이 가장 큰 지자체는 인천이다.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35.1%다. 민선 4기 마지막 해였던 2009년 2조4773억원이었던 인천의 부채 규모는 2012년 2조9309억원으로 3년 사이 5000억원가량 늘었다. 대구(예산 대비 채무비율 32.6%), 부산(30.8%)도 파산 위험이 비교적 높은 지자체다.

다른 지자체들도 재정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정이 비슷하다.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2010년 시작된 민선 5기 들어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악화된 곳은 대전과 경기 등 9곳. 특히 충남(19.1%), 경북(14.2%)은 2012년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2009년의 2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재정이 악화된 지자체는 대부분 민선 지자체장이 공약으로 추진한 국제행사나 산업단지 조성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채가 크게 늘어난 곳들이다. 인천은 안상수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면서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정부가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지어 놓은 문학경기장을 아시아경기 주경기장으로 쓰도록 권고했지만 안 전 시장이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고집하면서 아시아경기 준비에만 2조3000억원 이상의 재정을 쏟아 부었다.

전남 F1 대회 유치로 2000억원 적자

전남은 2006년 박준영 지사가 유치한 F1 대회로 지난해까지 약 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용인시는 시 산하 용인도시공사가 지방 공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부도위기에 몰려있다.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반대한 경전철 건설에 1조원을 쏟아 부었다가 이 지경이 됐다. 지방 재정적자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무리한 경전철 사업으로 부채가 늘어난 경기 용인시는 지난해 주민센터 건립비나 학교시설 개선 등 교육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올해 240명의 교사가 명예퇴직을 신청했지만 관련 예산이 40%가량 줄어 116명에 대해서만 명예퇴직을 수용했다. 도시철도

2호선 준공 시기도 올해에서 2016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공짜 10만원’ 좋아하다 아들 손자 모두 빚쟁이

지방자치단체의 이 같은 흥청망청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지자체 긴급재정관리제’, 즉 파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세 비중을 20%에서 3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자체 파산제는 채무불이행 등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지자체에 정부가 개입해 재정 회생을 추진, 필수 주민서비스 중단 등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를 현혹했다. 공약을 지킨답시고 취임 후 그 공약을 밀어붙인다면, 후유증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남는다.

당장 손에 쥐는 ‘공짜 10만원’이 좋긴 하지만, 자신들의 아들 딸 그리고 손자들은 빚쟁이가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장광익 매일경제 MBN 정치부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