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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초점]MBC '개과천선' 실패, 한국 TV드라마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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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MBC TV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시청률 8.1%(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막을 내렸다. 평균 시청률 8.5%, 최고 시청률은 10.2%다. 시청률 면에서 볼 때 나쁘지 않은 결과다.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SBS TV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이승기와 차승원을 앞세우고도 시청률 11%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 밤 10시에 방송하는 미니시리즈의 전체적인 시청률이 하락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김명민이 출연하고 '골든타임'을 쓴 최희라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개과천선'은 방송 내내 '웰메이드' 드라마 혹은 '웰메이드가 될뻔한' 드라마로 불렸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실패한' 드라마다.

'개과천선'의 실패가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제작 여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데에 있다. 연기도 좋고, 메시지도 나쁘지 않은 이 드라마가 다소 낮은 완성도를 보인 이유는 극을 완성할 시간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최희라 작가의 패착도 있다.

'개과천선'이라는 제목을 유심히 봐야 한다. 사전적 의미는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이다. 이 말의 주체는 사람이다. 이 드라마의 진행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악행을 일삼던 주인공이 선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개과천선'의 티저 예고편을 보면 주인공 '김석주'(김명민)의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여기서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개과천선'은 사건이 중요한 드라마가 아니라, '성격'(캐릭터)이 중요한 드라마가 돼야 하는 것이다.

'개과천선'의 핵심은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 '김석주'가 어떻게 개과천선하느냐다. 다시 말해, 김석주의 성격이 어떻게 변하느냐, 그리고 이 변화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드라마의 성공 여부가 달린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완성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개과천선'은 김석주의 성격이 변하는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김석주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는 착해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쉽게 변해버렸다. 김석주는 제2회에서 사고를 당한다. 남은 14회분을 '착한' 김석주가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착한 마음을 가진 변호사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드라마가 된 것이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동양그룹 사태 등 실제 사건을 내세워 이를 해결하는 김석주의 모습을 그렸다.분명히 이 드라마는 제목과 예고편을 통해 한 인간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변화는 없고 사건만 남았다.

'개과천선'에 매력적인 캐릭터(성격)가 없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제 사건을 끌어와 사회를 비판하는 데 14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인물의 내면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개과천선'이 가져온 사건들은 꽤나 복잡한 사안들이다. 발생한 사건의 경위와 해결 과정을 설명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드라마는 이런 사건을 한 두 건도 아닌 세 건 이상을 보여준다. 인물에 대한 설명도, 사건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라마는 2회분이 축소됐다.

'개과천선'은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법정 드라마이기도 하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것은 법정에 선 변호사와 검사의 대결, 변호사와 변호사가 각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역동적으로 맞부딪히는 장면일 것이다. '개과천선'에서는 이런 장면을 찾을 수 없다. 다뤄야 할 사건이 많고, 풀어놓은 이야기가 많아 이를 회수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이 드라마의 핵심 중의 핵심인 김석주는 사라져버린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굵직한 사건을 다루면서, 법정 공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고 그 사이에 김석주라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면 '개과천선'은 더 좋은 드라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출중한 실력의 변호사가 펼쳐내는 완전 법정물로 만드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단순히 연출과 극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개과천선'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급하게 촬영에 들어갔고, 생방송처럼 방송했다. 이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리만큼 실내 장면이 많다.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실내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개과천선'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다. 야외 촬영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급하게 제작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사전 제작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방송됐다. 5~6회 분량을 미리 완성해놓고 출발하는 일반적인 드라마 제작 여건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극본 또한 급하게 만들어졌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시간에 쫓기고, 시청률 압박을 받다 보니 드라마는 연출하기 쉬운 방향으로 진행됐다. 인물의 성격 변화를 설명하는 극본은 급하게 쓸 수 없다. 한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으면 화제성이 생긴다. 여기에 김석주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신파 코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런 다음 김명민, 김상중 등의 연기력에 기대는 것이다.

이는 비단 '개과천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시청률이 하락하는 원인은 이러한 어설픈 완성도에 있다. 사전 제작은 고사하고, 생방송 수준으로 녹화하고 방송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굳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더 깊이 고민할 이유 없이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는 소재들을 끌어와 짜깁기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개과천선' 또한 이 같은 드라마 제작 여건이 만들어낸 아쉬운 작품이다.

최근 미국드라마에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은 드라마배우와 영화배우가 완전히 나뉘어 있다. 영화배우가 드라마에 출연한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미국드라마의 완성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영화배우들이 드라마를 찾기에 이르렀다. 가장 가까운 보기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슈 매코너헤이가 HBO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 출연한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즌2에는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

'개과천선'은 앞서 말한 것처럼 18부작으로 예정돼 있었다. 방송 도중 월드컵 출정식 중계와 6·4 지방선거 개표방송으로 2회 결방하면서 16부작으로 축소됐다. 이 사태는 드라마 제작 여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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