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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인사실패’를 야당·언론 탓으로 돌리려는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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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문창극 낙마’ 이후]

윤상현 “왜곡보도 낙인찍기 탓”

홍문종 “책임진다면 KBS가 져야”

조선일보 ‘친일강연 옹호’ 사설

주류 보수층은 아직 일정한 거리

“문 고위공직자 돼선 안될 인물…

책임있는 정치인마저 동조 씁쓸”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파문으로 수세에 몰렸던 보수 세력들이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계기로 역공을 취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은 물론 보수 언론과 강경보수 인사 등이 모두 힘을 모으는 듯한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다.

새누리당 등의 주장은 크게 2가지다. 문 전 후보자의 청문회 무산은 야당의 ‘발목잡기’이며, 문 전 후보자가 낙마하게 된 단초는 친일 발언을 보도한 <한국방송>(KBS)의 ‘짜깁기·편파 보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25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문 전 후보자의 사퇴를 “일방적인 언론의 왜곡 보도와 광적인 낙인찍기 탓”으로 돌렸다. 인사청문회 무산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문 전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지 말라고 겁박하고 윽박지른 새정치연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 핵심 의원인 홍문종 의원도 이날 오전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절차에 따라서 최소한 청문회는 했어야 했다”며 “(이번 인사 파동의) 책임을 진다면 (문 전 후보자의 교회 동영상을 처음 보도한) 케이비에스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인 두 의원의 말은 전날 문 전 후보자 자진사퇴 뒤 “청문회 소명 기회 없어 유감”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보수 언론들도 보조를 같이했다. 자사 출신인 문 전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비호해왔던 <중앙일보>는 25일 그의 사퇴 발언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정치권이 왜곡 보도에 선동당한 여론에 굴복해 법이 규정한 청문회 개최 책임마저 방기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것은 여당 내부에서도 문 전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아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낮아 박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요청안을 보내는 것을 계속 보류했기 때문이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치 입학 원서를 내지도 않고 입학 시험을 못 봐서 불합격했다고 억지 쓰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보수세력들은 또 한국방송 보도가 문 전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문 전 후보자를 비판했던 <조선일보>도 25일 사설에서 문 전 후보자의 친일 강연을 “문 후보가 강연에서 수치스럽고 부정적인 역사를 언급한 것은 그것을 딛고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적극 옹호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동영상 전체를 봤는데, 종교적 광신과 결합한 그릇된 역사관을 문 후보자가 갖고 있다는 느낌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문 후보자는 보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고위공직자가 되어선 안 될 인물”이라며 “보수 개신교의 일부와 박근혜 정권에서 소외되고 실망감을 느낀 극단적 보수 인사들이 주도하는 공세에 책임있는 정치인과 언론마저 동조하는 모양새가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문 전 후보자에 대한 ‘뒷북 옹호’에 나선 것은 6·4 지방선거에서의 부진과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정지지도 하락에 심각한 위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동안 문창극을 옹호하고 야당과 비판 언론을 공격해온 세력이 보수진영 안에서도 극단적 목소리를 내온 비주류”라면서도 “문제는 지방선거 결과와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평소에는 ‘친일 불가피론’이나 ‘독재 옹호론’ 같은 극단적 주장에 공감하지 않던 주류 보수층이지만, 자신들이 지지했던 정권이 흔들리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순간 극단적 주장에 정서적 일체감을 갖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일부와 보수 언론의 견해에 대해선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핵심에서 일한 보수학계의 한 인사도 “보수가 위기인 것은 맞지만, 문 후보자의 사퇴를 보수진영의 결집을 가져올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주류 언론이 회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적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세영 이승준 김수헌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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