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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두목’ 스타일 김무성, ‘경남지사 밀어주기’ 골프회동 주도 세 규합 정면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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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64) 의원(부산영도·5선)은 지난 3월 31일 경기도 용인시 소재 한 골프장에서 김태호·이군현 의원 등 경남 출신 국회의원 7명과 골프를 쳤다.

새누리당 경남지사 후보 경선을 보름가량 앞둔 때로, 홍준표 경남지사와 박완수 전 창원시장이 경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은 상황이었다.

경남의 ‘금배지’들이 지사 후보로 누구를 미느냐가 무엇보다 주목받는 상황에서 김무성 의원이 골프 모임을 주선하며 경남 의원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김 의원의 의도는 ‘박완수 밀어주기’였다고 한다. 박완수 전 창원시장 측 인사의 말이다.

“그때 ‘무대’(김무성 의원의 별명)가 경남지역 국회의원과 운동(골프)을 한 건 박완수 시장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홍준표 지사는 청와대에 미운털이 박혀 있고 또 차기 대선 출마를 운운하는 통에 주변에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무대 입장에서도 경남지사에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 걸 바랐던 것 같다. 이날 골프장 그린피는 김태호 의원이, 식사비는 이군현 의원이 냈다고 들었다.”

이 같은 사례에서 보듯 김무성 의원은 ‘대장’ 역할을 즐겨한다. 다소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에둘러 밝히지 않고 세를 규합해 상황을 정면 돌파한다. ‘무대(김무성 대장)’ ‘두목’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나왔다.

특유의 친화력 때문에 따르는 정치인이 많다. 부산 출신인 그를 ‘의리파’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이어받은 상도동계 정치인의 전형적 모습이다. 대학(한양대 경영학과) 시절 정치인이 되는 걸 반대했던 아버지(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경남 함양 출신) 뜻을 거스르면서 김영삼(YS) 당시 신민당 총재를 몰래 찾아갔다.

YS는 당시 자신의 비서인 김덕룡씨를 소개해 주며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그런 인연으로 YS는 아직도 김 의원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YS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그는, 서청원 의원과 함께 상도동계의 명맥을 잇는 마지막 정치인으로 통한다. YS의 정치적 적자를 자처하는 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번에 새누리당 대표직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이 다소 낙천적이고 상황을 정면 돌파하는 YS 스타일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2012년 총선에서 낙천의 고배를 마신 후에도 나타났다. 그는 그해 총선이 끝난 7월, 낙천 및 낙선자들과 미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여행에는 안경률, 장광근, 조전혁, 안형환, 정옥임 전 의원 등 8명의 정치인이 동행했다.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었을 때였지만 김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인사들과 위로를 겸한 자리를 만들었다.

당시 미국 여행길에서 김 의원은 자신을 찾아온 이명박 정부의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기도 했다.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박근혜 의원과 대통령 후보직을 놓고 경쟁하던 임 전 실장이 도와달라고 찾아오자 만났다고 한다. 당시 당의 주류가 박근혜 대표를 따르는 친박세력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에서 물을 먹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탈박(脫朴)’ 인사로 분류됐었다. 탈박 인사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가 멀어진 사람을 가리킨다.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리를 벌렸다 좁히기를 반복했다. 2012년 말 박근혜 정권 탄생의 최대 공신 중 한 명이지만,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그를 더 이상 친박의 울타리로 가두기는 어렵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굳이 그의 정치적 성향을 분류한다면 초박(超朴)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말도 한다.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그는 박근혜 후보 경선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경선에서 김 의원은 캠프에서 살다시피하며 실무를 책임졌다. 2012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이라는 중임을 맡았다.

그러나 친박이라는 굴레는 그에게 득(得)보다 실(失)이 많았다. 2008년 총선 당시 당을 장악한 ‘친이(親李·친이명박)’ 세력은 김 의원을 친박이라는 이유 등으로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정치 입문 후 첫 번째 낙천의 쓴맛을 봐야 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당의 주류가 친박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에서 다시 물을 먹었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당내에서 의견이 분분할 때 그는 박근혜 의원과 다른 길을 갔다. 박근혜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고 김 의원은 중재안에 찬성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이때 박 의원은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김 의원을 친박그룹에서 퇴출시켰다. 이후 김 의원은 친이세력의 지원을 받아 MB정부 때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박근혜 의원과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 항간에는 김 의원이 술자리에서 박근혜 의원을 가리켜 “가시내(계집아이의 경상도 방언)”라고 표현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가 “가시내, 그렇게 하면 대통령 되기 어렵다”는 식의 발언을 했고 이를 전해 들은 박 의원이 언짢아 했다는 뒷말이 돌았다. 친박 일부 인사는 “김무성 의원이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시 그런 (김무성 의원의) 말에 살을 붙여 박 대표에게 고자질하는 세력은 있었다. 내가 알기로 김 의원은 뒤에서 누굴 욕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친박이 굴레가 돼 공천에서 연거푸 물을 먹었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2008년 총선에서는 친박 무소속 연대를 만들어 국회의원에 당선돼 당에 복귀했고, 2012년 총선에서 낙천했으나 2013년 4월 부산 영도 재보궐 선거를 통해 5선 고지를 밟았다. 쉽게 물러서지 않고 돌쇠처럼 다시 일어선 후 그에게는 ‘무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의원과 박 대통령 사이의 신뢰관계가 많이 회복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당내 세력구도로 보면 그는 지금 친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게 분명하다. 청와대와 친박 주류 측에서 김 의원이 당권을 잡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과거 친박계 핵심이었던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무대’가 당권을 잡는 것에 대해 청와대와 친박 주류들이 썩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서청원 의원이 친박을 대표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서 의원보다 유승민 의원이 차라리 낫다고 보고 유 의원에게 전대 출마를 여러 채널로 타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 의원은 이번 전대에 불출마하는 대신 차기 원내대표에 관심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껄끄러워하지만 김 의원은 당권을 잡기 위해 오랫동안 동료 의원들에게 공을 들여왔다. 그는 부산·경남(PK) 의원들과의 친분이 유독 두텁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수시로 PK 의원들과 만나 공천과 선거 전략에 관한 얘기를 나눈 바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9월 당권을 향한 시동을 걸었다. 국회 역사공부모임인 ‘근현대사연구교실’을 연 것도 이때였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이 모임에는 총 100명이 넘는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가입했다. 원외 당협위원장까지 합치면 120명가량이 역사모임에 참여했다. 모임 때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정치현안이 아닌 역사공부 모임일 뿐이라고 김 의원은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그의 영향력을 시험한 첫 번째 무대였다. 이후 김 의원은 복지와 통일에 관한 공부모임까지 추진하며 국회 내 ‘면학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이런 김 의원을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전당대회를 위한 세 결집, 혹은 세 과시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 지난해 9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사 권위자인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만나 저녁을 먹다가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좌경화된 교과서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알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게 됐다. 그래서 역사교실을 만들게 됐다. 김학용 의원이 간사를 맡기로 하고 내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돌렸을 뿐, 단 한 명에게도 가입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첫 모임 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왔다. 일부 언론에는 내가 계보를 만든다느니, 줄세우기라느니 하는데, 그건 그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을 모욕하는 거다.”

김 의원은 정적으로 맞서싸웠던 친이계와도 자주 만나며 ‘통 큰 정치’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원내대표 시절 야당 원내대표였던 박지원 의원과도 호형호제하며 지낼 만큼 여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난다. 주변 측근들은 그에 대해 “알고 보면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말도 한다. 키 181㎝에 90㎏이 넘는 큰 체격을 가졌지만 덩치에 맞지 않게 세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면 ‘두주불사형’의 사나이로 바뀐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정치권 인사의 인물평이다.

“김 의원은 내성적이고 담백한 사람이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이런 그의 성격은 박근혜 대통령과 잘 맞지 않는다. 윗사람의 뜻만 따르는 친박 주류과에 포함될 수 없는 인물이다. 친박 주류들은 김 의원을 버겁게 느끼는 측면이 있다.”

김 의원은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는 서울로 진학했다. 부산의 경남중을 졸업하고 경남고에 진학하려다가 실패하고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중동고에 입학했다. 고교 입시에서 이른바 재수를 한 셈이다. 아마도 그가 실패를 경험한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그는 동년배들보다 1년 늦은 1971년 중동고를 졸업, 한양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김 의원의 부친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1985년 작고)이다. 재력가였던 김 의원의 부친은 196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금배지를 달고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김 의원의 재산신고액은 2014년 3월 현재 137억원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김 의원의 부친에 대해 친일 의혹을 제기한 적도 있지만, 김 의원의 부친은 오히려 일제가 반일인사로 분류해 ‘제거’ 대상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가족과 함께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의원의 장인은 공화당 원내부총무를 지낸 5선의 최치환 전 의원(1987년 작고)이다. 아버지와 달리 장인은 김 의원에게 정치를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김 의원에게는 형과 누나가 있다. 이복형제들이다. 그의 형과 누나는 김 의원과 20년 안팎의 나이 차가 난다.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김 의원과 23년의 나이차가 있다. 김 이사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다. 형 김창성(82)씨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전남방직 명예회장을 지냈다.

김 의원의 아들 종민(26)씨는 연예인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의 ‘아이리스2’에 출연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아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해서 막았더니, 연예인을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의원의 큰딸은 결혼했고 작은 딸은 수원대 교수로 일한다.

김 의원은 최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불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지난 6월 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실장은 존경하는 분이지만 다소 불만이 있는 부분이 있다. 당과 청와대를 너무 수직적으로 만든 것은 잘못”이라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당시 김 의원은 “박 대통령께서 안정적 분위기에서 집무를 하기 위해 (김 실장이) 꼭 필요하다면 우리가 이해해 드려야 한다”고 말해 김기춘 실장의 사퇴까지 거론하진 않았다.

김 의원이 김기춘 실장을 겨냥한 것은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교체론이 나온 까닭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내 친박 주류를 향한 경고성 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경환·홍문종·김재원 의원 등 당내 친박 주류들과 자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정국 현안과 관련, 당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김 의원은 보고 있다.

“당과 청와대를 수직적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지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7월 13일 치러질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 실장이 더 이상 당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로도 볼 수 있다.

당 안팎에서는 김 의원이 이번 당권 경쟁에서 친박 핵심인 서청원 의원과 막상막하의 경쟁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선의 한 친박계 인사는 익명을 전제, “전대에서 김무성 의원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서청원 의원은 나이도 많고 과거 차떼기 사건 등에 연루돼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인사여서 당의 간판으로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친박 주류들이 입각 등의 이유로 제 갈 길을 가는 상황에서 친박이 얼마나 화력을 한쪽으로 집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국회의장 선거에 도전했던 친박 황우여 전 대표가 친이로 분류되는 정의화 의원에게 참패한 것도 친박의 결집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의원은 이번 전대를 위한 선거대책본부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선대본은 안형환 전 의원이 실무를 총괄하고 특보단장은 하원 전 백석대 총장이, 공보단장은 배용수 전 국회도서관장이 맡았다. 김성수 전 의원도 합류해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캠프 대변인에는 허숭 전 경기도 대변인과 문혜정 전 김황식 서울시장 캠프 대변인이 임명됐다.

원내 지원세력으로는 서용교·이헌승·김성태·김학용 의원이 있다. 친박 주류보다 비주류의 지원세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서청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 비해 원내외 당협위원장을 많이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1인2표제의 전당대회에서 당협위원장의 말이 일사불란하게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미래지향적 측면에서 김무성 의원을 지지하는 바닥 정서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만약 김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면 그는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 측에서도 이런 관측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문재인·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의 쟁쟁한 대선주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 의원이 가진 대중성이 아직 이들 야당 주자들에게 크게 뒤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대’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차기 당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집권 중반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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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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