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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6·4 지방선거·한국정치의 미래’ 토론 지상중계]“정부·여당은 가만히 있으라 했고, 야당은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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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경향신문과 ‘좋은정책포럼’은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를 평가하고 정치의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8일 경향신문 5층 여적향에서 ‘6·4 지방선거와 한국정치의 미래’ 토론회를 공동개최했다.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의 사회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발표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김용복 경남대 교수, 노정태 자유기고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조정관 전남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 토론회 참석자

발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토론: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김용복 경남대 교수

노정태 자유기고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조정관 전남대 교수

사회: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

경향신문

경향신문과 좋은정책포럼이 8일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공동개최한 ‘6·4 지방선거와 한국정치의 미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정관 교수, 이대근 논설위원, 유승찬 대표, 김호기 교수, 이태수 교수, 정해구 교수, 김남근 변호사, 노정태 자유기고가, 김용복 교수.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태수(사회)=이번 선거는 국민이 균형을 선택한 결과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그런 평가가 가능한가.

정해구=새누리당은 읍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을 동원함으로써 패배를 막아냈다. 나름 선방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가 없었더라면 적어도 대전·충북·강원에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야 무승부라기보다 새정치연합이 참패를 면한 수준이다. 이번 선거는 시대적 변화 요구의 분출에도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 정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통령의 눈물과 읍소 전략으로 선거에 대처한 새누리당, ‘새정치’의 이름으로 정치 혐오의 포퓰리즘에 의존한 채 고질적인 내부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새정치연합,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스스로 붕괴하고 있는 진보정당이 바로 그것이다. 영남권은 부산과 대구 등 도시로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아래로는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당면과제는 앞으로 구체적 내용이 제시될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론’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방향에 부응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안보, 성장, 신자유주의만 있을 뿐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전이 없다. 새정치연합도 대안세력으로서의 능력이 없다. 침체를 못 벗어나는 새정치연합이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진보정당이 재구성돼 부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김호기=지방선거의 결과는 대선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대전·충청·강원을 제외하고 전체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지역투표와 세대투표가 결합한 이념투표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한국적 정치 균열’이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로 선거가 조용히 치러지면서 정책 대결이 어려웠고 인물 경쟁력이 더 부각됐다. 야당 입장에서 최대 동원의 결과인 2012년 대선 때의 ‘51.6% 대 48%’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같은 의제가 필요했지만 제시하지 못했다. 5가지 코드로 이번 선거를 읽을 수 있다. 가치·개혁·가족·진정성·통합의 재발견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가치’가 ‘이익’을 눌렀고, 경기에서는 개혁적 보수가 안정적 진보를 이겼다. 세월호 참사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가족’이 재발견됐다. 대구는 진정성으로 지역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중부권의 선택은 ‘두 국민’이 아닌 ‘한 국민’ 정치, 즉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의미다.

유승찬=야당은 실질적으로 패배했다.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난 정국에 걸맞은 여당 심판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고목(古木)과 같다. 바늘로 아무리 찔러도 반응이 없다. 빅데이터 관측 사상 이렇게 큰 규모로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은 ‘세월호’가 처음이었다.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후보 역량의 승리였다는 점도 있다. 박원순, 안희정, 최문순, 이시종은 당과 거리를 두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가장 아름다운 단일화는 부산에서 사퇴한 김영춘 후보에게서 나왔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여당 지지층을 결집하고 부동층의 분노를 이완시킨 가장 큰 이유는 눈물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응할 만한 야권의 메시지가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2009년 미국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51초간 침묵을 벤치마킹했는지 모르지만 눈물의 파장은 컸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수습 과정에서 비겁하게 숨었다. 정부·여당은 야당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야당은 ‘가만히 있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진보진영은 이 눈물을 폄훼하는데, 이 과소평가는 진보의 고질적 문제다. 조만간 청와대는 비서진과 내각을 정비하고 국가개조론을 전면화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혁신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현재로선 정부·여당에 반대하고 또 반대하다 국가개조론 논쟁에 휘말려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야권이 쇼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야당은 리더십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영남권에서 감동의 레이스를 펼친 김부겸, 김영춘을 당 혁신위원회에 참석시켜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대권을 생각한다면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 청년위원장으로 3년간 현장 투어를 하는 것이 낫다. 세월호 참사와 이번 선거를 보면 뭔가 행동에 참여하려는 국민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미국에서 두 번의 대선 패배 이후 600만명이 참여한 진보운동 ‘무브 온’의 한국판을 제안한다.

경향신문

▲ 김호기 교수

대선 때와 큰 변화 없어… 야권, 의제 제시에 실패

가치·가족을 발견한 선거


▲ 유승찬 대표

야권의 ‘실질적 패배’… 대통령 ‘눈물’ 폄훼만 하고

고유의 메시지 없었던 탓


▲ 정해구 교수

새것 없는 새누리·새정치 읍소·반사이익 구태 여전

진보정당 위기 과제로 남아


김용복=야당은 정책과 이슈가 부재했다. 세월호 이슈가 정부 심판론으로 작용했지만 이걸 뛰어넘는 포지티브 이슈가 없었다. 유권자도 점점 보수화하고 있어 개혁세력이 이기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50대 이상 유권자도 훨씬 많다. 앞으로 안철수 대표의 정치 영역은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안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것이 새정치, 정치개혁인데 구정치 지분 확보를 위한 선거공학에 빠져버렸다. 새정치에 담을 내용들을 뚜렷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안 대표가 더 이상 명분과 정당성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노정태=5월19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선거 국면에서 정부가 할 일은 다한 것이다. 야권과 진보언론도 세월호 구조 골든타임을 왜 놓쳤느냐고 지적은 하면서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이슈가 박 대통령이 ‘잘했다, 못했다’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울었고, 여당은 가만히 있었고, 야당은 쩔쩔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선거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가정이지만 세월호도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빨리 잊혀졌을 것이다.

김남근=선거 때마다 시대를 상징하는 공약이 있었다. 이번에는 여야의 중심 공약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상황은 가처분소득의 정체, 주거비·의료비 가계부담의 증가, 청년실업 등 경제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이에 대한 표심은 모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정당이 이슈 선점에 실패했다. 정부·여당 심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야당이 맡으면 어떤 해결책을 낼지 회의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마음이 대안으로 모아지지 않고, 국민이 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표심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해양경찰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체계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국민의 안전·생명과 관련한 국정개혁의 대안이 없었다. 야당 통합 당시 ‘민생정치’가 곧 ‘새정치’라는 담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 담론도 추상적인 정치개혁의 담론 수준에 머물렀다. 박근혜 정부 국정방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담보하진 못했다.

이대근=‘리셋 선거’였다. 집권세력 대 반대세력 간 1년3개월간의 치열한 대결이 ‘어느 쪽도 완승·완패 없음’으로 귀결된 것은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양측에 주문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는 것도 유보했다. 임기 초반이므로 정부에 실망하기는 이르다는 것과 야당에 대해서도 신뢰하지도 않지만 버리지는 않은 셈이다. 시민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헷갈렸고, 그 때문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선거였다. 시민들의 표심이 방황했던 것은 여야에 책임이 있다. 집권세력은 유일한 방어수단이 ‘박근혜 지키기’였다. 이는 집권세력이 박 대통령 개인적 인기 외에 내세울 성과가 전혀 없다는 자기고백이나 다름없다. 야당도 제대로 된 정책이나 이슈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박근혜 눈물’ 대 ‘대안 없는 박근혜 심판’이라는 가짜 대결 구도를 그만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민심과 거리를 둔 국정운영이 위기를 맞으면서 국정개혁과 관료개혁, 이를 위한 대폭 개각을 사실상 선거공약으로 제시하며 위기를 넘겼다. 앞으로는 국정개혁 성과에 정권의 평가가 좌우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 2기’의 출범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은 민심이라는 호랑이에 올라탄 상황이다.

조정관=세월호 국면에서 야당이 정부·여당 비판을 좀 더 세게 했으면 될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는 회의적이다. 야당이 당시 촛불집회에 나가고 강하게 나갔으면 저쪽(보수)은 가스통을 들고나오는 방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것이 지방선거에 바람직했겠는가는 의문이다. 야당이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가려면 리더십을 정리해야 한다. 단일지도체제나 비대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새정치를 기대한 쪽에서는 스스로를 개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내려놓는 개혁이 필요하다. 7·30 재·보선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다면 패러다임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것을 가로막는 건 계파다.

정해구=정치라는 것은 아래로부터 시민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그러면 정치가 반응을 해야 되는데 박근혜 정부는 대충 눈물과 읍소로 일단 위기를 넘겼다. 또 국가개조론이란 말은 어마어마한데, 쉽게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과다한 ‘립 서비스’ 말고 내용을 내놓아야 하는데 되레 담화 때 ‘눈물’을 보면서 정치가 일종의 사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정치연합은 총선·대선 패배 후 뒤에 숨어 있었다. 세월호로 승리 가능성이 조금 높아졌다고 보니까 다시 나왔다. 이처럼 반응하지 않는 정치는 승리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나 새정치연합이 제대로 못하니까 정치 부재가 왔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은 참패를 겨우 면한 결과다.

노정태=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아쉽게 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정몽준 후보의 막내아들과 고승덕 후보의 딸의 폭로가 없었다면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 둘 다 이겼겠나. 대패했을 것이다. 야당은 아쉽게 지지 않았다. 운 좋게 패배를 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과연 국민을 제대로 아는지 묻고 싶다.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

이태수=새정치연합은 대안세력으로 변화할 수 있나.

김호기=지역주의가 약화돼왔다고 평가들을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중부권과 40대가 캐스팅보트다. 선거가 끝난 이후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김남근=삶의 문제가 어려워진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야당이 실질적으로 진보적인지 의문이다. 새정치와 진보정치는 민생정치가 돼야 한다. 지역 최고위원회나 민생최고위원회 등이 필요하다. 현안에 대해 비판하고 평가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야당이 실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새정치연합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으면 한다.

이태수=한국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2012년 대선 직후 희망이 없을 것처럼 자괴감과 절망감에 휩싸였다. 희망을 꿈꿔보기도 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우리 미래는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심혜리·정환보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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