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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효석 '메밀 꽃'의 봉평 5일장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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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말엔 역시 집!'이 몸에 벤 주인공 캐릭터(집순이)의 좌충우돌 경험담을 깨알같은 디테일을 살려 솔직하게 늘어놓는 후기입니다.

[[주말에뭐하지]착한 시골장 방문기]

머니투데이

/사진=김현정 디자이너


푹푹 찌는 때 이른 여름이다. 대구는 벌써 낮 최고기온 30도를 찍었다는 소식에 숨이 턱 막힌다. 찬 음식이 당긴다.

시장에서 메밀국수와 메밀전병, 부꾸미 등을 마구 먹어대던 먹방(먹는 방송) 장면이 스쳐갔다. '강원도 봉평장이었던가.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이 배경인 곳이구나!' 집순이는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봉평장은 2일, 7일에 서는 5일장이라 우선 날짜를 확인했다. 버스를 알아보니 봉평 직행 버스는 없었고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장평행 버스가 동서울터미널에 있었다. 어른요금 1만1600원을 결제하고 아침 일찍 장평행 버스를 탔다.

2시간쯤 지나 터미널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봉평장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1시간 뒤에나 출발한다고 했다. 집순이는 기다리지 못하고 터미널 바로 오른쪽에 줄지어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께 봉평장 음식을 여쭤봤다. "메밀음식뿐이지요 뭐~ 서울에야 맛난 음식이 많지 여기는 별 거 없어요~ 아, 봉평장에는 없는데 송어회를 콩가루랑 이것저것 섞어서 주는 데가 있어요. 별미예요~" 말끝을 살짝 늘리는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의 기사님은 메밀싹비빔밥으로 유명하다는 한 음식점 앞에서 차를 세워줬다. 길 건너 오른쪽에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시장이라고 했다.

시장이라고 알려준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여기가 맞나 싶었다. 길 따라 한 번 걸었는데 벌써 맞은편 골목길 끝에 다다랐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처럼 대형 상설시장인 줄 알았는데 평범한 동네 시장이었다. 아직 오전인데다 비가 온다는 예보 탓인지 장사를 개시한 상인들이 많지 않았다.

상인과 손님이 흥정하는 소리, 음식을 볶고 튀기는 소리, 닭 울음소리, 트로트 음악 등으로 북적북적한 시장 풍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봉평장은 가산 이효석이 '메밀 꽃 필 무렵'에 묘사한 그대로였다. '여름장이란 애시당초 글러서는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을 벌써 쓸쓸하고…'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애써 붙잡지 않는다. 메밀을 한 움쿰 주어 코에 갖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도 그저 내버려둔다. '이건 얼마예요?', '이 차는 어떤 효과가 있어요?'라고 물어봐야만 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심한 듯하지만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바쁘면 거스름돈도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서 알아서 집어가라 한다. 집순이가 '봉평장 메밀국수는 100퍼센트 메밀이지요?'라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우리도 섞는데요~'라고 답한다. 투박하고 솔직하다.

강원도의 사투리를 살려 지은 '오셨뜨래요?' 식당을 시작으로 시장 곳곳을 구경했다. 강원도라 그런지 산나물, 약초, 산삼 등 산에서 나는 것들이 많았다. 장뇌삼, 말굽버섯, 복령, 야관문… 난생 처음 보는 약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장님은 산에서 캐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사오기도 한다고 했다.

동네 시장의 묘미, 동물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따뜻한 햇볕에 강아지 3마리는 서로를 베개 삼아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노란 병아리 무리도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새끼오리 좀 봐. 귀엽다' 집순이의 말에 사장님은 '얘는 기러기야. 오리가 아니야'라고 일러주셨다. 또 닭 한 마리를 가리키며 '얘는 푸른색 알을 낳는 청계'라고 하셨다. 어린 아이는 병아리를 사달라고 졸랐고 엄마는 마지못해 그나마 얌전하다는 노란 기러기 한 마리를 사줬다. 쪼그려앉아 한참이나 구경했는데도 이곳은 3번이나 더 왔다갔다했다.

다른 골목에 들어서자 '강남에는 강남스타일, 봉평에는 봉평스타일!'이란 재밌는 문구와 함께 사장님의 얼굴 사진, 가게이름이 새겨진 간판이 천막에 걸려있었다. '시장에도 간판이 있다니, 재밌다' 곳곳에 걸린 간판 문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35년 성질 죽이고 스타일 살린 봉평 패션 살롱', '인생 한방! 뻥튀기도 한방!', '허생원도 염치불구 군침 흘린 호떡'……봉평장만의 개성있는 풍경이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정오가 지나자 어느새 골목은 색색의 천막과 매대로 가득 찼고 상인들의 손놀림은 바빠졌다. 메밀음식을 파는 골목에 들어가니 먹음직한 메밀전, 메밀전병, 부꾸미 등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그런데 어느 가게를 봐도 메밀국수는 없었다. 사장님은 '여기는 메밀국수 안 팔아. 저기 식당에 가야 돼'라고 했다. 집순이는 근처 식당에서 메밀비빔국수를 하나 포장해 와 시장에서 메밀전 하나, 메밀전병 두 줄, 부꾸미 하나를 주문해 같이 먹었다. 모든 음식은 무조건 1000원씩. 메밀막걸리도 추가했지만 1만원이 넘지 않았다.

메밀비빔국수는 상추, 깻잎 몇장, 김 가루, 메밀가루, 양념장, 삶은 계란 반개가 올려 있었다. 재료가 많지 않아도, 양념이 진하지 않아도 고소하고 깔끔하게 매콤했다. 메밀전병은 김치 속으로 가득찼다. 잘게 썬 김치 속을 메밀이 감싸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부꾸미는 인절미처럼 쫀득했고 적당히 단 팥 앙금이 감칠맛을 더했다. 메밀 전에는 그냥 배추를 넣은 줄 알았는데 살짝 짭짜름한 맛이 났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절인 김치였다. 전을 간장에 콕 찍어먹고 달달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캬, 여기가 천국이구나'

원 없이 메밀음식을 먹은 집순이는 소화도 시킬 겸 걷기로 했다. 시장 가운데 골목을 따라 죽 걸어갔더니 오른쪽에 학교가 있었다.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제는 폐교가 됐고 운동장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왼쪽을 보니 정자 지붕이 보였다. 그늘에 한 숨 자고 싶은 생각에 가보니 공원이었다. 이름은 가산공원.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의 저자 가산 이효석의 호를 따 만든 공원이었다. 근처 지도를 보니 이효석 문학관도 있었다.

공원에서 거닐다 나오니 건너편에 내천이 흐르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 대신 솔가지 등을 깔고 흙으로 덮어 만든 섶다리를 건넜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니 좌우로 '효석문학 100리길'이란 표지판이 길을 안내해줬다. 그 길을 따라 민박집, 식당이 띄엄띄엄 있었다. '봉평장처럼 근처 동네도 평화로운 분위기구나' 정처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봉평시장 근처 동네를 구경하다보니 술도 깼고 배도 꺼졌다. 아쉬운 마음에 '허생원도 군침을 흘렸다는' 메밀씨앗호떡을 입에 물고 1시간에 한 대씩 있다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주민 아주머니와 한바탕 수다를 떨기도 했다. '서울에서 쓰는 버스카드도 사용할 수 있다, 택시비는 8000원 나오는데 9000원 냈으면 바가지를 쓴 거다, 진짜 100% 메밀은 하얗다' 등 좋은 정보도 얻었다.

소설 속 가을 달빛 아래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밭은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라 메밀꽃과 비슷한 감자꽃밖에 보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웠다. '9월 무렵에는 이효석문화제라고 축제도 한다던데. 그땐 끝도 없는 메밀꽃밭도 보고 당나귀도 볼 수 있다던데' 하지만 집순이는 북적북적하지 않고 일상적인 동네 시장, 여름 봉평장의 투박한 모습도 꽤 매력있다고 생각했다.

◇봉평장 100배 즐기기◇

▶고속버스 이용하기

동서울터미널, 남부터미널에서 장평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요금은 1만1500원(성인기준). 남부터미널에서는 운행하는 버스가 많지 않으니 운행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마을버스 이용하기

장평 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봉평장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바로 보인다. 1시간에 한 대씩 있으니 시간표를 확인은 필수. 서울에서 쓰던 버스카드 이용가능 하다. 버스요금은 990원(카드 기준). 10분 정도 가면 봉평장에 도착한다.

택시도 이용할 수 있다. (주민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5~6킬로미터 가는데 8000원 정도 나온다. 터미널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야 시장으로 곧장 가는 길이다.

▶봉평장 안내

봉평장 골목 안에 사거리로 가면 하얀색 자동차가 서 있다. 봉평장을 안내해주는 곳이다. 시장 약도 등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산공원, 이효석 문학관, 메밀꽃밭

봉평시장 가운데 골목을 따라 가면 가산공원, 이효석 문학관, 메밀꽃밭 등 다양한 관광장소를 즐길 수 있다. 메밀꽃은 가을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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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디자이너


미래연구소 방윤영인턴기자 supe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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