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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10∙26 재심 절차 막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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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 되려는 허욕에서 범행"
김재규 "자유민주주의 회복 위한 거사"
유족 "재심으로 10·26 동기 바로잡겠다"
한국일보

1979년 11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 현장검증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총 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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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404호 법정. 하얗게 머리가 센 김정숙(85)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억울하게 죽은 큰오빠'의 명예회복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그가 언급한 '오빠'는 바로 10·26 사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사형 당한 김재규(1924~1980)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10·26 사건 발생 45년, 김재규 출생 100년째를 맞는 지금, '김재규가 왜 박정희 대통령을 쏘았는지'를 밝히기 위한 형사재판 절차가 다시 시작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재권)는 이날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사형을 당한 김 전 부장의 재심을 시작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김 전 부장 유족 측이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지 약 4년 만에 열린 재판이다.

심문에서 변호인은 10∙26의 동기를 바로잡는 게 재심 청구의 주 사유라고 강조했다. 사건을 맡은 조영선 변호사는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은 '김재규가 대통령이 되려는 헛된 야욕에 시해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부득이한 살인이었다는 점을 재심으로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개시가 가능한 근거로는 계엄법 19조를 들었다. 비상계엄 선포로 군법회의를 받은 자가 불복할 때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인데, 1981년 삭제됐다. 민간인인 김 전 부장을 민간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 넘기고, 증인신문∙공판조서 열람 등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6월 12일로 잡고, 그날 안동일 변호사를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 전 부장의 국선변호인이었던 안 변호사야말로 '쪽지 재판' 등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유족 측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일보

김재규(가운데)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12월 4일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첫 공판에 출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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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총으로 쏘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한 달 만에 군법회의에 기소된 김 전 부장은 같은 해 12월 20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1심인 육군 계엄보통군법회의는 "국가 원수를 시해한 것은 명백한 대역 행위로 내란 행위에 가담한 전 피고인들(김재규·박선호·박흥주 등)에게 극형을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24일엔 대법원 확정 판결 사흘 만에 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범행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다. 합수부장 전두환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대통령이 되겠다는 (김재규의) 어처구니 없는 허욕이 빚은 내란목적의 살인사건"이라고 결론 냈으나, 김 전 부장은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김 전 부장은 1심 판결 후 항소이유 보충서를 통해 "10·26 거사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혁명"이라며 "유신 체제를 깨기 위하여 그 심장(박정희)을 멈추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재판을 소부에 배당했던 대법원은 △단순 살인 논란 △군법회의 졸속 처리 논란이 불거지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6명은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8명이 기각 의견을 내면서 사법 판단은 일단락됐다.

이후 40년이 지나 유족 측이 "10.26과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진화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재심을 청구하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변호인단은 "법정 녹취록을 통해 보안사령부가 재판부에 쪽지를 건네며 재판에 개입한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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