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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김이택 칼럼] ‘장자연 사건 특수협박’ 조선일보사 책임은 누가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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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수사기관을 ‘협박’해 결국 부실·왜곡 수사로 이어졌다면 앵커의 접촉사고 논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 아닌가.

남들 잘못엔 가차없이 비수를 꽂아대면서 자기 잘못은 감추려 한다면 당당하지 못하다. 장씨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고 남의 명예를 치명적으로 훼손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직 대통령 건드리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그런다고 해서 처벌이 되겠어요?” 고 장자연씨의 지인 김아무개씨가 <문화방송> 피디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방 사장 아들’의 행적을 알면서도 그동안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의 우려처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는 20일 장씨에게 술접대를 강요한 가해자들과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은 묻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후속 조처는 장씨 소속사 대표의 위증 혐의를 재수사 권고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장씨가 남긴 문건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조선일보 방 사장’ 일가의 행적을 밝힌 게 성과라면 성과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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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는 문건에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받은 걸로 나오는 ‘방 사장 아들’은 방정오 <티브이조선> 전 대표로 판단했다. 지인 김씨는 4장짜리 문건을 쓴 날에도 장씨와 ‘방정오’ 얘기를 나눴고, 영화 관람 등 ‘방정오’와 만난 일정이 기록된 장씨의 다이어리도 봤다고 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뒤 조선일보사가 ‘조선일보 방 사장’과 ‘방 사장 아들’이 누군지 내부적으로 알아봤다면 일찍이 그 실체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크다. 톱스타를 꿈꾸던 여배우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콕 짚어 거론할 리는 없을 테니까.

당시 조선일보사는 ‘방상훈 사장은 무관하다’며 언론계·정계 등에 ‘피해자 프레임’을 강력하게 펼쳤다. 그것이 그의 동생과 아들까지 뒤로 감추고 부실·왜곡 수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장씨의 1년치 통신기록 원본파일은 검경 어디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 수사책임자는 ‘수사기밀’까지 조선일보사 쪽에 넘겨줬다고 법정에서 고백했다. ‘방 사장 아들’에게도 코리아나호텔 스위트룸까지 찾아가는 ‘출장 서비스’ 조사의 특혜를 제공했다.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역시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소환조차 않더니 검찰은 국내에 있는데도 아예 부르지 않았다. 지인 김씨가 장씨와 방 전 대표의 관계를 ‘광분해서 진술’했는데도 검찰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에 맞먹는다는 언론권력 앞에서 수사기관들이 알아서 비켜간 것일까.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과거사위 발표문에 등장하는 ‘특수협박’이란 표현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며 수사책임자를 ‘협박’한 사실을 과거사위는 공식 인정했다. 다만 ‘특수협박죄’(형법 284조)의 공소시효는 지났다고 했다. 사내에 대책반까지 꾸려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으로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협박’한 것은 맞다는 취지다.

언론이 수사기관을 ‘협박’해 결국 부실·왜곡 수사로 이어졌다면 별일 아닌 듯이 넘길 일인가. 최소한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해온 유력 앵커의 접촉사고·폭행 논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특수협박’ 와중에 결국 장씨가 문건에서 고발한 성착취의 진실까지 덮였다면 책임은 더 크다.

이 사건에는 장씨 이외에 또다른 피해자가 있다. 조선일보 2011년 3월9일치는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확인됐다’며 사실상 조선일보 전직 고위간부를 지목했다. 과거사위는 사주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간부를 겨냥한 ‘맞춤 진술’을 또다른 조선일보 간부가 청탁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사실이라면 ‘인격 살인’에 가깝다.

‘미투’ 이후 과거 비위가 드러난 정치인·공직자·연예인들이 줄줄이 구속·퇴출되고 있다. 물컵 던지고 갑질한 기업인들도 예외없이 자리에서 쫓겨나는 시대다. 방정오 전 티브이조선 대표 역시 딸의 말 때문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에 맞먹는 언론권력이라면 공적 책임도 그만큼 더 크다.

조선일보사는 그간 사실상 입을 틀어막으려는 봉쇄소송으로 이 사건에 대응해왔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의원들과 시민단체 인사들을 고소한 데 이어 최근에는 문화방송과 <한겨레> 등에도 소송을 걸었다(무고죄를 의식했는지 한겨레엔 형사고소는 하지 않았다). 남들의 잘못에는 가차없이 비수를 꽂아대면서 자신의 잘못은 감추거나 회피하려 한다면 당당하지 못하다.

‘협박’과 ‘인격 살인’의 전말은 알 수 없으나 과연 이 모든 일이 최대주주이자 오너인 방상훈 사장 모르게 진행됐을까. ‘특수협박’으로 장씨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고 남의 명예와 인격을 치명적으로 훼손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언론 자유’의 방패 뒤에 숨어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면 비겁한 일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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