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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들어보니]차별은 없지만, 차이는 있다···장애인전문여행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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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오후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영실탐방로로 내려오고 있었다. 왼편으로 펼쳐지는 오백나한과 주상절리의 절경에 넋을 잃다가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길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여성과 마주했다. 총천연색 등산복을 차려입은 이들 사이로 도드라지는 갈색 롱코트 차림의 그녀는 양손에 목발을 짚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선한 것은 “(정상이)아직 멀었나요?”라고 묻는 그녀의 환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혼자서 그 길을 올라왔느냐,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미소로 인사하는 것이 예의일 듯싶었다.

‘집밖으로 나서는 것부터가 모험인 장애인들에게 제주도 여행은 불가능한 도전이 아닐까.’ 이런 편견이 그들로 하여금 ‘엄연히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존재’로 살게했다. 하지만 달나라 관광 예약도 하는 시대에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장애인에게 여행이란 세상과 만나는 문이에요.”

제주도에 장애인 전문 여행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한 결과 ‘두리함께’의 이보교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대표가 제주도에서 여행사를 오픈한 것은 무엇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일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가 제주도’이기 때문이었다. ‘차별 없는 여행, 차이 있는 여행’을 모토로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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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전문 여행사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장애인들을 숨은그림찾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2016년 기준 등록 장애인이 262만 명이다. 인구 20명 당 1명이 장애인인데 우린 그들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숨어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숨겨놓은 것이다.”

- 장애인 전문 여행사라 다른 점은?

“이동에 제약이 큰 장애인을 위해 리프트 특장차량을 도입하고, 교통부터 숙박, 식당, 관광지 현장답사를 통해 장애인들이 불편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체크해서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여행지 위주로 프로그램을 짠다. 화장실 접근이 용이하고 휠체어 이동에 문제가 없는 곳 중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한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한다. 또 항공기 이용에 대해서도 불편이 없도록 돕는다.”

- 휠체어 타고 여행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주 전남여성장애인연대 80분이 제주도에 오신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를 타는 여덟 분이 여행을 포기하셨다. 겁이 나서 못 오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여행은 곧 사회적응이다. 한번 집밖으로 나오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번 나와 봐야 사회에 적응도 하고 나아가 직장도 가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결국 그렇게 되면 사회적인 비용도 절감되지 않겠나. 그만큼 여행이 중요하다.”

- 장애인의 첫 여행이 인생을 바꾼 케이스가 있을까?

“등록 장애인 중 92%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30대 중반 병으로 장애를 얻은 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끊은 분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 가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애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당사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분이 혼자서는 힘드니 동행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3박4일 여행을 함께한 적이 있다. 마지막 날 ‘사실 자살 하려고 했었다’고 고백하시더라. 도저히 못 살겠어서 마지막 여행이라 마음먹고 왔는데 (이번 여행을 해보니) 살아볼 수 있겠더라고 하셨다. 이후 그분은 여행활동가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 여행활동가란 무엇인가?

“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여행정보를 알려주고, 독립생활을 안내해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KTX는 어떤 차량 몇 호차를 타야 장애인석이 있으며, 관광지 중에는 어디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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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장애인 전문 여행사는 얼마나 있나?

“여섯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고객께서 ‘전문지식 없는 여행사의 여행은 무자격 의사에게 진료 받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한번 여행이 고통스러우면 두 번 다시 나서지 않는다. 장애 종류마다 여행도 달라야 한다. 휠체어도 전동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 수동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이 다르다. 또 척수장애인, 지적장애인에게 맞는 코스가 따로 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걷는 건 싫어하지만, 재미있는 체험은 좋아한다. 매번 고객에 맞게 코스를 따로 짜야 한다.”

- 여행 과정이 쉽지 않겠다.

“고객의 35% 정도가 휠체어 장애인이다. 휠체어 통과가 가능한 객실을 잡는 것, 또 식당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까. 또 전동휠체어가 비행기에 오르려면 배터리를 분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만 1시간이 걸린다. 비행기 탑승 때도 장애인이 제일 먼저 타서, 제일 나중에 내린다. 그러니 비행기에 타고 내리는 데에만 4~5시간이 걸린다. 항공사 직원들도 고생을 많이 한다. 이 경우 정부에서 항공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 장애인의 공항 이용 시 별도의 절차가 있나?

“장애인이 비행기 예약을 할 때, 복지카드 소지 여부는 확인하는데 그 외에도 반드시 매뉴얼이 필요한 과정이 있다. 이를테면 휠체어를 타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간혹 비행기에 못 싣는 휠체어가 있는데 그걸 사전에 확인하지 않는 바람에 공항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부산에서 휠체어 10대를 싣고 올 일이 있어 콜센터 직원에게 3번이나 확인을 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자 3대 밖에 못 싣는다고 해서 난리가 났었다. 알고 보니 콜센터에서는 규정대로 답한 건데, 항공사에서 화물을 받아놓아서 휠체어 실을 자리가 없었던 거다. 비행기 기종이나 공항 사정에 따라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여건이 다를 수 있다. 명확한 기준과 매뉴얼 정리가 시급하다.”

- 관련 기관에서 여행을 함께한 경우는 있나?

“얼마 전 서울시 정책연구원 관계자가 신장장애인 여행을 반나절 지켜본 적이 있다. 이후 장애인 여행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더라. 신장장애인의 경우 도보 여행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여행을 마치고는 여섯 군데 병원에 나눠 들어가서 밤새 투석을 해야 했다. 한여름에 내복을 입어야하는 분도 있다. 그런 현실을 처음 보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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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부처에 하고 싶은 말이 많겠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정책을 복지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물론 복지도 맞지만 장애인 여행의 경우는 관광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장애인도 소비자인데 그렇게 바라보지 않다보니 (돈 받고 하는 일이면서도) ‘보시를 한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도 엄연히 비용을 지불하는데, 소비자로 인식해야 관련 시설도 개선되지 않겠나.”

-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공장소든, 숙박업체든 신규 건설 시에는 제발 현관 문턱을 없애고 출입문의 너비를 80cm 이상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럼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으니 굳이 장애인 객실을 별도로 만들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휠체어는 발이다. 객실에 들어간다고 해도 화장실 문이 좁으니, 팔꿈치로 기어서 화장실에 들어가야하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이 동반자(이 대표는 보호자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용어를 쓴다고 했다.)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것만이라도 보장되면 좋겠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사회운동가 또는 계몽가가 되어버렸다(웃음).”

- 휠체어를 구비해두는 여행지도 있는데, 그밖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수천만 원씩 투자해서 휠체어를 사두는데, 관리를 못하면 녹슬어서 결국 예산낭비가 된다. 또 요즘은 본인 휠체어가 다 있다. 장애인 여행에 대해 아는 정부 부서가 없다보니 되풀이 되는 문제다. 우리 회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배리어프리여행사 인증제를 요청했다. 휠체어 경사로 갖춘 특장버스뿐만 아니라 장애인용 목욕의자까지 구비한 여행사는 우리밖에 없다. 손님이 불편한 걸 아니까 서비스 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일정 수준에 맞는 서비스와 시스템을 갖춘 여행사에 대한 공인된 인증이 필요하다.”

- 장애인 고객들은 제주도 코스 중 어디를 선호하나?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바다 보는 걸 제일 좋아하신다. 월령리 선인장 마을, 절물자연휴양림, 산굼부리, 제주돌문화공원, 형제섬 올레길 등의 코스로 패키지를 꾸렸다. 지적장애인들은 쇼·공연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휠체어 타시는 분들은 일단 야외에 나가는 걸 선호하신다. 이동약자들의 경우 우도에 가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제주 여행을 계기로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가고, 유럽 여행까지 나서는 분을 봤다.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삶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 여행비용은 어떻게 되나?

“장애인 복지카드 소지자는 항공 할인 혜택이 있다. 그것과 별도로 제주 관광 코스의 경우 우리가 현지 직거래를 하다 보니 여느 여행사보다는 저렴하게 운영할 수 있다. 호텔(4~5성급) 숙박, 특식, 입장료, 여행자보험 등 포함 2박3일 코스의 경우 30만 원대다. 40만 원 이상은 받아본 적이 없다.”

- 그럼 운영에 어려움은 없나?

“우리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라 직원 임금 보조(최저 임금의 70%)를 받아서 그나마 운영이 가능하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매출이 두 배 가량 올랐다. 9명 직원이 진짜 고생이 많다. 일반 여행사에 비하면 업무 부담이 10배라고 보면 된다. 공지 전화도 한 통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들로부터 힘을 얻고 오히려 힐링이 된다고 말하면서 일한다. 곧 전 직원이 일본으로 휠체어서비스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연수를 간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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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표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25년 전에 제주도로 와서 컨벤션 관련 여행사를 운영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얻던 중 온라인여행사를 열었다가 2년 만에 큰 실패를 경험했다. 이후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복지관광 팀장 제안을 받고나서 몸이 불편한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려던 차에 무릎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허벅지까지 통깁스를 하고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장애인들이 접하는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 여행 콘텐츠 개발에 있어 유념하는 점은?

“당사자의 눈에서 바라보는 콘텐츠를 개발해야한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에서 장애인여행작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수료를 기념해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갔다. 일본은 휠체어 접근성이 좋아서 온천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선천성 장애를 가진 50대 여성 참가자가 있었는데, 우리 직원들이 수건을 깔고 그분을 옮겨서 온천욕을 시켜드렸다. 새로운 경험치를 드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뿌듯했는데, 막상 그분의 반응은 ‘그냥 그래요’였다. 알고 보니 사우나 체험 자체가 생애 처음이셨던 거다. 그래서 이번 경험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거다. 그 사례가 이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장애인 전문 여행사를 한지 4년째인데, 초기보다 나아진 점이 있나?

“과거에는 아침에 휠체어 타고 식당에 들어가면 소금을 뿌리거나 천원 한 장 쥐어주면서 ‘물건 안사니까 나가세요’라고 한 적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식 개선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전에는 장애인 고객과 간다고 하면 ‘자리 없습니다’라고 하던 업장에서 이제는 ‘휠체어 이용하는 분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어올 정도다.

최근 (내부 공간이 넓은) 장애인화장실을 가족화장실로 바꾸자는 반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장애인화장실은 그대로 유지했으면 좋겠다. 소변을 시간에 맞춰 빼줘야 하는 척수장애인이 가족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쇼크가 올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사례를 들을 때마다 나도 반성한다. 내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 삶이 불편해야하는 건 아니지 않나.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면 그런 고민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게 여행에서부터 시작되면 좋겠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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