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큼 살아오고 같이 정답게 늙어가며 친구가 되어야 되는 우리의 부모세대들은 왜 이혼을 하려할까? 이들은 말한다.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아왔는데, 시집장가 보냈으니 더는 참고 살고 싶지 않다고. 장성한 자녀들이 떠나고 의무감에서 해방된 부부는 “함께”라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혼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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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때문에 살아왔다는 부모세대는 은퇴 후 주7회, 24시간을 함께 지내게 되는 새로운 삶을 맞게 된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을 단 둘이 함께 보내본 적이 없던 부부사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다. 특히나 아버지는 이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부부사이의 멀고도 먼 정서적 거리를 어떻게 좁혀야할까? 자식 때문에 같이 산다는 것은 이제 정말 너무 힘들고,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황혼에 행복하려면 부부의 친밀감이 결혼 생활동안 자연스럽게 연습되어져야 한다. 서로를 위해 주고, 대화도 자주 하는 부부여야 황혼에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친밀감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두 부부는 한 사람은 앞에 걸어가고 또 한 사람은 뒤에 따라가는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년의 긴밀한 부부 친밀감을 위해서, 공평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 같은 부부가 되려면 무엇을 연습해야할까? 먼저 친구는 동등한 관계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즉 공평해야 친구다. 육아, 가사는 물론이거니와 부부간의 애정표현, 경제적인 영향력 등이 비슷해야 친구다. 부부 중 한 사람만 희생을 강요당한다면 이것은 친구관계가 될 수 없다. 이는 갑과 을이 존재하는 애인관계이다. 언젠가 한쪽이 혼자만의 희생을 한 것에 억울함을 느끼고 떠나게 돼 있다.
경제적인 영향력도 부부가 공평하다면 함께 이룬 것을 탐하거나 빼앗으려하거나 손해 보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노년에 나의 남편(아내)과 1년 365일을 같이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누구 한쪽만 희생하거나 헌신하며 살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해야 맞다. 결혼 초기 공평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황혼에 이르러 생겨난 억울한 감정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외치며 뛰쳐나갈 지도 모른다.
긴밀한 부부 친밀감을 위해서 부부는 억지로라도 서로에게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 속 이야기들을 두 부부가 털어놓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더 잘 챙겨야 한다. ‘가족끼리 왜 이래’가 아니고 가족이니깐 더 축하해주고 의미 있는 선물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연애시절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짜보자.
[장성미 라이즈업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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