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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48년만에 경영 손 떼는 김준기 동부 회장…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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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김준기(73) 동부그룹 회장이 21일 그룹 회장직과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동부그룹은 비(非)오너 회장 체제를 처음으로 맞이하게 됐다. 건강상 문제로 7월 말부터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 회장은 당분간 건강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은 김 회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는 데 따른 내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임 회장으로 이근영(80) 동부화재(005830)고문을 선임했다. 관료 출신인 이 신임 회장은 2008년 동부메탈 및 동부생명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동부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동부그룹은 이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23개 계열사 전문 경영인의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조선비즈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동부금융센터./동부그룹 제공



◆ 10대 그룹 창업주의 씁쓸한 퇴장

김준기 회장은 1969년 동부그룹의 모태인 미륭건설(현재 동부건설)을 창업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보다 창업 시기가 약 30년 늦어 2세대 창업주, 해방 세대 창업주로 불리기도 한다. 이후 동부고속, 동부상호신용금고 등을 설립하고 동부화재(당시 한국자동차보험) 등을 인수하면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동부그룹은 1990년에 20대 그룹에 진입했고 2000년에는 재계 순위 10위(금융업 포함 시 1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세대 창업주로 10대 그룹을 일군 사람은 김 회장이 유일했다. 당시 19개였던 계열사는 꾸준히 늘어 2014년에는 64개에 달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자산 총액은 5조3310억원에서 17조7890억원으로 증가했다.

동부그룹은 철강, 반도체사업 등에 대규모 투자했다가 고전을 거듭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려 2014년부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은 법정관리 과정에서 매각됐고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들도 계열 분리되면서 계열사가 23개로 확 줄었다. 작년말 기준 23개 계열사의 자산총액은 8조2660억원이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과로, 스트레스 등의 영향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자수성가형 오너 경영인이었지만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면서 씁쓸하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는 이날 임직원들에게 “제 개인의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물러난다”며 “여러분(임직원)들의 행복과 동부그룹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 48년만에 비(非)오너 회장 맞는 동부그룹

조선비즈

이근영 동부그룹 회장




김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동부그룹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1969년 미륭건설 창업 이후 줄곧 경영을 진두지휘하던 오너가 물러나면서 한번도 겪어 보지 않았던 비(非)오너 체제를 맞이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 후 48년간 직접 챙기던 업무를 내려놓는 것 자체가 임직원들에겐 큰 충격이다”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근영 신임 그룹 회장은 행정고시 6회에 합격해 광주지방국세청장, 재무부 세제국장, 세제실장 등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다. 이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등을 지냈다. 동부그룹과는 2008년에 동부메탈, 동부생명 사외이사를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동부그룹은 이근영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 전문경영인의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각 계열사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하고 계열사 간 협업이 필요한 부분은 이 회장이 조율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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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상무




김준기 회장은 딸과 아들 한 명씩을 뒀는데 딸인 김주원(44)씨는 현재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들 김남호(42)씨는 동부제철, 동부팜한농을 거쳐 현재는 동부금융연구소 상무로 재직 중이다. 김 상무는 ㈜동부(012030)(지분율 18.59%), 동부화재(9.01%)의 최대주주이다. ㈜동부는 동부하이텍 지분 12.43%를 보유 중이고 동부화재는 동부생명 지분 99.6%, 동부증권(016610)지분 19.92%를 갖고 있어 사실상 김 상무가 그룹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준기 회장의 지분 승계는 이미 끝난 상황이라 지배구조에는 당장 변화가 없을 것 같다”며 “언젠가는 김남호 상무가 경영권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재호 기자(j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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