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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데스크] 文대통령, 취임 때 초심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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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입니다.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국민 대통합'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문 대통령은 '구중궁궐 여왕'으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권위와 단절의 벽을 넘어 국민과 소통하면서 70%가 넘는 폭발적 지지를 얻고 있다. 청와대 앞길을 50년 만에 개방하고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셀카를 찍으며, 참모진과 커피를 들고 경내를 산책하는 파격적 행보는 국민들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습기살균제, 세월호,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같이 눈물을 흘리고, 살충제 계란 등 민생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은 고단하고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실천 앞에 모두가 박수를 치는 분위기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탓인지 문제점도 만만찮은 게 사실이다. 특히 대북 안보와 공직자 인선, 적폐청산 등 주요 국정 현안을 추진하면서 지지세력 이념과 진영논리에 갇혀 말 바꾸기와 좌충우돌, 밀어붙이기로 신뢰를 갉아먹고 있어 걱정스럽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6·25전쟁 이래 한반도가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포함한 대북정책 기조가 롤러코스터처럼 오락가락하면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후,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가해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는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8·15 경축사에선 "전쟁은 기필코 막겠다.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군사옵션을 배제한 대화론에 다시 무게를 뒀다.

"전쟁을 막겠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쟁이 사라지고 북한 비핵화가 실현될 리 만무하다. 미국과 찰떡공조를 해도 부족할 판에 계속 '운전대'만 고집했다간 한미 간 균열이 생기고 대북 공조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자칫 북·미나 미·중 간 막후거래로 코리아 패싱과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한국이 미·일과 제대로 안보협력을 못하면 1950년 1월 미국이 한반도를 빼고 아시아태평양 방어선을 정해 6·25를 불러왔던 '애치슨 라인'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자신이 진정한 동맹이 되거나 분명한 적이 될 때 존경을 받는다. 이런 행동은 중립보다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독일 통일을 추진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도 "우리 모두 민족통일의 염원을 가슴에 지니고 있지만 냉정하게 계산하는 정치가는 먼저 집을 세우고 나서 집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처럼 악화 일로의 상황에서 누구와 손잡을지, 어떤 전략적 기조를 유지할지 원칙을 세우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의 조각 인선도 난맥 자체다. 능력 위주의 탕평 인사보다는, 참여정부 시절 함께 일했거나 대선 공신들을 중심으로 한 코드·보은·캠프 인사가 판을 치고 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잇따른 낙마도 이런 폐쇄적 인사가 불러온 역풍이다. 대선 당시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던 구호가 지금은 '내 사람이 먼저다'로 바뀌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법도 하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인선을 발표하는 이벤트는 한 번이면 족하다. 이제는 난마처럼 얽힌 국정을 헤쳐 나갈 유능하고 도덕적인 인재 발굴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임기 내내 밀고 가겠다는 적폐청산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불법 사찰과 권력 줄대기, 방산비리 의혹이 드러난 국가정보원과 검찰, 군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적폐청산이 과거 보수정권의 환부를 도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정권의 전방위 살생부로까지 이어져선 곤란하다. 벌써부터 시중엔 "완장 찬 집권세력이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의 핵심 라인을 모조리 솎아내려 한다"는 정치보복설이 파다하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에 묘역을 참배한 백범 김구 선생은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며 국론화합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도 취임식 때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초심대로 이념과 정파를 넘어 온 국민이 백년대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관용과 배려의 정치에 나선다면, 5년 뒤 우리는 오랜만에 '국민의 지도자'를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정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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