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판 중대재해법 '책무구조도' 올해 본격 시행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금융권 고위 임원들 불안 커져
"과도한 규제로 실효성 부족 VS 금융사고 예방 가능성 높다"
편집자주올해부터 금융권에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 각자가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스스로 명확히 설정하는 제도다. 정부는 반복되는 금융사고에 대응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이 제도를 마련했지만, 현장에서는 강화된 책임 부담과 징계 우려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작은 실수 하나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크다. 이번 기획에서는 책무구조도의 도입 배경과 현황을 짚고, 제도가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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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은행 고위 임원 A씨는 올해 들어서 전국의 지점에서 올라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매일 보고 받는 중이다.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면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작은 지점에서 벌어지는 1000원 단위의 작은 계산 착오 문제까지 본인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배로 늘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 B씨는 최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날 때마다 책무구조도와 관련된 하소연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이런저런 업무가 많이 늘었고, 언제든 소송당하고 회사에서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는 불만이 대부분이다. CEO는 물론 최고위험관리자(CRO), 최고재무관리자(CFO) 등 C레벨 경영진들의 고충을 듣는 경우가 늘었다.
올해부터 금융권 책무구조도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제도를 둘러싼 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안 그래도 제약이 많은 금융업에 또 다른 규제가 생기면서 제도의 실효성은 떨어지는데 경영 부담만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책무구조도 도입이 대형 금융사고 예방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금융사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금융사 임원들이 책무구조도를 둘러싸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 AI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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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올해 최대 목표는 "내부통제 강화"
8일 금융업계 올해 경영 전략을 분석한 결과, 금융사 CEO들의 최고 관심사는 내부통제 강화다. 올해 금융지주와 은행을 시작으로 금융권에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내부통제에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는 금융회사 각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다. 임원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금융회사 스스로 특성을 고려해 사전에 명확히 하는 것이다.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작년에 시행되면서 책무구조도 도입도 시작됐다.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임원들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융지주 수장들의 이런 내부통제 강화 의지에도 실제 내부통제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사 임직원들의 불안감과 불만은 여전히 크다. 늘어난 업무와 징계에 대한 부담,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 등이 공통적인 불만 사항으로 꼽힌다.
책임자 처벌 강화가 실제 금융사고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있다. 현실에서는 책무구조도를 '감사를 위한 문서' 수준으로만 만들고 실질적인 책임 구분이나 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업무는 융합적이고 유동적인 경우가 많은데 단순한 책무구조도만으로 책임을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책무구조도에 내 역할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책무구조도 도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금융회사와 당국 모두 실무적 차원에서 풍부한 논의를 이어 나가야 한다"며 "특히 CEO가 조직 전체에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위험요인을 세부적으로 인식하며, 필요한 실질적 자원을 투입하는 단계까지 이어져야 도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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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혼란 겪겠지만, 장기적으로 금융사고 예방할 것"
도입 초기인 만큼 당분간 현장에서 여러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형 금융사고 예방과 소비자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서 책임소재가 명확해지고,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관심과 참여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나 불완전판매 등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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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구위원은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CEO까지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고 주요 업무별 최종책임자를 특정해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구현했다"며 "이는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더욱 명확히 하고 관리 의무 이행 실패의 책임을 경영진에게 직접 물을 수 있게 돼 임원의 책임 회피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경우에는 임원들이 제재나 징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내부 통제 등 관리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며 "책무구조도가 자신의 책임을 명확하게 해주기 때문에 평소에 업무 수행을 잘했으면 오히려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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