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일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윤석열 8대0 파면을 위한 끝장 대회’ 참가자들이 거리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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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가 벌어진 지 123일이 되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겨울과 봄을 아우른 긴 시간, 시민들은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한남동, 남태령과 전국 곳곳을 광장 삼아 “내란의 겨울을 끝내달라”고 외쳤다. 그사이 어떤 이는 무대에 올라 지친 시민을 독려했고, 또 어떤 이는 그런 무대를 기록했다. 시민항쟁버스를 만들어 추위 대피소를 만들고, 엑스(X·옛 트위터)에 소식을 퍼 나르며 농민과의 연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를 하루 앞둔 3일 한겨레는 그간 광장에서 만났던 시민들과 지난했던 시간을 돌아봤다. 시민들은 “우리가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체감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판단이 그 변화의 시작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3일, 대학원생 이재정(31)씨는 국회 앞으로 달려가 참담한 심정으로 외쳤다. “불법계엄 해제하라!” 이씨는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윤퇴청) 모임을 꾸리고 청년 목소리를 모으던 중이었다. 그날 헬기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광경에 “지금 당장 막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 대표인 민동혁(28)씨는 ‘계엄 포고령 1호’를 보고 “가만히 있으면 상식적인 내 권리들이 다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자동차 정비 일을 하는 ‘레트로 마니아’ 민씨는 시민항쟁버스를 몰고 지난해 12월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모인 국회 앞으로 향했다. 이들에게 2024년 대한민국에서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자체로 거대한 공포였다.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광장에서의 겨울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청년 농부 김후주(36)씨는 이를 “민주주의는 수동이었다”고 표현했다. 시민이 힘을 모아 직접 해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절감했다는 의미다. 엑스(X)에서 ‘향연’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씨는 지난해 12월21일 밤 경찰이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렬을 남태령에서 막아설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연대를 요청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남태령에는 그의 메시지를 본 시민이 거짓말처럼 모여 농민 곁에 섰다. 이튿날 아침 마침내 경찰이 물러섰다.
이후로도 간단찮은 날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했을 때, 윤 대통령이 석방됐을 때를 위기의 순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무대 발언을 기록해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전해온 이지완(31)씨는 “지난달 중순 이후 헌재 선고기일이 언제 잡힐지 몰라 무기한으로 늘어지던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광화문에 천막을 치고 단식에 나선 시민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혐오도 거세졌다. 이씨는 “시민들이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 눈앞에 보여 고통스러웠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한 시간을 견딘 힘도 결국 광장에서 함께 견디고 있는 시민들의 존재였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무대 사회자로, 집회를 축제로 만든 주역 중 한명인 박민주(28)씨는 지난해 12월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가 무산된 그때를 외려 ‘가장 좋은 기억’으로 꼽았다. 박씨는 “좌절하는 분위기였지만, ‘다시 모이자, 끝까지 가보자’는 다짐을 서로 나누는 날이었다”고 했다. 형형색색 응원봉과 기발한 문구가 적힌 깃발, 최신곡과 옛날 노래가 어우러지는 집회의 모습은 12·3 비상계엄에 맞서는 시민들의 상징이 됐다. 이재정씨도 “이렇게나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도 광장이 지속된 건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버텨온 끝에 헌재가 4일 오전 11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다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들은 “버텼던 시간을 끝내고, 유예된 얘기를 시작하는 날”(이재정씨), “형식적인 민주주의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가는 분수령”(이지완씨), “허상으로 드러난 기존의 상식과 질서가 바뀌는 시점”(민동혁씨)이라고 했다. 거리에서 칼바람 맞는 시민들을 지원하려 식당 선결제와 손난로, 푸드트럭 지원이 쏟아지던 모습, 행진 대열에 잠시 차가 멈춰 섰을 때도 응원해주던 운전자의 얼굴처럼, 박민주씨는 “연대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문화가 사회에 정착되면 좋겠다”고 했다. 4일,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랐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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