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이야기는 현실과 달랐다. 입사 후 교육은 없었고 2주 만에 바로 산불 진화 출동을 나갔다. 작업복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창고에 있는 겉옷을 입고 바지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사비로 구매했다. 소방서에서 군 생활을 했던 그는 모든 장비가 완벽하게 준비돼 있었던 소방서 때와 달리 헬멧도, 랜턴도, 장갑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신발도 지급받지 못해 등산화를 신고 출동했다. 그는 그때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 깔린 마른 낙엽은 산불 상황에선 ‘휘발유’나 다름없다. 낙엽을 제거하면서 불이 못 넘어오게끔 ‘진화선’을 구축해야 한다. 불타고 연기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걸 하루 이틀 배웠다. 동료들이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게 교육이었다. 신현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장은 “산림청이 매년 발간하는 ‘전국 산불 방지 종합대책’ 자료를 보면 산불 진화 개인 장비를 준비하지 않은 대원은 산에 올라갈 수 없지만 지켜지지 않는다”며 “진화대원들의 전문적 역량을 키우겠다는 계획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산림청 소속 산불특수진화대원과 지자체 소속 전 산불예방대원(왼쪽)이 2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에서 만나 최근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등 산불진화 현장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왼쪽부터 방남철 전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정지성, 신현훈, 김우종 산불특수진화대원. 2025.04.02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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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재난예방진화대,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예방진화대는 6~7개월 근무하는 단기 계약직, 특수진화대는 산림청 소속 공무직이다. 특수진화대는 예방진화대처럼 계약직이었지만 산불 진화 인력 처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커지면서 2016년 특수진화대가 시범 운영되기 시작했고 순차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신 지회장은 ‘산불 영웅’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창녕군 소속 예방진화대원 3명이 사망했고 5명이 부상으로 치료 중이다. 그는 “예방진화대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더 높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 현장에서 진화대원들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2025.3.26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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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22년 이들을 ‘재난 필수업무 노동자’로 지정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처우 개선에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체감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인당 월 4만원씩 위험수당 예산(2억900만원)을 편성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순천국유림관리소 산불특수진화대원 정지성씨(35)는 “장관, 대통령 등이 말을 해도 몇 년 동안 처우 개선이 잘 되지 않는 걸 보면 법이 의미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산불예방진화대원, 특수진화대원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는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기후 위기가 심화하면서 더 위험이 커지고 있는 대형 산불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삼척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원 신현훈씨(63·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장)와 수도권 한 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원 김우종씨(31), 순천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원 정지성씨(35)와 지난해 말까지 전남 장흥군 예방진화대원으로 일했던 방남철씨(63)를 2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달 23일 안평면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2025.03.23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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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를 버리고 내려갈 만큼 위급한 상황”
산속 계곡 바람은 수시로 변해서 예측할 수 없다. 간신히 불이 넘어오는 걸 막은 뒤 잠시 밥을 먹고 다시 올라갔는데, 같은 계곡에서 다시 불이 넘어왔다. 갇힐 뻔했다. 새벽 1시 연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는 상황이라 헬기도 뜨지 못했다. 방염 텐트를 펼까 고민하다 철수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싶어 호스를 다 불태우면서 내려왔다. 신 지회장은 “장비를 버리고 내려간다는 건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남 지역 산불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사망자 30명, 부상자 45명 등 총 75명이다.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예방진화대원 3명이 먼저 사망했고 이후 주민들 피해가 이어졌다. 방남철씨는 뉴스를 통해 예방진화대원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강풍으로 산불이 번지고 있는데 7부 능선까지 올라간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바람이 그렇게 심하게 부는 산불 상황에 예방진화대원을 투입했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목숨 내놓고 뛰어드는 꼴이죠.”
산불이 나면 119로 접수된다. 소방청이 접수한 후 산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지자체로 연결된다. 지자체에선 먼저 예방진화대를 출동시키지만 산불이 커지면 주불을 잡는 건 지상에서 진화하는 특수진화대다. 공중진화대가 헬기에서 물을 뿌리고 특수진화대가 올라가 주불을 진화하면 잔불을 예방진화대가 정리한다. 방씨는 “예방진화대원의 주요 역할은 산불 예방과 순찰”이라고 했다.
방남철 전 장흥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2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최근의 산불 현장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4.02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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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진화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61세다. 산림청과 지자체는 ‘공공근로 직접 일자리 사업’의 재정지원을 받아 저소득 고령층을 우선 선발한다. 이들은 지자체 소속으로 보통 6~7개월 계약을 맺고 일하는 단기 계약직으로 최저임금을 받는다. 신 지회장은 “위험한 순간이어도 공무원들의 지시를 듣지 않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에 선발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씨는 “초단기 노동자들이다 보니 입도 뻥끗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흥군에서는 위험 수목 제거 작업을 하다가 나무가 쓰러지면서 예방진화대원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절하지 못해 벌어진 사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지성씨는 예방진화대원의 사고가 ‘예견된 일’이라고 했다. 그는 “공무원 1명도, 예방진화대원 3명도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텐데 상부에서 잘 모르는 상태로 지시하고 진화 인력을 투입하면서 벌어진 일이라 본다”고 했다.
정지성 산림청 소속 산불특수진화대원이 2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최근의 산불 현장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4.02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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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지회장님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철수해서 순찰한 것”이라며 “산불 현장에서는 이런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 지회장은 “공무원들은 계속 부서가 바뀌니 지휘 체계가 구성될 만한 환경이 아니다”라며 “이번 사고에서 공무원도 사망했는데 누가 더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해 건조특보 등이 줄어들면서 산불 피해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그로 인해 올해 산불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방진화대는 2021년 1만110명에서 지난해 9604명으로 감소했다. 방씨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방을 잘해서 산불이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방진화대원들이 순찰 예방 활동을 잘해서 초기에 진압하면 큰 산불로 번지지 않는다”며 “그렇게 열심히 하면 산림청이나 중앙 부처에서는 산불이 적었으니 예산을 줄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늘 그렇게 왔어요. 별일이 없으면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인원을 줄이죠. 그만큼 활동 반경이 좁아지는 거죠. 재난 업무라는 건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이 떠난다,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산림청에는 5개 지방청과 27개 국유림관리소가 있다. 이곳에 배치된 특수진화대원은 435명이다. 양산 국유림관리소가 경상남도 전체를 책임지는데 이를 담당하는 특수진화대원은 24명뿐이다. 관할 구역은 넓지만 재난 업무 특성상 평소에는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 그러다 보니 산림청 내부에는 다양한 시선이 있다. “노는 것처럼 보고” 업무 범위를 넘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한다. 2020년 9월에는 동부지방산림청 소속 국유림관리소장이 민간인과 협약을 맺고 4년간 민간인의 문중 묘역을 벌초해주는 일도 있었다. 이 벌초에 10여명의 특수진화대원들을 동원했다. 신 지회장은 “업무 범위를 넘는 일은 청소, 쓰레기 버리기, 임도에 가서 풀 깎는 일 등 다양하다”고 했다.
정지성씨는 지난해 6월 팔 수술을 했다. 수개월 동안 예초기 작업을 했던 후유증 때문이었다.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나니 5월부터 예초기 작업을 해 풀을 깎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나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어차피 쉴 거면 산에 가서 쉬어”라는 식이었다. 임도에서 풀을 깎다가 답답한 생각이 들어 항의했다. “임도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거냐”고 하니 “인화 물질을 제거하라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기가 있는 풀은 그냥 둬야 불이 안 납니다. 풀을 깎아서 죽은 풀을 쌓아두고 인화 물질을 만들러 다니라는 거냐고 항의했습니다. 항의하니 저한테는 안 시키고 다른 사람들은 시키더라고요.”
30대 특수진화대원들의 이직률은 높은 편이다. 신 지회장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는 친구들인데 입사해보면 옷도 안 주고 풀 깎기나 청소를 시키니 자부심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우종 산림청 소속 산불특수진화대원이 2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최근의 산불 현장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4.02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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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부족하다. 산림청 산불관리 통합규정을 보면, 진화대원의 안전 장비는 방화용 장갑, 안전모, 안전화, 손전등, 방화복, 방연마스크, 방염텐트, 개인 구급 약품 등이다. 여기에 등짐펌프와 잔불 정리용 갈퀴가 지급된다. 그러나 실제로 예방진화대원들에게 편성되는 장비 예산은 1인당 4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필수 안전 장비인 방염텐트 한 개만 해도 4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방화복과 펌프, 갈퀴 정도만 쓴다. 특수진화대원은 사정이 좀 낫지만 김우종씨는 입사 이후 새 헬멧을 받지 못했다. 지급받은 헬멧 제조 일자는 2019년이었는데, 확인해보니 내구 연한이 5년이라 기한을 지난 장비였다. 산림청 내부에 건의했지만 “지침 문제로 빨리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 동료는 산림교육원에서 앞으로 산불 진화 시스템에 드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교육을 듣고 드론(초경량 비행장치 면허) 자격증을 사비로 땄다. 같은 팀 10명 중 4명이 200만원씩 들였다. 그러나 드론은 보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다양한 장비가 있다고 보여주지만 현장엔 지급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의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지급받은 고글은 대원들의 요청으로 지급된 제품이지만 렌즈가 코팅된 탓에 야간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편해서 벗고 진화작업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긁히기도 한다”고 대원은 전했다. 2023.07.06 강릉|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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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부실하다. 산불방지기술협회 교육은 수년째 같은 교재로 진행된다. 신 지회장은 “산림청은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 의지가 없고 교관도 없다”고 했다. 특수진화대원들이 산림교육원에 의뢰해서 함께 교과 과정을 만들고 필요한 강사를 배출하겠다는 얘기를 꺼내 봤지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아니다. 예방진화대원 교육도 비슷하다. 방씨는 “협회에서 강사진이 오지만 이틀 일정을 하루에 끝내는 경우도 많고 교육 내용도 형식적”이라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 산불 방지 및 진화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진화대원들은 현장에서 타 기관과 공조는 잘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신 지회장은 “산에 올라가면 지자체, 산림청, 소방청 각각 불을 끈다”며 “통합으로 지휘본부가 설치됐다고 하는데 체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타 기관과 협조가 안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신분’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씨는 “소방·지자체 공무원들이 공무직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진화대원들은 독자적인 출동 권한이 없어 출동도 늦다. 산불이 나서 119로 신고가 들어오면 산림청에서 먼저 확인하고 다음으로 지자체에서 확인한다. 산불 감시원들이 상황을 체크한 후 국유림관리소로 특수진화대를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와야 출동할 수 있다. 여러 번을 거치기에 빠를 수 없다. 정씨는 “산불은 장기전이라 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지회장은 “소방청장, 산림청장, 경찰청장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서 정책 협의를 하고 서로 공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 이후 이들이 일하는 환경은 달라질 수 있을까. 방씨는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다”며 “대한민국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 그때만 반짝하고 끝난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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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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