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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위대한 聖人의 소탈했던 삶 …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일대기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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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사랑

‘예수와 가장 닮은 인물’ 성 프란체스코

평생 가난한 이 돌본 청빈함의 대명사

추모 성당에 그의 삶 기리는 벽화 가득

르네상스의 아버지이자 혁명가 조토

연극무대 같은 구성·파격 구도로 표현

시대와 장소 초월한 깊은 울림의 미학

인류 역사에는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감동을 전하고, 수많은 이들의 길을 밝힌다. 그중 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숭고한 사랑을 전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머나먼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반니 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1181/82~1226), 다른 이름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다.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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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가장 닮은 사람

로마와 피렌체 사이에는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 아시시가 있다. 인구가 3만명도 채 되지 않는 곳이지만, 매년 수많은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태어나고 일생을 보낸 곳이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 무대이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에 그의 삶이 녹아있는 이곳은 지상 천국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어린 시절 세속적 삶을 즐기며 기독교 교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러나 깊은 깨달음을 얻은 후,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신에게 헌신할 것을 선언했다. 일생을 가난하게 살기를 선택한 그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청빈함과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프란체스코에게 신앙은 사변적 개념이나 이론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예수가 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몰입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완전히 녹여냈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기독교 역사상 예수를 가장 닮은 성인으로 프란체스코를 꼽았다.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며 많은 동물과 교감했다고 전해지는 그는 종교를 넘어 자연 보호와 생명 존중의 선구자로도 불린다. 현 교황 역시 그의 정신을 따르기 위해 프란체스코라는 즉위명을 택했으며, 세계 곳곳에서 그의 이름을 딴 도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토, ‘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1297∼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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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조토가 기록한 프란체스코의 삶

프란체스코는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시성(諡聖)되었다. 그는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던 죄수들의 처형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성인으로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대규모 성당이 자리 잡게 되었다.

죽는 순간조차 가난한 자로 떠나기를 바랐던 그의 소망에 부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웅장한 규모의 성당에는 그의 삶을 기리는 벽화로 가득하다. 특히 상부는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자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토 디 본도네(1266/7∼1337)가 장식했다. 조토는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이자 역사학자였던 조르주 바사리(1511∼1574)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 보였다고 칭송한 혁명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가 활동했던 15세기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사실적 표현과 파격적 구도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있었다.

동시대 관객에게는 여전히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전 시대의 그림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중세 미술은 종교적 의미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평면적이고 고도로 양식화되었다. 배경은 주로 금색으로 뒤덮여 현상계와 동떨어진 것처럼 표현되었다. 신비롭고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인물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조토는 벽을 28개의 구획으로 나누고, 프란체스코의 일대기를 영화의 스틸컷처럼 그려냈다. 인물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손끝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에도 놀라움과 고뇌, 슬픔 등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인간적 감정 표현의 시초인 것이다. 명암을 활용해 입체감과 질감을 더했고, 배경에는 성당과 언덕 등을 배치해 공간감이 느껴지게 했다. 연극 무대 같은 구성과 다중 시점을 담은 파격적 구도 등, 기존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그의 실험 정신이 녹아있다.

조토, ‘가난한 이에게 옷을 벗어주는 성 프란체스코’.(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벽화의 일부. 1297∼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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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 성인(聖人)

조토의 사실주의적 예술은 인간과 자연 중심의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 관점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중 주목할 점은 그가 성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일대기가 시작되는 두 번째 그림에서, 젊은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자에게 옷을 건네고 있다. 아직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택하기 전이지만, 붉게 물든 볼과 온화하게 피어오르는 미소에서 자비로운 성향이 드러난다. 배경에는 아시시의 랜드마크 성 피에트로 문을 그려 넣어, 프란체스코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 쉬었음을 상기한다.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장면이다. 낡은 옷을 입은 맨발의 성인이 자신의 앞에 모여든 작은 새들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몸을 숙인 채 한마디 한마디 정성스럽게 읊고 있는 모습에서 인자한 성품이 느껴진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수도사는 입을 벌린 채 손을 들어 올리며 경외심을 표한다. 한 장면에 두 인물의 서로 다른 감정들이 담겨있다. 후광으로 성인의 위엄을 나타내긴 했지만, 소탈한 모습의 프란체스코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을 떠올린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곳

조토의 붓끝을 따라 프란체스코 성인의 숨결을 느낀 뒤, 그가 잠들어 있는 지하 공간으로 향한다. 시공간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 성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진동한다. 그의 곁에 잠시나마 머물다 가기 위해 머나먼 곳에서 온 신자들이 무덤을 감싸고 있는 암석을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발자국이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쌓여 가는 곳.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프란체스코의 사랑이 세월을 초월하여 이어지고 있다. 가장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어떤 곳보다 울림이 있는 이유이다.

신리사·전시기획자, 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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