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로 미룬 ‘美 해방의 날’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갔다
하지만 모두에게 정글이라면
당신은 그 시대 살 자신 있나
3월 3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로즈 먼데이 카니발 퍼레이드에 등장한 트럼프-푸틴 협정을 모티브로 만든 카니발 조형물. /A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동네 마트에 가니 만우절 기획 상품을 팔고 있다. 과자 ‘뻥이요’ 두 개를 사면 세 개를 추가로 준다는 것. 1982년 출시된 이 장수 과자는 11월 11일의 ‘빼빼로’처럼 만우절 마케팅의 상징이다. 개당 가격을 살짝 올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득인 귀여운 애교. 만우절(萬愚節)의 한자 의미처럼, 약간의 트릭으로 많이들 즐거워하는 이벤트다.
만우절 다음 날인 2일을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 해방의 날’로 선언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긴장하는 상호 관세 부과의 날. 원래 4월 1일부터 시작하려 했지만, 만우절 농담으로 여길까 봐 다음 날로 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외교적 혹은 우회적 수사도 없다. 상대에게 붙인 형용사를 보라. ‘더티(dirty·더러운) 15’.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 흑자를 기록 중인 15국이 과녁이다. 그는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착취당했다. 마침내 돈과 존경을 되찾는 날이 될 것이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 3차 세계대전도 감수하겠다는 것일까. 군사적 수단을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100% 미국 땅으로 만들겠다, 팔레스타인 난민을 쫓아내서라도 가자에 리조트를 건설하겠다, 우크라이나의 굴욕과 모욕이 내 알 바인가... 이런 트럼프에게 세계무역기구, 국제형사재판소, 파리기후협정은 모두 위선일 뿐이다. 착한 가면 벗어던진 미국을 보며 절감한다. 가장 힘센 나라가 위선적일 때, 그나마 다른 나라가 편안했다는 것을.
문제는 위선의 종언(終焉)이 국가 차원에서 끝나지 않을 경우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제 효율성이 곧 윤리다. 일론 머스크를 보라. 그에겐 도덕적인 것이 옳은 게 아니라, 효율적인 게 옳은 것이다. 위선은 약해 빠진 인간들이나 읊조리는 것. 차라리 위악(僞惡)이 선이다. 일론 머스크와는 앙숙으로 소문난 오픈AI의 샘 알트먼도 그 세계관은 마찬가지다. AI 윤리는 서랍 속에 넣고, 지금 중요한 건 성능이고 효율이다. 중국 딥시크가 턱밑까지 쫓아왔는데 윤리 따위를 따질 때인가. 하지만 말이다. 속도와 경쟁의 궤도에서 잠깐 내려와 숨 한 번 깊게 들이마셔보라. 개인까지 위선을 벗어던졌을 때, 그 약육강식의 정글을 당신은 버틸 자신이 있나.
위선하면 떠오르는 망언이 있다. 10년 전 국민을 ‘개돼지’로 불렀던 한 고위 공무원 사례다. 컵라면도 제대로 못 먹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고치다가 죽은 19세 청년에 대해, 그는 “그게 어떻게 내 자식 일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물론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공감력 부족으로 태어났다면 위선이라도 갖출 일이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당신을 인간으로 대접하게 해 줄 최소한의 보호막이니까.
[어수웅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