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유별의 시가 걸린 풍경’을 낸 홍광석 작가. 도화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현대사의 비극을 앞세웠습니다.”
홍광석(75) 작가는 ‘유별의 시가 걸린 풍경’(도화 냄)이라는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일제시대에 유랑민이 되었다가 히로시마 혹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봤던 사람의 이야기는 8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그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비극임을 알리고자 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번에 낸 소설집에 실린 작품 9편 중 4편에 1945년 8월6일 원폭에 노출됐던 피해자들의 비극과 2∼3살 자녀들의 ‘대물림 고통’을 담았다.
‘히로시마의 버섯구름’은 화자(나)의 친구 가족들이 겪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파헤치고 있다. 친구는 두 아들의 선천성 장애가 처가 장인 부부가 히로시마 변두리에 살았던 삶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소설에서 친구의 아내는 집안과 가족의 원폭 피해를 호소하고 다니다가 냉담한 반응에 지쳐 옥상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한다. “나라를 잃고 유랑의 삶을 살았던 백성들이 원폭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피할 수 없었던 거야.” 홍 작가는 친구의 넋두리에 “원폭 피해가 단순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내 피에 흐르는 검은 비’는 기형아를 낳은 여성의 아픈 상처의 근원을 추적한다. 시부모와 남편의 차가운 시선에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연락하지 않고 살았던 외할머니를 만나며 ‘가족사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 살았던 큰이모는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인 회색 구름이 버섯처럼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그 후 큰이모도 아들 둘을 낳았지만 모두 어려서 죽었다. 이상하게도 원폭 피해의 비극은 딸이 아니라 ‘아들’에게만 나타났다. ‘피폭자의 검은 상처는 하필 여성에게만 검은 선으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그해 유월 그믐날’은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서 희생된 징용공 이야기이다. 1945년 8월6일 아침 미쓰시비 조선소에서 트럭에 타고 피신했던 12명의 한국인 징용공들은 원폭 피해 현장에 노출됐다. “머리에 화상을 입어 머리카락이 타버린 사람, 얼굴 반쪽만 화상을 입어 녹아내린 사람” 등을 목격한 그들 대부분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바우가 넘은 고개’라는 작품도 마을에서 바우라고 불리는 괴팍한 인물이 혈액암으로 죽은 것이 아버지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유별(留別)은 떠나는 사람이 남은 이에게 보여주는 이별의 정한입니다.”
‘유별의 시가 걸린 풍경’은 “암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두고 떠나는 마음을 담은 이별의 언어 풍경”을 그리고 있다. 1998년 고교 해직 10년 만에 복직했던 그가 아픈 아내를 위해 농촌의 작은 터를 잡고 가꾸기 시작한 정원인 ‘숙지원’이다. 작품 속 정원과 풍경과 겹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아온 날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도 크지만 이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홍 작가의 ‘살아온 날’은 정의와 저항이 ‘중심 무늬’였다.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 때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대변인을 맡아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전교조 전남지부장을 지내며 민주화에 헌신했다. 그 와중에도 광주일보와 광주매일 신춘문예에 당선해 “늦깎이로 글 밭 가늘 길에 들어선 지 30년”이 됐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딘 감성의 돌밭, 요령 없는 쟁기질 등 얼치기 농부의 모습 그대로다”며 겸손해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