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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쪽방 주민·노숙인에겐 ‘씻을 권리’도 없나요?… 쪽방 70% 샤워시설도 없어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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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도구와 생필품 제공하는 ‘이동목욕차’

따뜻한 물 안 나오고 샤워장 없는 쪽방촌에 절실

주차공간과 물·전기 공급 협조 문제로 서비스 확대는 어려워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는 아침부터 트럭 한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동목욕차’다. 1인당 30분씩 트럭 안에 마련된 목욕 시설을 혼자서 이용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샤워차’가 아닌 ‘목욕차’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에서 운영 중인 찾아가는 이동목욕차 내부 모습이다. 넓은 목욕 공간을 1명당 30분씩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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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6일 ‘찾아가는 이동목욕 서비스’ 현장을 찾아가 운영을 맡고 있는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와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용자들은 씻고 싶어도 씻을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입 모아 말했다. 센터 측은 영등포 쪽방촌 인근뿐만 아니라 거리 노숙인 밀집지역 등 이동목욕차가 필요한 곳에도 나가고 싶지만 장소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찾아가는 이동목욕 서비스는 쪽방촌 일대에 샤워기 등 시설이 설치된 특수차량이 방문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거리 노숙인과 주거취약계층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목욕하러 온 이들을 상담해 서회복지서비스를 연계한다는 목적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하루 평균 이용객은 10명가량이다.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철엔 이용객이 늘어난다. 동파 우려로 12월과 1월을 제외하고 상시 운영된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에서 운영 중인 이동목욕차 내부 모습이다. 칫솔과 치약, 면도기 등 세면용품뿐만 아니라, 양말과 같은 속옷도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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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에 필요한 샴푸와 샤워 타월, 면도기와 속옷 등 세면도구와 생필품도 무료로 제공된다. 몸만 오면 되는 것이다.

구로구 쪽방촌에 사는 김준기(72)씨는 일부러 전철을 타고 온다고 했다. 김씨는 “세면도구와 속옷을 주는 등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며 “살고 있는 집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50∼60년 된 집이라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이광휴(85)씨는 “일주일에 두어번 이용하는데 30분 정도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씻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낡고 협소한 쪽방의 경우 여러 세대가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거나 따뜻한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이동목욕차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2022년 서울시 쪽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쪽방 건물 중 27.6%만이 샤워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10곳 중 7곳가량에 샤워시설이 없는 것이다. 또 보일러를 미가동하는 곳이 약 45%로 추정됐는데, 샤워장 문제는 주민들이 꼽은 주거 중 가장 불편한 점 2위였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에 찾아가는 이동목욕차가 운영 중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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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주민과 거리 노숙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주차공간이나 물과 전기 이용 협조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서비스 확대에는 어려움이 있다. 박강수 보현종합지원센터 팀장은 “거리 노숙인이 많은 장소 한두군데 더 나가고 싶지만 노숙인을 꺼리는 인식 탓에 시민 민원이 제기될 수도 있어 협조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거리 노숙인도 이러한 서비스만 있다면 잘 이용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숙인은 잘 씻지 않고 불결하다는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들도 서비스 정보를 알고 편의성만 있으면 잘 이용한다”며 “목욕차 이용자 약 10% 정도가 쉼터와 같은 시설이나 병원으로 연결되는 만큼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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