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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모두에 평등하지 않은 ‘산불 재난’, 취약계층 보호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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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산불의 주불이 28일 잡히고, 완전 진화까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이 산불에서는 사망자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등 안전 취약계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장애인은 신속한 대피가 어렵고 정보 접근성도 떨어져 피해가 컸다. 현행법은 이들을 안전 취약계층으로 규정해 별도의 지원·대응 방안을 마련토록 했지만, 영남 산불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각지대에 있었던 셈이다. ‘재난은 모두에게 결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명제가 또 한 번 되풀이된 재난이 됐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분석 결과 지난 21~26일 경북 안동·청송·영양·영덕 등에서 산불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18명 중 14명이 모두 60대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령 사망자 다수는 지병이나 장애가 있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고, 소아마비 환자 1명·청각장애 1명·거동 불가능 환자 4명·치매 환자 1명이 포함됐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71세 여성은 산불에 고립돼 질식해 사망했고, 실버타운에서 요양 치료 받던 80대 남녀 3명은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산불이 확산하면서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국내 화재 피해자 1만888명 중에서 장애인·노인·어린이는 3958명(36.4%)에 달했다.

화재나 천재지변 시 발령되는 재난 문자가 고령층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귀가 어두워 문자 메시지가 왔는지 제때 모르거나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례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이번에도 문자 메시지를 열어볼 수 없는 노인들은 친구·가족·이웃이 대피하라고 알려줘 대피소에 왔다. 구형 3G폰을 사용하는 노인들은 소방당국에서 보내는 재난정보를 아예 수신조차 할 수 없다.

대형산불이 남긴 교훈이 크다.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안전 취약계층의 사전 보호 조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지자체 별로 그 대상자를 파악해 대피 계획을 미리 세우고, 고령자·장애인 등의 전담 지원 인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집과 생활기반시설을 잃고 살 길 막막한 경제적 약자들도 많다. 재난 발생 후 그 어떤 사람도 행정 절차나 정보를 몰라 정부 지원 혜택에서도 소외되지도 않도록 해야 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피해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재난의 충격과 여파는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떤 재난에서도 고령자·장애인·여성·어린이가 안전한 세상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다. 그런 세상을 구축할 때까지, 법·제도상 허점을 메우고 재난 안전·복구·지원 체계와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

28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산불 피해지역에서 불에 탄 주택과 차가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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