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02 (수)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홀몸노인에게 도시락 나르다 식당 차린 이유는···“건강하고 좋은 어르신 늘 수 있게 노력해요.”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김성희 라떼는집밥 협동조합 사무국장

반찬 나눔 봉사하다 ‘두꿈인생학교’ 시작

시니어 일자리 위해 ‘라떼는집밥’ 오픈

“취약계층·시니어 재사회화 위해 힘모아야 ”

홀몸노인에게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와 단절되면 우울증이나 치매의 위험이 증가한다. 응급 상황이 일어나도 빠른 대응이 어렵다. 영양 불균형도 문제다. 홀몸노인은 식사를 거르거나 부실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영양실조로 이어지고는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성희(56) 라떼는집밥 사무국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부터 지인들과 함께 그가 거주하는 서울 강북구에서 반찬 나눔 봉사를 해왔다. 주민센터가 자살이나 고독사 위험군에 해당하는 취약계층 어르신을 선정해 공유하면 활동가들이 매달 10~15명의 어르신에게 반찬을 전달하며 안부를 살폈다.

“어르신께 반찬을 드리러 댁에 갔는데 안 보이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이불을 덮고 누워 계셨는데, 너무 야위어서 이불 속에 계신 줄조차 몰랐던 거예요. 생수병 뚜껑조차 열 힘이 없으셔서 대신 열어 드리고 왔죠.”

김 사무국장은 반찬을 나누면서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목격했다. 현재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비교적 전문성이 있거나 경제적 여력이 있는 편이지만 80대 이상은 경제적으로 취약하거나 저장 강박증, 치매, 사회적 단절 속에서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가 봉사활동을 이어오던 강북구의 2006~2014년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26.7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

“한 치매 어르신 댁을 방문했더니 집 안 곳곳에 오물이 있었어요. 악취로 이웃 주민들의 민원도 많았고요. 요양보호사가 주 5일, 하루 3시간씩 방문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치매 어르신이 혼자 지내시는 거죠. 집 안에 물건이 너무 많아 대문조차 잠그지 못하고, 음식쓰레기조차 버리지 않을 정도로 심한 저장 강박증이 있는 어르신도 계셨어요.”

10년 넘게 도시락 봉사를 해오던 김 사무국장과 활동가들은 홀몸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도시락을 넘어 삶의 의지를 불어넣고 이들을 재사회화하는 ‘사회적 연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니어들의 사회적 연결을 위한 ‘두꿈인생학교’ 설립

2016년, 김 사무국장과 활동가들은 어르신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역 교회의 공간을 빌려 공예 교실을 열거나 함께 식사하는 모임을 주최했다.

“처음에는 이론으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이후에는 공예를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어요. 설득해서 카페에서 만나기도 하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함께 가기도 했죠.”

이 활동을 알게 된 강북구 미아동주민센터가 강당을 무료로 대여해줬다. 2017년, 이들의 활동에도 ‘두 번째 꿈을 꾼다’는 의미로 ‘두꿈인생학교’라는 정식 명칭이 붙었다. 어르신들은 점차 서로 안부를 묻고 관계도 맺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이들에게도 난관이었다. 활동 중단 위기 앞에서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함께하는어르신들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를 더할수록 빠른 고령화의 단면도 눈에 들어왔다. 김 사무국장이 반찬 나눔 활동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에는 남성 홀몸노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여성 홀몸노인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주민센터가 선정하는 취약계층의 연령대 역시 80대에서 50대로 내려가는 등 취약계층이 점점 확대돼 가는 것도 활동가들의 눈에 보였다. 50대는 80대 어르신과는 욕구가 달라서 활동가들이 활동 범위를 넓힐 필요도 있었다.

“노년의 삶을 상상해 봤어요. ‘미래에 살고 싶은 내 모습은 어떤 걸까’ 생각했을 때 나이가 많아도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했습니다. 시니어들이 취업해도 식당에서 설거지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너는 나이가 많으니까 설거지만 해라’가 아니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활동가들은 고민 끝에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창업 지원을 받고, 활동가 6명이 협동조합을 꾸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라떼는집밥’, 시니어 일자리이자 커뮤니티 공간

2020년, 서울 강북구 번동에 협동조합이자 식당인 ‘라떼는집밥’이 문을 열었다. ‘나 때에 먹던 집밥’이라는 뜻을 담은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한때 자살 고위험군이었거나 홀몸노인이었던 5명의 시니어가 조합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판다. 김치찌개(5000원), 제육덮밥(6500원), 곤드레덮밥(8000원) 등 가정식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오후 3시까지는 시니어 일자리 공간이자 취약계층을 위한 식사 공간으로 운영한다. 식당이 문을 닫은 저녁에는 한글 교실이나 요리를 못하는 중장년 남성에게 불을 쓰지 않고 요리하는 법을 가르치는 등 시니어를 위해 시시각각 바뀌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다양하고 지속성을 갖춘 일자리도 제공해 드리면서도 노인을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어요.”

취약계층 도시락 전달을 전문으로 하는 라떼는집밥 2호점 ‘푸드팩토리’도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에만 1만 개가 넘는 도시락을 배달하며 25명의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중 최고령 근로자는 라떼는집밥 1호점에서 일하는 91세의 김형수 씨다. 2020년 라떼의집밥이 생길 때부터 주방 보조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씨는 “20년 넘게 혼자 살다가 여기서 일하며 삶이 많이 달라졌다”며 “우리 식당에는 학생이 많이 오는데, 젊은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꼭 손주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고 덩달아 신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번 월급을 모아 재작년 프랑스 파리로 여행도 다녀왔다. 다른 시니어 직원들도 월급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해 더 나은 환경의 주거지로 이사하거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단절됐던 가족과 다시 연락하는 등 삶을 회복했다.

이런 시니어들의 변화가 조합원들이 20년 넘게 이 활동을 해올 수 있는 원동력인 셈.

“시니어 직원들이 여기서 큰돈을 벌지는 않지만 마음이 윤택해지는 것 같아요. 그걸 보면 보람이 커요. 저도 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했어요. 다른 조합원은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지요. 저희도 이 일을 하면서 시니어들과 함께 두 번째 꿈을 꾸고 있어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며 노인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취약계층과 재사회화가 필요한 노인이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어른’이 아닌 ‘좋은 어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단다.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더 발굴하고, 협동조합이 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문제를 같이 해결할 좋은 이들을 더 모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어르신 한 분이 건강하게 재사회화되게끔 도와드리는 일에도 여러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기관, 사람들이 더 모이기를 바라요.”

정예지 기자 yeji@rni.kr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