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인 애순(아이유)과 광식(박보검)이 제주도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첫 키스를 하고있다. 제공=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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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 제주도. 나무하던 아홉 살 소녀가 여름날 잠자리에 홀려 산 길을 저 홀로 간다. 광례 딸 애순이다. 그 끝에는 못돼먹은 것들이 생때같은 딸을 나꿔채 데려가려 시커먼 속을 감춘 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광례가 딸 자취를 쫓아 내달린다. 고무신을 꿰어 신은 맨발이 피투성이가 되는 걸 어미는 모른다. 산 하나를 넘고 간신히, 딸을 다시 품에 안고서야 발에 묻은 흙을 털었다.
#2. 1991년 서울, 골목길이 얼어붙은 한겨울 어느 달동네. 이번엔 뒤숭숭한 꿈자리에 조바심 내다 굳이 남쪽 끝 섬마을서 날아온 애순이가, 그 딸 목숨을 살렸다. 단칸 자취방 연탄가스가 삼키려 했던 가난한 대학생 금명이다. 병원으로 내달리느라 금명이 작은 구두에 맨발을 채 다 욱여 넣지도 못해 생채기가 난 줄도 모른 것은 그 어미도 마찬가지였다.
#3. 2024년 겨울~2025년 봄 서울.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어떤 이들의 삶 한 자락도 그와 같았으니, 누구는 한겨울 아닌 밤 중 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슬리퍼 바람으로 여의도로 달려갔다. 누구는 대통령 영(令)으로 국회에 들이닥친 계엄군의 총과 장갑차를 맨손으로 막아냈다. 딸 금명이 유학갈 돈 내주느라 거뒀던 시장 좌판에 다시 나앉았던 애순이의 심정이,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며 일상과 생업의 시간을 쪼개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은 이들과 어이 다르다 할 것인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뜻이야말로 한가지가 아니었다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국내 시청자들에겐 위안과 치유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작품은 광례(염혜란 분)와 애순(아이유·문소리), 금명(아이유)까지 제주도 출신 모녀 3대에 걸친 ‘여성 서사’다. 동시에 극중 금명이와 비슷한 또래인 40~50대 중·장년층의 ‘자전적 서사’이자 한국전쟁 즈음에 태어난 부모세대에 바치는 ‘헌사’다. ‘폭싹 속았수다’의 어떤 대목을 뚝 잘라 보더라도 그것이 과거이든 현재이든 간에 우리네 삶 어느 한 토막과 겹쳐 웃고 울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광례와 어린 시절의 애순이. 제공=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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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광례와 애순이, 금명이의 삶이란 딸로 태어난 순간 엄마 뱃속에서 받던 축복을 세상이 모두 거두어가면서 시작되고 종국에는 ‘아내’와 ‘며느리’, ‘어머니’의 자리만큼만 희망이 허락되는 삶이었을 것이다. 살자고 할수록 희망을 자꾸 덜어낼 도리 밖에 없는 삶이다. 다만 그들은 그 덜어낸 만큼을 다음 세대 세상에 얹었다. 세상이 속인 그 자리에 새 희망의 싹을 심었다.
밭과 물 속, 부엌 밖 세상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잠녀’(해녀) 광례는 기어이 딸 애순이의 시를 읽었고 “졸아붙지 마라, 푸지게 살아라”라고 했다. 애순이는 딸 금명이에 강요된 잠녀의 밥상을 엎었으며 감히 자전거를 타게 했다. 금명이가 진학, 유학, 취업, 결혼까지 모든 순간마다 ‘금명이다운’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광례와 애순이가 수고했던 덕분이다. 아이유의 말을 빌자면, 달디단 귤인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떫기만한 귤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그들을 속인 바’였고 그걸로 또 애써 귤청과 귤차로 만들어 낸 건 ‘그들이 수고한 바’일 것이다. 그렇게 달고 맛난 것만 자식 입에 넣어주며 그들은 딸들의 세상이 떫은 것만 내어주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꿈꿨을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중장년의 애순 역할을 맡은 문소리. 제공=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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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은 여성의 선망이 반영된,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식은 일방적으로 애순이를 지키는 ‘수호천사’거나 구원자로서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전형적인 인물은 아니다. 이는 임 작가의 전작 ‘동백꽃이 필 무렵’의 용식도 마찬가지였다. 두 작품에서 모두 실제로 문제와 갈등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거나 여자들의 무리였다. ‘동백꽃이 필 무렵’에서 연쇄살인범을 뒤쫓아 시장판에서 아수라장의 격투 끝에 붙잡은 것은 경찰인 용식이 아니라 주인공인 동백이(공효진)와 이웃의 여인네들이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어린 애순을 납치하려던 범인들을 시장판에서 때려잡는 것은 광례와 동료 잠녀들이었다. 여성들간의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은 임 작가의 ‘시그니처’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광식 또한 그만의 ‘수고’를 다한다. 광식은 집안 어른과 남자들만의 겸상을 그만두고 여자와 아이들의 밥상으로 돌아앉는 ‘반란’을 감행한다. 소녀 금명이를 잠녀로 만들려 시할머니가 차린 젯상을 먼저 엎었던 것은 애순이였으나 아내 손을 잡아 끌고 집 문 밖을 나선 것은 광식이었다. 남편에 갑질하는 선주(船主·최대훈)에게 윽박지른 것은 애순이었으나, “여자가 어디 나대냐”는 그 흔했던 말 한마디 안하고 주저없이 아내를 따라 박차고 나선 것도 광식이었다. 손녀를 위해 거액을 내놓고 배를 사 준 것은 그 또한 애끓는 어미였던 애순의 친할머니(나문희)였으나, 딸 금명을 여자는 금기라는 배에 선뜻 올린 이도 광식이었다. ‘파혼’을 먼저 선언한 것은 딸 금명이었지만, “너는 뭐든 잘 할 것”이라며 지지해 준 것은 아버지 광식이었다.
우리 현대사는 주로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로 기술되며, 그것은 대개 민주 투사나 산업 역군을 주인공으로 한 남성들의 영웅 서사였다. 광식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이 땅 보통의 남자이자 아버지였다. ‘폭싹 속았수다’의 카메라는 독재와 저개발의 역사적 사건들을 대개 TV 속 배경화면으로만 놔두지만, 보통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벌이는 힘겨운 싸움을 그린다. 밥상을 돌아 앉아 아내와 마주하고, 딸의 독립적인 삶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평생을 뱃사람으로 성실하게 밥벌이를 해온 광식의 삶이 그랬다. 그렇게 ‘폭싹 속았수다’는 여성 서사이자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모든 보통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서사가 된다.
인구학적으로도,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는 흥행의 잠재적 폭발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가 한편으로는 ‘응답하라 1988’ 같은 복고적 외양을 가지면서도, 남성 중심 스토리를 탈피한 여성 주체, 여성 연대의 서사로서 성격이 짙은 이유이기도 하다. 근래의 작품으로는 조선 시대 노비 출신 여성을 정의 구현의 영웅으로 내세운 ‘옥씨부인전’이나,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는 근현대기 여성국극단을 소재로 했던 ‘정년이’와 함께 ‘폭싹 속았수다’는 최근 여성 서사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콘텐츠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옥씨부인전’은 사대부가 여인 옥태영으로 신분을 위장한 노비 출신 ‘구덕이’(임지연)가 조선 시대 변호사인 외지부가 돼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고 부패한 관료를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도 남자 주인공인 송서인·성윤겸(추영우 1인 2역)은 철저하게 여자 주인공의 ‘조력자’에 머문다. 김태리가 타이틀롤을 맡은 ‘정년이’는 여성국극단 최고 배우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기서 여성국극단이란 무대에서만큼은 여성이, 여배우만이 왕이 되고 장군이 되고 장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여성이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어떤 꿈도 꿀 수 있는 세상이자 오로지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방영된 지는 꽤 됐지만, 김태리의 또 다른 주연작인 ‘미스터 선샤인’도 여성을 연애의 능동적 주체이자 항일 무장 투쟁의 주역으로서 그려내 최근 대중문화 속 여성 서사의 한 경향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들 여성 서사가 누구라도 평등하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 보통 사람들의 모든 ‘수고’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세상을 염원할 때 성차(性差)를 넘어 공동체 모두의 서사가 된다. ‘폭싹 속았수다’가 21세기의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에서 모든 평범한 이들이 써내려가는 서사의 한 자락 어디쯤에서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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