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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정동칼럼]탱자가 된 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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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가 지난 4일 전격적으로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 11시간 만에 승인을 받았다. 기업회생절차는 더 이상 금융시장에서 자본 조달이 불가능해질 때 기업이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돌입은 이례적이다. 지난달 28일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이 하락하자 홈플러스는 신용등급이 자본 조달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하락하기 이전에 선제 대응한다면서 절차에 돌입했다.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무가 동결되고, 이후 법원의 중재하에 채무조정 협의를 거치게 된다. 따라서 회생절차에 돌입한 기업은 사실상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고, 사업 정상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정상적인 상거래도 막히기 시작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홈플러스 역시 기업회생절차 돌입 이후에 납품 중단, 카드사들의 홈플러스 상품권 결제 중단, 홈플러스가 발행한 어음의 부도 처리 등이 이어졌다. 회생법원이 납품대금 변제를 허가하고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발생한 정산대금 집행을 승인한 이후에 납품이 재개됐고 입점사들도 정산금을 순차적으로 지급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의 불안감과 홈플러스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모펀드 MBK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됐고, 급기야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상거래채권 지급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 청문회 직전에 김병주 MBK 회장은 개인투자자 피해 등을 언급하면서 사재 출연을 밝히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기업 정상화를 위한 회생절차라는 홈플러스의 주장에 의문표가 붙는 이유 중 하나는 홈플러스를 사모펀드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사모펀드인 MBK는 7조2000억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이 중 4조3000억원은 금융 차입으로 충당했다. 인수 당시 142개였던 홈플러스 점포 수는 현재 126개로 줄었는데, 알짜배기 점포 매각을 통해 MBK가 4조원 정도 인수자금을 회수했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이후에 추진했던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할매각은 실패했다. 통상적으로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5년 정도 지나 재매각하는 출구전략을 추구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MBK의 홈플러스 인수는 투자 실패 사례라고 할 만하다.

더욱이 코로나19 이후 쿠팡 등 비대면 배송업이 급성장하면서 홈플러스는 2021년부터 영업손실을 기록 중인데,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2602억원, 199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재 홈플러스의 금융부채는 2조원 수준이나 부동산 자산도 4조7000억원 정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여전히 대형마트 영업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MBK가 기업회생절차를 출구전략으로 사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에 126개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체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도 309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또한 홈플러스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는 1800여개, 입점 업체는 8000곳이고, 홈플러스가 직고용한 임직원 수는 1만9000명 이상이다. 만약 홈플러스가 청산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그리고 소비자에 미치는 피해가 매우 클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법원과 정부가 이런 파국적인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생절차와 정책을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사모펀드를 악마시하는 편견을 가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사모펀드 하면 ‘먹튀’를 연상하는 국민이 많다. 과거 자격이 없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을 통해 수조원의 이익을 챙긴 사건이나,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긴 엘리엇 등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엘리엇은 미국에서 행동주의 펀드로 평판이 좋은 사모펀드이다. 또한 일본의 기업 밸류업 과정에서 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이 일본 기업들의 수익과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같은 사모펀드라도 제도적 환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상장사가 절반이 넘고 경영 참호화가 매우 심각하고 향후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우리 현실에서,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기업 구조조정과 밸류업에 긍정적 역할을 하느냐 약탈적 기회주의자로 남느냐는 우리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달렸다.

경향신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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