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7 (목)

우주 가속팽창 ‘암흑에너지’가 약해지고 있다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 연구진이 만든 3차원 우주 지도. 수백만개의 은하와 퀘이사의 거리와 방향이 표시돼 있다. 부채꼴 모양의 관측자료로 우리은하가 중심에 있다. DESI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 표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70%의 암흑에너지와 25%의 암흑물질, 5%의 물질로 이뤄져 있다. 암흑물질은 은하들을 묶어주고,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팽창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암흑에너지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주를 더 빠른 속도로 팽창시키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실체는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알려진 건 1998년이었다. 당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두 천문학 연구팀은 우주에서 거리 측정 지표로 쓰이는 초신성의 빛을 관측하던 중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우주 팽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은 이 미지의 힘에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발견은 2011년 이들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줬다.



우주 팽창을 가속하는 그 암흑에너지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버클리 랩)가 중심이 된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은하, 퀘이사(블랙홀 주변의 발광체)를 포함해 110억년의 우주 역사를 아우르는 약 1500만개 천체에 대한 3년간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수십억년 전에 비해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약해졌다고 최근 미국물리학회 주최로 열린 세계물리학서밋과 온라인 사전출판 논문 공유집을 통해 동시에 발표했다. 연구 논문은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디’(Physical Review D)에 게재될 예정이다.



DESI는 빛을 수집하는 5000개의 작은 광섬유 로봇들로 구성된 다채널분광기를 장착한 망원경으로, 먼 은하에서 나온 빛의 스펙트럼을 관측해 암흑에너지를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미국 애리조나 키트피크천문대에 설치돼 있으며, 한국천문연구원을 포함해 11개국 900여명의 연구자가 이 장비를 이용한 우주 3차원 지도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암흑에너지분광장비가 있는 미국 애리조나 키트피크천문대 전경. Berkeley La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주 표준 이론 수정해야 할 수도





우주론 모형에 따르면 암흑에너지는 일정한 상수를 가진다. 현재 과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는 우주의 가속팽창 속도는 측정 방법에 따라 67~73km/s/Mpc 사이에 있다. 지구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326만광년(1메가파섹) 멀어질 때마다 팽창 속도가 초속 67~73km씩 더 빨라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고 있는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지난 45억년 동안 약 10% 약해졌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주의 팽창 가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뜻한다. 이론상 암흑에너지의 힘이 계속 약해지면 팽창 속도가 느려지다 결국 팽창을 멈추고, 결국엔 중력의 힘으로 수축해 우주 종말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인 ‘빅 크런치’(대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 책임자인 버클리랩의 마이클 레비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이번 연구는 단순한 단서 수준을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석이 맞다면 우주 팽창 속도가 상수가 아닌 변수라는 점에서, 현재의 우주 표준 모형은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암흑에너지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애덤 리스 존스홉킨스대 교수(천체물리학)는 “이 결과대로라면 우리가 약 25년 전 암흑에너지를 발견한 이래 그 본질에 대해 얻은 가장 강력한 단서로 보인다”고 말했다.



먼 은하계의 빛을 수집하는 암흑에너지분광장비의 5000개 로봇눈 중 일부. DESI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주 초기에 퍼진 물질이 남긴 잔물결 추적





DESI는 물질이 우주 전체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를 통해 암흑에너지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우주 초기에 우주로 뻗어나간 물질은 곳곳에 잔물결 흔적을 남긴다. 이를 ‘중입자 음향 진동’(BAO)이라고 한다. 이 잔물결의 크기는 우주가 확장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주가 확장함에 따라 확장 속도에 맞춰 잔물결의 크기도 커진다. 우주 팽창의 눈금자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로 다른 거리에서 이를 측정하면 우주 역사에서 걸쳐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추가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 초신성, 중력렌즈 관측 자료를 결합했다. 그 결과 우주 상수를 전제로 한 표준 우주론 모형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대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형이 관측자료를 더 잘 설명해 줬다.



앞서 연구진은 지난해 4월 첫 1년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암흑에너지가 상수가 아닌 변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엔 3년치 데이터를 통해 상수가 아니라 변수라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다.



암흑에너지를 추적하고 있는 빅터블랑코망원경이 있는 칠레 안데스산맥의 세로톨롤로미주천문대. 미 국립광학-적외선천문학연구소(NOIR Lab)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연 가능성 ‘5만분의 1’…새 발견 기준치엔 못미쳐





또다른 암흑에너지 연구팀 DES(Dark Energy Survey)도 최근 칠레 안데스산맥 세로톨롤로미주천문대의 빅터블랑코망원경을 이용한 초신성 관측을 토대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사전출판 논문 공유집 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형목 중력파우주연구단 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천문연을 통해 낸 논평에서 “현대 우주론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인 암흑에너지의 성질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문연 샤피엘루알만 박사(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교수)는 “우리는 현재 암흑에너지가 우주상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엄청난 발견의 시작을 보고 있다”며 “이번 발견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을 바꾸고, 이론 물리의 기반을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 결론이 우연일 가능성은 5만분의 1(4.2시그마)로 신뢰도가 꽤 높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기준치로 삼는 350만분의 1(5시그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암흑에너지분광장비로 작성한 우주 지도에는 320억광년의 공간에 걸쳐 있는 1500만개 은하가 포함돼 있다. DESI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주상수에서 벗어나…판도라 상자 열린 것”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는 앞으로 2년치 데이터를 통해 추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전체 5년 관측기간 중 현재 4년차 관측을 수행 중이며,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약 4000만개의 은하와 퀘이사를 관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023년 발사한 유럽의 유클리드우주망원경에 이어 내년 가동 예정인 칠레의 베라루빈천문대, 2027년 발사하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낸시그레이스로만 우주망원경 등 암흑에너지를 표적으로 삼는 다른 관측 장비 데이터와의 비교 검토도 필요하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조지 에프스타티우 교수(천체물리학)는 가디언에 “이번 분석은 아직 암흑에너지의 진화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문연 쿠샬 로드하 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박사과정)은 “앞으로 막대한 관측자료가 쏟아짐에 따라 우주론에 여러 흥미로운 발견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댈러스 텍사스대의 무스타파 이샤크-부샤키 교수(우주론)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앞으로 2년 안에 5시그마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론적 모델에 관한 한 판도라의 상자가 이제 막 열렸다”며 “우리는 더는 우주상수에 갇혀 있지 않게 됐다”고 덧붙였다.





*논문 정보



Data Release 1 of the 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https://doi.org/10.48550/arXiv.2503.14745



DESI DR2 Results I: Baryon Acoustic Oscillations from the Lyman Alpha Forest.



https://doi.org/10.48550/arXiv.2503.14739



DESI DR2 Results II: Measurements of Baryon Acoustic Oscillations and Cosmological Constraints.



https://doi.org/10.48550/arXiv.2503.14738



Dark Energy Survey: implications for cosmological expansion models from the final DES Baryon Acoustic Oscillation and Supernova data.



https://doi.org/10.48550/arXiv.2503.06712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