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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있는데, 이식 수술 강요받는 아기 환자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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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허가-급여평가-약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1호로 지난 8월 국내 허가된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FIC) 치료제 '빌베이'. 입센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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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만 1,300개 넘는 희소질환이 있다. 이 중 치료가 가능한 희소질환은 극소수라 어쩌다 들리는 신약 소식은 가뭄 속 단비처럼 매우 반갑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처음 시도한 '허가-급여-약가협상 병행 시범 사업'은 환자를 위한 치료 약제의 신속한 접근성 강화를 지원하는 혁신적 제도로 대단히 환영한다.

이 시범사업 1호 대상으로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 즉 피픽(PFIC)이란 유전성 희소질환과 그에 대한 유일한 신약 '오데빅시바트'가 동시에 선정됐다. 피픽은 국내에만 약 40명 극소수 소아들에게 심각한 간 질환을 유발한다. 태어나자마자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온몸에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다. 적절한 치료 없이는 급작스럽게 간경변,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돌도 지나지 않아 간 이식수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오데빅시바트가 실제로 환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외국에서는 진단만 되면 세부 아형, 임상적 조건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피픽 진단 환자가 워낙 극소수이고 어린아이들의 병변이 언제 급격히 악화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간 수치, 소양증(가려움증) 등 여러 조건을 동시에 만족했을 때만 건강보험을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환자는 전체 환자의 10%나 될까.

희소질환일수록 어떤 잣대로 치료가 돼야 하는가를 즉각 명확하게 증명하기 어렵다. 피픽도 개인차이가 커 가려움증이 반드시 심하다고 할 순 없다. 게다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영아는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정말 가렵더라도 스스로 긁는 행위로 표현할 수 없다. 간 수치도 수치 자체뿐 아니라 간의 손상 여부를 신속하게 체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반적인 간 질환과 달리 간경변 진행 속도가 더 빠를 수 있어서다. 즉 의사는 희소질환 보험 조건보다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법을 택한다.

물론 정부의 우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피픽은 연간 2, 3명 발견되는 초희소질환이다. 너무 어려 간이식 수술조차 어려운 환자에겐 이 신약이 유일한 대안이다. 또한 수술을 하더라도 평생 합병증 우려에 면역 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며, 거부반응이나 감염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약을 먹는다면, 정상 생활을 영위하며 성장할 수도 있을 소아 환자가 보험 조건을 맞추지 못해 간이식 수술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는 시범 사업 본래 취지를, 제약사는 단순한 이익보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공급한다는 역할을 고려하길 바란다.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해 환자들을 위한 좋은 결론을 도출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한국일보

고홍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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