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의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퍼레이드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이를 들어 올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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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89%. 오늘날 기후변화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라 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조사’는 지난해 전세계 인구의 92%, 온실가스 배출량의 96%, 국내총생산(GDP)의 96%를 차지하는 125개국 1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89%는 자국 정부가 지구 온난화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답했다. 86%는 자국 국민들이 지구 온난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69%는 이를 위해 매달 가계소득의 1%를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여러 다른 조사에서도, ‘기후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략 80% 안팎으로 나타난다.
그럼 이런 질문들이 이어져야 한다. 열에 아홉이 적극적인 대응을 원한다는데, 기후변화는 왜 더 급격해지는가? 왜 지구촌에는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그 대응을 가로막는 정치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는가? 인식과 실천 사이에 왜곡이 있다면, 그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절대다수는 정말로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원하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라도?
최근 독일의 환경경제학자 하인츠 벨슈는 ‘글로벌 기후변화 조사’ 결과를 좀 더 파고들어, 국가들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국가 기후목표’)과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시민 기여의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내놨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과 온실가스 배출량, 기온 등 국가적 수준의 요인들이 국가 기후목표와 시민 기여의지 모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영향이 서로 정반대였다는 것이 주목할 지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배출량이 높고 클수록, 기온이 낮을수록, 국가 기후목표는 ‘야심적’이었다. 목표를 높게 설정했다는 뜻이다. “소득이 높고 배출량이 많을수록 더 큰 책임을 진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에 걸맞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배출량이 높고 클수록, 기온이 낮을수록, 시민 기여의지는 되레 낮았다.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인 사람들의 비중이 더 적었다는 뜻이다.
국가 목표와 시민 의지 사이의 갈등은 둘이 각각 서로 다른 원리에 기대고 있다는 데서 온다. 국가 기후목표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따지는 윤리적 원칙”에 기반하지만, 시민 기여의지는 “사람들 사이 널리 퍼져 있는 비용-편익 계산”에 근거한다. 단지 비용과 편익만 따지는 거라면,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기후행동에 나설 이유는 부족하다. 그들은 기후변화가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이 적다는 걸 알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자신들의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건 애초 정치가 떠맡은 숙명적인 과제인데, 기후변화의 경우 그 어떤 주제보다도 그 괴리가 크다.
정말 주목해야 할 건 그다음 연구 결과다. 벨슈는 “시민의 기여의지에 견줘 정부의 기후목표가 더 야심적일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만족도가 낮아졌다”고 밝혔다. 기후행동에 대한 정부와 시민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내려간 것이다. 정부의 기후목표가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 사이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 차이는 최대 13%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따지는 공동체의 윤리와 비용-편익을 따지는 시민의 전략 사이가 벌어질 때, 이 괴리가 “기후정치에 반대하는 행위자들을 집권시킬 위험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는 결과다.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회의·공격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회의·공격과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극우 포퓰리즘이 그 어떤 것보다도 기후변화(넓게는 에너지 문제)를 자신들의 주된 전쟁터로 삼고 있는 핵심 이유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유럽의 여러 극우정당, 내란을 일으켜놓고 “중국산 태양광” 운운한 우리나라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틈바구니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차례로 목도하는 중이다. 기후행동에 나서겠다고 한 89%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최근 “지금은 지구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해야 할 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이 반기후 포퓰리즘에, 우린 과연 어떻게 제동을 걸 수 있는가.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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