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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패배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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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시작한 것은 실제로 중국·러시아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파격적이다 못해 놀랄 만한 주장을 내놓은 이는 1976년 저서 ‘최후의 추락’에서 영아사망률 등 장기 통계를 활용해 15년 뒤 소련의 몰락을 예견해냈던 프랑스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다.



그가 지난해 1월 펴낸 저서 ‘서구의 몰락’(La Défaite de l'Occident)엔 미국 패권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온 한국인들이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이 가득 담겨 있다. 현상적으로 볼 때 ‘미국의 패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2022년 2월 말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일사불란한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 경제 규모로 볼 때 서구(미국·유럽연합·캐나다·일본·한국)의 3.3%에 불과한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손쉽게 백기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의 도움으로 제재를 뚫어내며 경제적 내상을 입지 않았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황도 유리하게 진행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가 내놓은 ‘한달 휴전’ 제안을 사실상 거절한 상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토드는 현상을 넘어 미국 사회 내에서 진행되어온 ‘본질적 변화’에 주목한다. 서구가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며 미국의 ‘황폐화’에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전쟁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탄탄한 제조업 기반이다. 토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 무엇 하나도 확실하게 공급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2024년 현재 한달에 25만발의 포탄을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은 올해 말까지 10만발이 ‘목표’일 뿐이다. 2020년 현재 고학력 인구 가운데 엔지니어의 비율을 따지면 미국은 7.2%, 러시아는 그 세배인 23.4%에 이른다.



토드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키려 하지만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달러 패권’에 취한 미국은 수입을 위해 애써 외화를 벌어올 필요가 없고, 전성기에 사회의 건전함을 떠받쳐왔던 종교에 기반한 ‘사회 윤리’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속이 텅 빈 퇴폐한 니힐리즘(허무주의)의 나라. ‘트럼프 현상’은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주장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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