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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나는 돼지’에 추월당한 한국… 삼성만 ‘사즉생’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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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산업 전 분야서 ‘韓 추월 차선’ 진입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커지는 존재감

삼성만 ‘사즉생’ 해선 5~10년 뒤

中에 앞서는 분야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


주식 투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금양’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2023년 2차 전지 테마주 열풍을 주도했던 업체 중 하나다. 당시 ‘K배터리 예찬론’을 폈던 이 회사의 홍보이사는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밧데리 아저씨”란 애칭으로 불리며 ‘추앙’받았다. “전기차 혁명의 주역은 테슬라가 아니고, 중국 배터리 기업도 아닌 K배터리”라는 믿음이 전파되면서 이 회사 주가는 그해 7월 15만9100원까지 치솟았다. 그로부터 1년 8개월가량 지난 이달 21일 현재 주가는 9900원. ‘16분의 1토막’이 났다. 실적 부진에 더해 회계 감사 문제까지 겹쳐 상장폐지 위기를 맞고 있다.

안타깝지만, 불과 한두 해 전까지 “반도체 다음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으로 주목받던 K배터리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기업들은 이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지만 고전 중이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기업에 밀려서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점유율’은 1위인 중국 CATL은 쳐다볼 수도 없고, 3사를 다 합해야 2위인 중국의 BYD와 겨우 어깨를 나란히 한다. 물론 여기에는 방대한 중국 내수시장의 존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이외 지역에서도 중국 업체에 밀리는 추세가 뚜렷하다. 일례로 유럽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21년 18.4%에서 지난해 49.7%로 급등했다. 반면,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70.9%에서 45.1%로 주저앉았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까마득히 앞서가고 있다. 2023년 미국의 테슬라를 제치고 전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타이틀을 거머쥔 BYD는 이달 18일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발표를 했다. 5분 정도 충전하면 4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 초고속 충전 시스템을 공개한 것이다.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상용화되면 내연기관 자동차의 기름 넣는 시간이나 전기차 충전 시간이 비슷해져, 전기차 보급의 최대 장벽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

최근 중국의 굴기가 무서운 이유는 더 이상 가격 경쟁력만이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유일한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대륙의 실수’라고 불렸던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의 변신은 인상적이다.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을 각각 35%와 41% 늘리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더니, 최근 대당 가격이 227만 원에 이르는 ‘초고가 라인업’을 출시하며 프리미엄 시장에서 삼성전자 및 애플과 본격 승부를 예고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1억 원이 넘는 고가 전기차 시장에도 뛰어든 상태다.

한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 왔던 반도체나 가전(家電)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반도체는 공정이나 양산 부분에서는 앞서고 있지만, 기초연구와 설계 기술 분야에서 이미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것이 우리 전문가들의 평가다. 가전제품은 가성비나 품질 수준이 기대치를 월등히 뛰어넘어 ‘이제는 중국산이라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AI)이나 양자컴퓨팅 같은 미래 첨단 분야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이런 추세라면 5∼10년 뒤 한국이 중국에 확실하게 우위를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산업이 하나라도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회장은 비즈니스의 성공 비결과 관련해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 중국 기업들의 비상(飛上)에는 14억 인구에서 나온 저임(低賃) 경쟁력, 세계무역기구(WTO) 질서를 통한 자유무역의 확대 등 ‘태풍’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 기업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 8년간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쌓아 올린 것이다. 더 이상 바람에 몸을 실어야 하는 돼지가 아니라, 스스로 바람을 부리며 날 수 있는 ‘용’이 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 전 임원들에게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면서 ‘승부에 독한 삼성인’을 강조한 것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아무리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덤빈다고 해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반도체특별법’ 하나 처리 못 하는 정치권과 정부를 그대로 두고서는, 민관이 총력전을 펴는 중국을 상대로 승리는커녕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가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아스팔트’에 쏟아부으며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중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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