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가게'로 자리매김
1000엔대 프리미엄 상품 도입 등
고정가·박리다매 전략서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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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의 후폭풍으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고, 국민들은 소비 대신 절약을 생활화했다. 그 시기를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100엔숍'이다. '저렴하지만 실용적인' 소비 공간은 일상 속 생존 전략이 됐다. 그 중심엔 '다이소'가 있었다. 다이소는 빠르게 일본 전역을 점령하며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이 스며들었다. 현재 일본 내 매장 수만 약 3620개, 전 세계적으로는 5000개를 넘어서며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생활용품, 수납 아이템, 아이디어 상품까지 전방위로 확장한 다이소는 일본 국민들의 생활 습관 자체를 바꾸며 '없는 게 없는 가게'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지속되는 원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정, 엔저(엔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 물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100엔숍 업계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 2024년 다이소의 기준 평균 마진율은 8%로, 2020년 대비 3%p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된 100엔 가격대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국면에서 더 이상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게 됐다.
■'100엔 고정가'의 종말
이러한 변화는 해외 전략과도 맞물린다. 다이소는 미국 시장에 '스탠더드 프로덕트(Standard Products)'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최초로 론칭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에서 오픈한 이 매장은 '4.25달러' 중저가 라인업이 특징이다. 미노야키 도자기, 세키시 수제 칼 등 일본 전통 공예품을 감각적인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며 1달러숍과 고급 백화점 사이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환율 리스크, 다이소 모델의 한계
다이소는 현재 전 세계 5000개가 넘는 매장 중 80% 이상이 일본 국내에 있다. 하지만 판매 상품의 70%는 해외에서 제조된다. 이 구조는 엔저 시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수입 원가는 높아졌지만 소비자 가격은 유지돼야 하니 마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다이소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해 환율 리스크를 상쇄하겠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 달러스토어나 한국의 다이소 등 글로벌 저가 브랜드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다양한 가격대를 제공하거나 프리미엄 제품을 전략적으로 구성해 소비자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100엔숍 업계도 더 이상 '가격 인상=소비자 이탈'이라는 등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지 않게 됐다.
일본 내 소비 트렌드도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60% 이상이 이미 100엔 이상의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고, 그 중 70%는 '품질이 좋다면 가격 인상도 감수하겠다'고 응답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유행하는 상품을 공유하고, 감성적·디자인 중심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따라 다이소는 인스타그램, 틱톡 등 플랫폼 중심의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른 100엔숍 '세리아'는 셀프 인테리어 수요를 공략해 스스로 만드는 이른바 'DIY'(Do It Yourself)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으며, '캔두'는 PB 상품 공동 개발과 전국 유통망 확대를 위해 이온그룹과 협업 중이다. 각 브랜드는 소비자 세분화에 맞춰 자사 전략을 정밀하게 조정하고 있다.
■ESG·지속가능성도 선택 아닌 필수
MZ세대를 중심으로 환경과 윤리를 중시하는 소비가 늘면서 100엔숍도 지속가능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다이소는 친환경 포장재 사용 확대, 플라스틱 소재 저감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개편을 단행 중이다. 실제로 2023년 일본 소비자 조사에서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유통업계도 이에 발맞춰 상품 개발 기준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일본 100엔숍은 저가라는 본질은 유지하되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와 '윤리소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위기를 맞았던 업계는 다시 한번 체질 개선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생존 전략은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게 파는 이유를 설득하는 것'이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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