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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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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댄스'부터 화려했던 '식빵 언니', 배구 인생 마지막 스파이크를 장전하다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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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배구 황제' 김연경

편집자주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 이슈를 찾아 주요 인물의 스포츠 인생을 정리해보는 코너입니다. 프로 무대의 스타플레이어를 비롯해 아마추어 '신성', 지도자, 체육단체장 등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변화하는 스포츠 세상 속에 사는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배구 황제' 김연경이 20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자신의 배구인생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마친 후 체육관을 찾은 팬들에게 공을 던져 주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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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황제' 김연경(흥국생명)의 현역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가 20일 막을 내렸다. 2005년 12월 4일 프로 코트에 첫발을 내디딘 지 19년 3개월 21일 만이었다. 김연경은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4~25시즌 정규리그 최종전 GS칼텍스와 경기를 마친 후 "은퇴를 선언하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정규리그가 끝나니 조금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연경이 은퇴를 공식 선언한 건 지난달 13일이었다. 그는 다음 날 구단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상급 기량을 갖췄을 때 은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현역 마무리를 결심한 이유를 밝힌 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배구하는 김연경은 이제 못 본다. 많은 분들이 경기장에 오실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의 은퇴 투어가 시작된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흥국생명이 치른 7경기에는 평균 4,542명의 관중이 몰렸다. 올 시즌 평균 관중(2,454명)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20일 열린 최종전에도 3,4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아 올 시즌 GS칼텍스 홈구장 첫 매진사례를 만들어냈다. 김연경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한 달여의 시간이었다. 한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 배구계의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가 된 김연경의 발자취를 '이달의 스포츠 핫피플'에서 훑었다.

'퍼스트 댄스'부터 화려했던 특급 신인

김연경(오른쪽)이 2005년 10월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05~06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된 후 황현주 흥국생명 감독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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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고교시절부터 배구 열성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수원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교) 재학시절 20㎝나 키가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이동한 그는 고교 2년때인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이듬해엔 성인국가대표팀에도 합류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2005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에선 고교생 신분으로 전체 득점 3위에 오르는 등 주포로 활약했다.

초고교 선수의 등장에 프로 구단들도 들썩였다. V리그 원년(2005년)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김연경을 잡기 위해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촌극을 벌일 정도였다. 결국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한 흥국생명은 2005~06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김연경을 지명했고, 이때부터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등번호 10번의 전설이 시작됐다.

김연경의 루키 시즌 임팩트는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6관왕(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챔피언결정전 MVP)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프로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프전 MVP를 싹쓸이한 건 김연경이 처음이었다. 프로야구 류현진(2006시즌)과 프로농구 김승현(2001~02시즌)이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를 동시 수상한 적은 있지만, 둘 모두 한국시리즈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진 못했다. 그만큼 김연경은 프로배구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실업리그 시절 대부분 하위권을 맴돌았던 흥국생명이 프로 출범 2년 만에 통합우승팀으로 탈바꿈한 것 역시 김연경이라는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연경이 2008년 2월 17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07~08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KTG 경기에서 상대 블로킹을 피해 강스파이크를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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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에겐 '2년차 징크스'도 없었다. 시즌 전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 주변의 우려를 샀지만, 그는 정규리그 공격 종합 1위, 득점 2위 등을 기록하며 팀의 2연속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하며 '흥국 왕조'의 주연으로 맹활약했다. 프로 초창기 4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프전 우승 3회, 정규리그 MVP 3회, 챔프전 MVP 3회, 공격상 3회, 서브상 2회, 득점상 1회 등 전설을 써낸 김연경은 2008~09시즌을 마친 뒤 해외진출을 선언했다. 이미 V리그를 평정한 그에게 더 큰 무대를 향한 도전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해외진출이라는 씨앗은 '월드클래스'라는 업적과 흥국생명과의 기나긴 갈등이라는 두 개의 가지로 자라났다.

'월드클래스' '황제'... 김연경의 눈부신 비상


먼저 찾아온 건 눈부신 성과였다. 그는 2009년 임대 선수 신분으로 흥국생명의 자매구단인 일본의 JT마블러스에 입단해 2009~10시즌 정규리그 1위·파이널 준우승, 2010~11시즌 정규리그 1위·창단 첫 파이널 우승을 이끌었다. 공격력 부재로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이 김연경의 합류로 단숨에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한국에 이어 일본 무대마저 정복한 그는 세계 최고 리그로 꼽히는 튀르키예로 향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페네르바체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7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연경 입단 당시 페네르바체에는 로건 톰(미국) 클라우디오 파비아나(브라질) 에다 에르뎀·나즈 아이데미르(이상 튀르키예) 등 각국 대표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김연경은 이 같은 초호화 멤버들속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하며 유럽 무대에 순조롭게 안착했다. 팀 단위가 아닌 개인으로서도 △2011~12시즌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MVP·득점상 △2013~14시즌 리그 득점상·공격상, 챔피언스리그 MVP △2014~15시즌 리그 MVP·득점상·공격상 등 수많은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김연경이 페네르바체 소속이던 2017년 5월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부르한펠레크 볼레이볼살론에서 열린 튀르키예 여자프로배구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갈라타사라이를 꺾은 후 우승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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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7~18시즌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적을 옮겨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2018년부터 2시즌 동안 튀르키예 액자시바시 유니폼을 입고 튀르키예 컵과 튀르키예 슈퍼컵 등을 들어올렸다. 2020~21시즌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 도쿄 올림픽 출전 준비 등을 이유로 잠시 국내 리그에 복귀한 그에겐 어느새 '배구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흥국생명과의 길고 긴 분쟁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대 아웃풋으로 평가받는 김연경이지만, 그는 화려한 업적을 쌓아가는 와중에 흥국생명과의 갈등으로 오랜 시간 속앓이를 해야 했다. 각론으로 파고들면 복잡한 이해관계와 주장이 얽혀 있지만, 큰 틀에서 핵심 쟁점은 김연경의 보유권 문제였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자유계약(FA) 신분을 주장하며 해외 구단으로 완전 이적을 추진했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규정상 FA가 되려면 국내에서 6시즌을 뛰어야 하는데, 김연경은 국내에서 4시즌을 뛰고 나머지 기간은 일본(2시즌)과 튀르키예(1시즌)에서 임대선수 신분으로 보냈기 때문에 FA자격을 채우지 못했다고 맞섰다. V리그 출범 당시 임대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발생한 분쟁이었다.

김연경(오른쪽)이 2012년 10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해외 이적 과정에서 발생한 흥국생명과의 분쟁에 대해 기자회견을 연 뒤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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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권을 둘러싼 다툼은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김연경 측 에이전시 인정 여부 등 세부적인 논쟁의 불씨가 됐고,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배구협회의 임시이적동의, 흥국생명의 임의탈퇴 공시, 김연경의 국가대표 은퇴 불사 언급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FIVB의 중재와 페네르바체의 도움으로 김연경은 2014년 국제무대에선 자유의 몸이 됐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임의탈퇴 선수로 묶여있는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됐다. 정리하자면 김연경은 해외리그에서는 FA신분으로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지만, 국내리그 복귀 시에는 최소 2시즌을 흥국생명에서 뛰어야 했다. 김연경이 2020~21시즌 V리그로 돌아올 당시 분홍색 유니폼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는 샐러리캡에 따른 페이컷 문제 등 또 다른 오해와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견원지간도 극복한 마지막 목표


김연경은 도쿄 올림픽 이후 2021~22시즌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에서 뛴 뒤 다시 흥국생명으로 돌아와 2022~23시즌을 소화하며 V리그에서도 드디어 FA자격을 얻었다. 어렵사리 얻어낸 FA신분이었지만, 그는 여러 구단의 다년 계약 제의를 고사하고 다시 흥국생명과 단년 계약을 체결했다.

한때 감정의 골이 깊었던 흥국생명과 또 한 번 손을 잡은 이유는 V리그 정상 탈환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김연경 개인은 V리그 복귀 후 MVP를 놓치지 않으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지만, 정작 팀은 여러 악재가 겹치며 두 시즌(2020~21시즌·2022~23시즌) 모두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설상가상 FA 체결 후 첫 시즌(2023~24시즌)에도 흥국생명은 또다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지난해 4월 개인 6번째 V리그 정규리그 MVP 트로피를 손에 쥔 김연경이 '1년 더'를 외친 배경이다.

김연경은 평소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두 번의 올림픽(2012 런던·2020 도쿄) 4위를 꼽아왔다. 메달 획득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두고 돌아서야 했던 순간의 안타까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3연속 준우승을 경험한 김연경이 올 시즌 V리그 통합우승에 누구보다 강한 의욕을 불태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연경이 2021년 8월 8일 일본 도쿄 아리아키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후 표승주와 포옹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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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흥국생명은 20일 최종전에 김연경을 출전시키지 않았다. 마지막 경기인 만큼 원포인트 서버로라도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김연경의 무릎에 통증이 발생하자 구단과 감독은 단호하게 결장을 선택했다. 바꿔 말하면 챔피언결정전을 위해 최상의 전력을 유지하겠다는 구단의 의지다.

비장함마저 감도는 대목이지만, 김연경은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장충체육관에 모인 팬들 앞에서 "GS칼텍스 팬분들은 당분간 응원할 팀이 없으실 텐데, 이제 (챔피언결정전에서) 흥국생명에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발언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새로운 도전과 역경을 맞닥뜨릴 때마다 늘 당당한 태도로 정면 돌파를 택했던 '식빵 언니' 김연경은, '라스트 댄스'를 앞두고도 황제의 여유와 재치를 선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김연경은 31일부터 5전3승제로 펼쳐지는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배구인생의 마지막 스파이크를 때린다.

김연경이 1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5 V리그 한국도로공사와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때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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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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