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MB식 개발 논리 통하지 않아
시정을 정치에 이용해도 성과 못 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2006년 6월 1일 서울시청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이명박 시장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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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누가 뭐래도 차기 대선 유력 주자다. 당선 순간 잠룡 반열에 오르고, 다른 16명 광역단체장과 비교할 수 없게 언론의 조명을 독차지한다. 무관심보단 악플이 백번 낫다는 정치의 속성상, 수도 행정 책임자만이 누리는 이 ‘인지도’는 서울시장 최고의 특권이다.
그래서 다들 시장이 되려고 했다. 1995년 이후 후보들만 봐도 조순(당선) 박찬종 고건(당선) 최병렬 이명박(당선) 김민석 오세훈(당선) 강금실 한명숙 박원순(당선) 나경원 정몽준 안철수 박영선 등 쟁쟁한 이름이 즐비하다. 그러나 거물들이 도전했음에도, 민선 전환 후 이 자리를 거쳐 대통령까지 오른 사람은 제32대 시장 이명박이 유일(관선 포함 땐 2대 윤보선도 있음)했다. 어째서 이명박이 마지막이었을까?
‘사람’ 얘기를 뺄 수 없다. 여러 변수의 결과, 이명박 이후 19년간 서울시장은 둘뿐이었다. 그중 오세훈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문제로 직을 던졌고, 박원순은 불미스러운 일로 목숨을 끊었다. 다시 뒤를 이은 오세훈은 토지거래허가제로 스스로 신뢰도를 깎았다.
구조적 이유도 있다. 서울이 훨씬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됐다는 점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에 더 가깝다. 정부는 균형발전을 부르짖지만, 정치 금융 산업 교통 문화 교육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의 상대적 위상은 점점 높아진다. 이제 서울은 ‘서울의 논리’로만 이해할 수 있고, ‘서울의 법칙’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진짜 ‘특별시’가 돼 버렸다. 정부도 서울 아파트 가격을 못 잡고, 그 어떤 입시제도도 강남 학생이 좋은 대학에 많이 가는 편중을 못 막는다.
도시의 성숙도 문제도 빼놓기 어렵다. 이명박 때만 해도 서울시장이 그림을 그릴 도화지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넓은 그린벨트, 되살릴 복개천, 재개발할 노후 주택지가 산재했다. 연 5% 고성장이 변화를 뒷받침했다. 그래서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 개혁 △뉴타운으로 히트를 치며 대권까지 잡을 수 있었다.
서울시장에게 별의 순간이 좀처럼 오지 않는 마지막 이유는 바로 여의도다. 극심한 정당 갈등 탓에 모든 정치 이슈를 대통령과 국회가 소모한다. 단체장이 멋진 정책을 알려봐야 관심을 못 받고, 페이스북에 독설과 정치촌평을 날려야 그나마 여론이 반응을 보낸다.
세상이 서울시장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달라졌다. 앞장서 이끌 사람보다 에너지를 제대로 제어할 사람이 더 어울리는 자리가 됐다. 없던 걸 창조하고 새로운 랜드마크로 이목을 끌 게 아니라, 넘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하는 것이 서울시장의 진짜 실력이다. 탄핵 정국에 인위적 바람을 일으키려고 ‘할 수 없는 일’에 섣불리 손댔다가 뜨거운 열기에 손을 데고 만 것이 이번 토허제 소동의 본질이다. 시정을 섣불리 대선에 이용하는 것은 시장 본인에게도 위험한 도박이고, 시민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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