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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트럼프의 미 우선주의에 북 비핵화 절체절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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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꺼내든 ‘미국 일방주의’의 칼날이 매섭다. 취임 후 두 달 동안 그가 보인 정책은 무역 등 경제는 물론이고, 안보 영역까지 막무가내다. 트럼프는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부분 휴전에 합의했다. 동시에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재개를 지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약소국’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 압박하고, 군사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광경에 세계는 경악했다.



1980년대 미·소 핵무기 폐기

워싱턴의 전문가 1세대 퇴장

한국 정치권은 정파 이익 골몰

국익 우선 여·야·정 원팀 뭉쳐야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다음 관심사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공공연히 북한을 ‘핵국(nuclear power)’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듯한데 만약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회담을 한다면 북한의 핵을 묵인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동결을 통해 ‘미국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의 거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미국 안보 우선 북·미 협상할 수도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미 접촉 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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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때인 1991년 하반기에 미 국무부 군축처장이었던 로널드 레먼 2세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그가 북한과 핵 협상 중이던 우리 대표단에게 충고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군비 통제란 상대방의 가장 큰 군사 위협을 협상을 통해 감소하거나 제거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1980년대 소련이 유럽에 배치했던 1846기의 중거리 핵무기 S-20과 미국이 유럽에 배치했던 중거리 핵무기 퍼싱-Ⅱ 846기를 상호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감축 협상을 벌였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미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중거리 핵무기를 완전하게 폐기시켰다”고 소개했다. 그는 협상 초기에 소련이 핵무기 폐기에 대한 검증을 수용하지 않자 “믿어라. 그러나 확인하라(Trust But Verify)”는 옛 소련의 속담을 인용하며 집요하게 설득해, 가장 강력한 검증 조항을 담은 중거리 핵무기 감축조약 합의를 성사시켰다.

‘검증을 통한 완전한 핵 폐기 원칙’은 2019년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도 나왔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트럼프에게 건의했던 내용이다. 당시 트럼프가 검증을 통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첫 단계로 북한에 완전한 핵 리스트를 제출토록 요구한 것이다. 비록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됐지만, 미국의 1세대 군비 통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상대방 국가의 모든 핵 위협을 검증 가능하고 완전하게 제거하는 것을 군비 통제라고 인식했고, 정책으로 연결시켰다.

지금 워싱턴에서는 1세대 군비통제 전문가들이 퇴장하고 있다. 대신 검증 없는 군비 통제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2세대 전문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과 성과 내기에 급급한 트럼프의 뜻이 맞으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는 영영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되고 만다. 한국 입장에선 트럼프를 향해 ‘검증을 통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관철하도록 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인 것이다.

외교안보도 적대 정치 희생양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컨트롤 타워도 없고, 미국과 정상 교류 자체가 불가능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게 한국의 현실이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 교수가 이달 초 발간한 『적대 정치 앤솔러지』(나남)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정치는 노무현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반대 세력을 적대 세력으로 내모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 적대 정치가 일상이 되고 민주주주의는 파국을 맞았다. 이런 모습은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할 외교·안보·국방·통일 분야까지 번졌다. 국가의 이익과 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나 적대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노무현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출간된 5권의 국가안보전략서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국가이익과 국가목표와 관련한 항목은 없다. 대신 각 정권의 국정 목표만 있을 뿐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이전 정부를 비판하고, 네 탓과 흔적 지우기가 우선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파는 좌파를 ‘종북·친중 세력’으로, 좌파는 우파를 ‘미제식민지·토착 왜구 세력’으로 모는 데 급급했다. 당연히 상호 비난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국익을 위해 뜻을 모으려는 노력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 북한과 중국은 한국의 남·남 갈등을 자국의 국익에 활용했고, 한국은 이들의 이이제이(以夷伐夷) 전략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외교와 안보, 국방과 통일 분야의 정책은 국민적 혹은 초당적 합의가 기본이다. 초당적인 탕평 인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좌파든 우파든 자기 정파의 ‘나팔수’나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들의 자리 챙기기에 바빴다. 그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 모두 외교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나 전직 장성들을 대거 주요국 대사에 기용했다. 눈에 띄기 위해선 튀어야 하다 보니 양측의 접점을 찾기보다 극단적인 인물이 중용되곤 했다. 당연히 전문성은 부족했고,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따랐다. 인사의 무게감은 떨어졌고, 자파 인사들만 쳐다보니 정권을 거듭할수록 인재풀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사의 정파적 편향성이 군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진급을 위한 줄 대기, 눈치 보기가 이어지다 보니 국가의 안전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할 군대 안에서도 좌파와 우파로 갈라진 분위기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글과 같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 정치 속에서 생존 자체가 어렵다. 상대가 있는 외교·안보·국방·통일 분야에서 극단은 자살행위다. 이제는 좌와 우, 그리고 여·야·정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원(one)팀이 필요한 때다. 정책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극단적인 목소리를 배제하고, 이념이나 정파가 아닌 국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중도 국익파들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건전한 시야를 지닌 전문가나 관료를 육성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무엇보다 정권의 성향에 휘둘리지 않는 국가안보 전략을 수립해 국제정세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위기의식을 모든 국민이 자각해야 한다. 그게 해방 80년을 맞는 올해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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