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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정현권의 뒤땅 담화] 연습스윙 없앴더니 골프가 훨씬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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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쌀쌀하지만 곧 골프 시즌이다. 움츠리고 있긴 하지만 골프 마니아들은 벌써 필드로 나간다. 본격 출격을 앞두고 올 한해 전개될 나의 골프를 상상한다.

초보 땐 그렇게라도 백돌이 신세를 면하려고 몸부림쳤다. 100이라는 스코어 카드를 들고 게임을 하자는 제의 자체가 불가능했고 내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언제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들까 상상만 할 뿐이었다. 하도 많이 뛰어다니고 캐디 손도 많이 가니 눈치가 보였다. 처음으로 98타를 치고 귀가해서 너무 설레 잠을 설친 기억이 난다.

그 동안 움츠렸던 날개를 펴고 필드에서 당당히 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새장에 갇혔다가 세상 밖에 나온 느낌이었다. 보기 플레이어라는 명칭을 달았을 때 그 감개무량을 잊지 못한다.

다음해엔 대망의 80대 진입을 목표로 세웠다. 보기 플레이어라는 험난한 허들을 넘는 과제였다. 준 고수로 인정 받은 80대 타수로의 비상은 여간 어렵지 않다. 스마트스코어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기준 한국 남자 골퍼 평균 타수는 92타, 여자는 94타였다. 80대 타수만 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고수나 하수 누구와도 어울리는 레벨이다.돌이켜보면 입문 후 4~5년 지나 80대로 접어들었을 때가 내 골프인생에서 황금기였다. 어쩌다 90대로 후퇴하면 큰 일이라도 당한 듯 스트레스로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처음 방문하거나 난도가 높은 골프장에선 금방 90대로 후퇴한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컨디션이 나빠도 이카루스 처럼 90대로 주저앉는다. 골프장에서 귀가해 짐도 풀지 않고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정확한 룰을 적용하면 80대 타수를 구사하는 아마추어는 극히 드물다”며 “80대 타수라고 말하는 아마추어 10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구력 5년에는 대망의 싱글 핸디 캐퍼로 도약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 절대 고수는 아니라도 한두 번이라도 70대 타수를 간절히 바랬다. 전반에 1~3타를 오버하는 양호한 스코어를 올렸다가 희한하게 후반에 무너져 싱글의 꿈을 수없이 접었다. 70대 타수를 의식하는 순간 마지막 1~2홀을 남기고 타수를 까먹고 말았다.

간절한 꿈은 화창한 봄날 서하남 소재 캐슬렉스CC에서 이뤄졌다. 전반을 1타 오버로 마무리하고 브레이크 타임에 식음료에도 일절 손대지 않고 집중 모드를 풀지 않았다.

전반 흐름을 이어가다 마지막 3홀에서 각각 보기로 3타를 기록해 전후반 합계 76타라는 스코어를 받았다. 기준 타수보다 4타를 넘겨 내겐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싱글 핸디 캐퍼라고 자랑할 여건은 아니었다. 이후 10번 라운드에 한번 정도 70대, 6번 80대, 3번 정도는 90대로 지그재그였다.

남들처럼 한 홀에서 기준 타수보다 2타 낮은 이글을 하겠다는 새해 포부도 세웠다. 티샷과 우드 샷 실력이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웰리힐리CC로 이름이 바뀐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당시 성우리조트의 오스타CC 롱홀(파5)에서 이글을 잡았다. 80m를 남기고 웨지로 친 공이 그림처럼 경사를 타고 홀로 빨려 들어간 장면이 생각난다.

누구나 한번쯤 한다는 홀인원 꿈도 가졌다. 하지만 골프 얘기가 나올 때마다 홀인원 자랑을 하는 사람들 틈에 내겐 언제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 아득하기만 했다.

박세리도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공식 대회 첫 홀인원을 했기에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으로만 생각했다.

2012년 10월2일 역시 서하남 소재 캐슬렉스CC에서 그날이 왔다. 마지막 파3홀에서 120m 오르막 계곡을 가로질러 9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매일경제

카트로 이동하니 그린은 물론 주변에도 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홀로 가보니 검정으로 타이틀리스트 1번이 선명하게 새겨진 하얀 공이 들어있었다. 이로써 언더 타수를 빼곤 아마추어에게 가능한 모든 스코어를 섭렵했다. 마음이 자유로워져 다음부터 새해 골프 소망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어떤 해에는 노 더블 보기 플레이라는 계획도 세웠다. 아마추어가 18홀 동안 더블 보기를 범하지 않는 건 쉽지 않다. 가령 OB를 내고도 더블 보기를 면하려면 고도의 집중과 기술이 요구된다. 골프계에 싱글 고수보다 노 더블 보기 플레이어가 더 어렵다는 말도 있다. 23년 나의 골프 구력에도 손꼽을 정도이다.

원 볼 플레이도 기분 좋다. 18홀을 공 하나로 진행한다는 건 아무리 고수라도 만만치 않다.

일단 구질이 정확하고 방향에서 벗어나더라도 짧은 시간에 발품을 팔고 눈도 밝아야 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18홀을 함께 하면 이래 저래 흠집이 생긴 공과 정이 든다. 언젠가부터 연습스윙(가라스윙)을 없애겠다고 다짐했다. 무척 어려웠다. 왠지 제대로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뇌리에 엄습했다.

연습장에서 수없이 반복하고 결국 필드에 적용했다. 클럽을 쭉 내밀어 공 후방에서 에이밍을 하고 신중하게 셋업한 다음 바로 공을 날린다. 10여년간 이런 방식으로 샷을 해오고 있는데 훨씬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다. 캐디와 동반자들도 좋아한다. 평소 느림보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받는 골퍼는 올해엔 연습스윙을 없애는 시도를 해볼 만하다. 오래 버틴다고 샷이 잘 나오는 건 아니다.

필자는 올해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면 필드에서 걸으려고 한다. 홀 간 이동거리가 길거나 경사가 심하지 않으면 18홀 내내 걸으면 7㎞로 1만보 정도이다.

제대로 스코어 적기도 새해 골프 목록에 넣고 싶다. 특별한 상황을 빼곤 첫홀과 마지막홀 일파만파, 멀리건, 컨시드, 공 터치 등을 모두 없애고 룰대로 골프를 하고 싶다. 한창 80대 초반을 구사하던 어느 날 동반자들이 룰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95타를 기록했다. 모두 보람 있는 골프라고 입을 모았다. 균형 잡힌 골프도 지향한다. 몰입 80, 명랑 20 비율로 골프에 임한다. 진정성 있게 임하면서도 동반자와 우정을 다지는 골프이다.

집중한답시고 필드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스트레스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성적에 매달리고 싶진 않다. 골프가 일상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늘 돌아본다. 숱한 시간과 열정, 그리고 비용을 골프에 쏟는 동안 내가 놓치는 더 소중한 삶의 가치가 있는지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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